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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 스님 친필 법어…마음 속 밝은 진리로 남길”

  • 교학
  • 입력 2022.04.04 13:56
  • 호수 1627
  • 댓글 0

맏상좌 천제 스님, 달력 뒷면·편지지 쓰인 친필 모아 ‘시월록’ 출간
천제굴 예배일과부터 봉암사 공주규약 초안문 등 여러 기록 담겨

은사 성철 스님과 맏상좌 천제 스님
은사 성철 스님과 맏상좌 천제 스님
봉암사 결사 공주규약 초안문 친필
봉암사 결사 공주규약 초안문 친필

“성철 스님은 열반에 드실 때까지 수행자 본분을 지켰습니다. 고귀한 성자이자 솔선수범한 월광(月光)이었습니다. 은사스님이 한평생 기록한 친필 법어가 불자들 마음에 밝은 진리로 남았으면 합니다.”

성철 스님(性徹, 1912~1993) 맏상좌 천제 스님이 그간 간직하고 있던 은사스님의 친필을 모은 책을 출간했다. 

심월(心月) 광명에 전하는 ‘시월록’이다. 허름한 노트는 물론이고 달력 뒷면, 휴지조각, 편지지를 가리지 않고 틈 날때마다 기록한 은사의 수행기록 하나하나를 버리지 않고 소장한 상좌가 이를 책으로 담아낸 것이다. 반백년 가까이 성철 스님 곁에 있었던 천제 스님이 직접 보고 들은 생생한 증언이 해제로 담겨있기도 하다. 은사를 닮고자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으려는 상좌의 정성과 이런 상좌를 어엿한 수행자로 키워내려는 은사의 애틋함이 책 곳곳에서 묻어난다.

천제 스님이 성철 스님을 처음 마주한 것은 아버지의 천도재에서였다. 천도재가 끝나자 망연자실하고 있던 천제 스님에게 성철 스님이 다가와 조그마한 종이를 건넸다. 손수 쓴 법어였다. 성철 스님의 법어는 무상한 인간사에 대한 일침이었다. 절망에서 찾은 한 가닥의 희망으로 다가오는 구절들이었다. 

새 삶을 얻은 듯 했다. 스님이 적어준 종이가 닳을 만큼 읽고 또 읽었다. 아버지의 49재가 끝나고 1953년 9월 벽발산 천제굴로 성철 스님을 찾았다. 평생 스승으로 모시고자 했다. 그러나 성철 스님은 “상좌를 받지 않는다. 다른 스님에게 가라”고 거절했다. “중 되려고 온 것이 아니라 큰스님 가르침 배우러 왔다”고 맞섰다. 그렇게 10년 세월이 흘렀고 결국 스승이 제자에게 손을 들었다. 은사는 두 사람이 처음 만난 장소를 법명으로 지어줬다.

천제 스님은 은사와 천제굴·성전암·김용사·백련암·해인총림 등 전국을 누볐다. 은사의 구도(求道) 흔적 스며있는 수행처는 상좌에게 여전히 특별한 장소들이다. 은사가 머물렀던 각 장소별로 친필 법어를 나눴다. 그수행처에서 느꼈던 은사의 가르침도 요약해 담았다. 

첫 번째로 소개한 사진은 천제굴에 머물 당시 성철 스님이 작성한 ‘천제굴 불전 예배 일과’다. 갓 행자가 된 상좌가 예불 순서를 이해할 수 있도록 아침일과·저녁일과·사시예불 순서를 정리해 건넨 것이다. 흘려쓴 다른 글씨체와 달리 또박또박 눌러쓴 필체가 돋보인다. 천제 스님을 향한 배려를 짐작할 수 있다. 한글 옆에는 산스크리트어와 한자도 보인다. 성철 스님은 “예불 일과가 불지에 이르는 길이자 ‘보현십대행원’의 첫 관문”이라고 당부했다. 또 직접 예불에 참여해 목탁을 치면서 함께 예배했다. 

1947년 가을 시작된 봉암사 결사 공주규약(共住規約) 초안문 친필은 천제굴에서 팔공산 성전암으로 거처를 옮겼을 당시 작성됐다. 파계사를 중흥하고자 했던 한송 스님의 배려로 성철 스님과 천제 스님은 성전암으로 향했다. 하지만 산중 대중 모두가 입산을 환영한 것은 아니었다. 때문에 성철 스님은 큰절과의 거리를 두고자 암자 주변에 철망을 두르고 결제(結制)·해제(解制)·입제(立制) 3일과 설날·추석에만 외부인 출입을 허용했다. 대중을 위해서였다. 이렇듯 자연스럽게 시작된 성전암 은둔 생활은 훗날 김용사 대중법회와 백일 법문을 준비하는 기간이 됐다. 

각별한 도반이던 청담 스님과 불교인재 양성을 위해 고민했던 흔적도 찾아볼 수 있다. 불교정화 이후 승가 교육의 절실함을 깊이 느낀 두 스님은 1964년 실달학원을 세웠다. 수도 고행 길을 걸었던 실달(싯다르타) 태자의 정신을 계승하자는 의미가 담긴 명칭이다. 실달학원은 현재 승가대학의 근간이 됐고 해인총림의 뿌리가 됐다. 성철 스님이 총림 공주규약을 참조해 ‘실달학원 실천요강’을 작성했고, 그 초안이 친필로 남아있다.

서옹 스님이 주지던 김용사에서 성철 스님은 대중법회를 열었다.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학생들이 수련을 위해 방문한 것이 대중법회의 계기가 됐다. 성철 스님은 불교교리를 21가지 개념으로 쉽고 명쾌하게 정리했고 법회를 준비했던 친필 자료들이 남아있다.

김용사 대중법회는 해인총림 백일법문의 기초자료로도 활용됐다. 해인사가 조계종단 출범 이후 최초의 총림(강원·율원·선원을 모두 갖춘 대찰)으로 지정됐고, 성철 스님이 초대 방장에 추대됐다. 스님은 첫 동안거 때 방대한 팔만대장경과 논서와 선어록을 회통해 매일매일 법문했다. 이 백일법문은 불교가 시대에 뒤지고 미신으로 폄하되던 세간의 인식을 바꾸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불자들의 자신감도 커졌다.

‘시월록’의 시월(示月)은 ‘달(月)을 보여주다’란 의미다. 은사가 떠났지만 상좌는 초하루법회마다 성철 스님의 친필을 한 면씩 복사해 대중과 함께 탐구했다. 스승의 육성을 잊지 않기 위해서였다. 또 더 많은 사람들이 성철 스님의 법어로 마음 속 밝은 진리를 깨우치길 바라서였다. 다만 “불교책은 법보시해야한다”는 천제 스님의 신념에 따라 비매품으로 배포하기로 했다.  

정주연 기자 jeongjy@beopbo.com

[1627호 / 2022년 4월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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