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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잡지 문화사 첫 고찰…근대불교 연구 토대 마련

  • 교학
  • 입력 2022.03.25 21:14
  • 수정 2022.03.26 14:09
  • 호수 1626
  • 댓글 0

김종진 교수, ‘근대 불교잡지의 문화사’ 발간…잡지 17종 239호 분석
전개사 엮어 학술·문화적 성과 조명…“근대불교사 연구 활성화 기대”

한국불교 언론사에서 근대잡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신문이 발간되기 이전인 1910년대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불교잡지는 불교사상, 문학의 집약체였다. 당대 지식인들의 시대를 꿰뚫는 안목과 민중을 계몽하기 위한 깊은 고뇌가 묻어있고, 시대적 담론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기에 근대 불교잡지를 분석하는 것은 한국불교 학술사와 문학사를 조망하는 토대가 될 수 있다. 

김종진 동국대 불교학술원 교수.
김종진 동국대 불교학술원 교수.

이런 가운데 김종진 동국대 불교학술원 교수가 최근 17종 239호의 방대한 양의 불교잡지를 일일이 분석해 엮은 ‘근대 불교잡지 문화사-불교청년의 성장 서사’를 출간했다. 

김 교수는 근대 불교잡지의 시대적 흐름을 세 단계로 구분해 실증적 문헌분석을 시도했다. 전개사만이 아니라 잡지가 지향했던 사상, 편제와 항목별 성격·분류를 수록했다. 편집인·기자·필진의 역할부터 문답란에 투고한 여러 독자들·객원기자 활동 양상까지 분석해 엮어냈다. 또 지면의 논설·학술논문·문학작품 목록을 표로 정리해 각 잡지의 주제와 성격을 알아보기 쉽게 정리했다. 정체가 불명확했던 필자명은 최대한 실명으로 복원했다. 창간호에서 종간호까지 변화된 잡지별 내용과 문체도 해석했다. 특히 각 잡지의 학술적·문학적 성과를 수록해 불교잡지 문화사를 파악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근대 불교잡지는 1895년 4월23일 조선 고종이 스님들의 도성출입을 윤허하는 해제령을 기점으로 1911년 일제의 사찰령 시행하면서 불교가 현실 법제도 안에 자리를 잡게 됐고, 이러한 배경 속에서 ‘잡지(雜誌)’가 등장했다. 

잡지라는 공론의 장이 열리자 사부대중은 꾹꾹 눌러뒀던 불교개혁의 열망을 지면에 쏟아냈다. 최초의 근대불교 잡지는 1910년 간행된 ‘원종’이지만 현재 전하지 않는다. 현전 잡지로는 1912년 2월에 간행된 ‘조선불교월보’가 효시이며, 이어 ‘해동불보’ ‘불교진흥회월보’ ‘조선불교계’ ‘조선불교총보’ ‘유심’이 간행됐다. 1920년대 초·중반에는 ‘축산보림’ ‘조음’ ‘금강저’ ‘불일’ ‘불교’가, 1920년대 후반 이후로는 ‘일광’ ‘회광’ ‘불청운동’ ‘선원’ ‘람비니’ ‘홍법우’ 등이 순차적으로 발행됐다. 

1912년 2월 간행된 ‘조선불교월보’. [법보신문 DB]

1910년대 잡지들은 과거사 복원에 집중했다. 19세기 불교 인물의 자취를 적극적으로 찾아 잃어버렸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했다. ‘조선불교월보’가 발간 초기부터 앞면 “비문 현상 모집”이란 광고를 수록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었다. 초기 편집자였던 권상로·박한영·이능화 등은 전국 사찰에 산재된 고승의 비문·행장, 사적비를 수습하고자 직접 나섰다. 

1920년대는 다양한 성격의 불교매체가 등장했다. 일제의 문화통치로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 신문 발행이 허용됐고, 불교잡지도 여러 양상으로 등장했다. 일본 동경유학생회 잡지 ‘금강저’부터 문화, 국학에 초점을 맞춘 ‘불교’ ‘불일’ 등 여러 성격을 가진 잡지들이 잇달아 발간됐다. 1924년 창간해 1933년까지 108호를 발행한 ‘불교’는 휘보란을 만들어 일본·중국 불교잡지에 실린 해외 담론을 적극 소개했다. 이 작업은 전통지식인과 해외유학생 출신 신진지식인의 협업으로 이뤄졌다. 

각 잡지들은 단순히 불교인 내부 소통매체에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한국사·사상사·문화사를 정립하는 하나의 매체로서 대중들에게 존재감을 드러냈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창작동요·동화·희곡도 함께 순한글로 표기된 소설·희곡작품을 수록했다. 더 많은 대중들과 소통하기 위해서였다. 학술지와 문예지로서도 활용됐다. 학술지가 없던 당시 불교잡지는 불교교학, 불교사, 근대지성사, 국학·조선학, 언어학, 문학, 번역학의 학술성과롤 보여주는 지식인의 등용문이었다. 동시에 중앙불전 재학생, 졸업생, 강원의 학인, 선원의 젊은 수좌, 일본 유학생들이 서로 소통하며 불교적인 심성을 문학적으로 표출하는 문예지로서도 역할했다. 

1930년 7월 ‘불교’지 7호에 실린 청년 도진호의 범태평양 불교청년대회 참관기(오른쪽). 당시 불교잡지에는 불교청년들의 활동과 목소리가 거의 매호 반영됐다. [법보신문 DB]
1930년 7월 ‘불교’지 7호에 실린 청년 도진호의 범태평양 불교청년대회 참관기(오른쪽). 당시 불교잡지에는 불교청년들의 활동과 목소리가 거의 매호 반영됐다. [법보신문 DB]

일제강점기 조국을 빼앗긴 청년불자들이 비통한 마음을 토로하고 새로운 미래를 열고자 했던 열망을 담아내기도 했다. 김 교수는 “불교학·역사학·문학 영역에서 인정받는 석학과 문사만이 근대문화 창조의 주역이 아니”라며 근대잡지 속 청년들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어 “근대 불교잡지는 근대불교학 형성 과정과 불교청년 성장 서사가 담긴 장대한 서사시”라며 “이번 연구를 통해 근대 불교잡지에 켜켜이 쌓여있는 무명의 청년들의 성과가 인정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정주연 기자 jeongjy@beopbo.com

[1626호 / 2022년 3월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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