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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와 사람 그리고 명당

기자명 성진 스님

몇 년 전 터를 소재로 한 ‘명당’이라는 영화가 상영된 적이 있다. 그 영화에 ‘땅을 차지한 자 세상을 얻을 것이다’라는 대사가 나온다. 원래 명당(明堂)의 어원은 ‘대대례(大戴禮)’의 ‘명당편(明堂篇)’에 천자가 백관의 알현을 받으며 정치를 펴는 넓은 공간을 ‘명당’이라고 불렀다 한다. 다시 말해 왕이 신하들을 만나 정사를 논한 자리를 상징하여 이름 붙인 것으로 정사를 잘 다스려 백성을 편안하게 하도록 활용해야 하는 ‘터’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사람들의 욕심에 의해 좋은 터 즉 ‘명당’이라는 이름으로 그곳을 얻으면 무조건 권력과 재물을 얻을 수 있는 것으로 변해 버리고 만 것이다. 

영화 ‘명당’에서 2대 천자(왕)가 나오는 명당인 ‘가야사’라는 가상의 사찰을 서로 차지하겠다고 피를 뿌리고, 사찰을 불태워 차지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예전에 필자가 정진하던 호남의 한 산세 좋은 선원에서 실제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느 돈 많은 재력가가 전국의 유명한 지관들에게 대대손손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부모님 묏자리를 소개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명당 터가 바로 천년을 이어온 선원 터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 선원을 팔면 더 큰 절을 지어 주겠다고 했다고 한다. 물론 당시의 스님들은 정진하는 도량을 내어 줄 수 없다고 했고 결국 근처 옆 봉우리 밑에 묘를 썼다고 한다. 거의 80여년 전 얘기지만 지금도 터에 대한 맹목적 믿음이 사라졌다고 볼 수는 없다. 

얼마 전 어느 신도분이 선산에 모셔진 부모님 산소 이장(移葬) 문제를 가지고 장남과 딸들 사이에 이견으로 다툼이 있다고 찾아온 적이 있다. 그 때 필자는 화장을 해서 가족 납골묘로 조성하기를 권했다. 아무리 좋은 터라고 해도 사람이 찾아 관리하지 않으면 10년도 못가서 가시덤불 천지가 되고 만다. 산속에 부모님만 덩그러니 모셔놓는 것보단 봉분 대신 납골묘를 조성해 가족들이 다함께 묻힐 수 있다면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명당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자식들이 기억하고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과거 조선시대 최고의 지관들을 불러다 명당이라는 곳에 왕의 묏자리를 썼지만 부모 자식과 형제간의 피를 부른 권력투쟁이 있었고, 여러 번의 전란 속에 백성은 죽고 굶주렸다. 그리고 결국 나라를 빼앗기고 왕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조선후기에도 사람들이 명당 터를 가지고 많은 다툼이 있자 전주지역에서 지관들을 불러 그 지역에서 내려오는 명당과 나쁜 땅으로 분류하여 지금의 자손이 어떻게 되었는지 조사를 했다고 한다. 결과는 명당에서도 망한 후손이 있고, 흉터라는 곳에서도 잘된 자손이 있다는 것이었다. 

삼보사찰인 통도사, 해인사, 송광사는 천 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천 년 전에나 지금이나 스님들은 정진하고 부처님 법을 지키며 살아오고 있다. 아마 천 년 이상의 터에 처음이나 지금이나 터를 조성했던 목적 그대로를 보존하고 운영하는 것은 한반도에서 사찰이 유일하지 않을까 한다. 그것은 터가 명당이기 때문은 아니다. 임제선사의 말씀처럼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어느 곳에서라도 마음의 주인이 되어 뜻을 세워나가는 것을 화두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산꼭대기이든 절벽 사이에서든 도량을 가꾸어 정진하며 살아간다. 스님들이 정진하지 않은 채 터에만 의존했다면 지금의 한국불교는 이어져 오지 못했을 것이다.

요즘 또다시 ‘터’가 사회적 문제로 이야기되고 있다. 터, 명당 그리고 흉터가 아니라 사람이고, 무엇을 위해 그곳에 있는가이며, 무엇을 하는가에 따라 터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같은 터라도 사람에 따라 바뀌는 것이지, 터가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부디 잘못된 과거로 돌아가지 않길 바란다. 지금은 터가 아니라 사람인 것이다. 이 시대 이 땅에는 천자(天子), 왕은 없다. 굳이 있다면 나라의 일꾼을 뽑는 하늘인 국민이 있을 뿐이다.

성진 스님 조계종 백년대계본부 미래세대위원
sjkr07@gmail.com

[1626호 / 2022년 3월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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