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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번의 봄을 맞이하며

기자명 혜달 스님
  • 세심청심
  • 입력 2022.04.11 15:40
  • 수정 2022.04.11 21:00
  • 호수 1628
  • 댓글 1

산 아래 시골마을에 바랑 놓으니
맑은공기는 덤 들여야할 품은 배
박사 소문에 운세 봐달란 부탁도
‘잘 모르는 스님’ 된 후 찾은 평범함

바람결은 아직 차가운데 겨우내 흙속에서 숨을 죽이던 풀들은 기지개를 쭉 켜며 봄 맞으러 나온다. 덩달아 내 일손도 바빠져야 한다. 시도 때도 없이 제멋대로 여기저기 불숙불숙 땅을 비집고 나와 너풀너풀 자라는 풀을 없애야 해서다. 시골 아닌 시골로 들어온 덕에 맑은 공기는 덤이지만, 들여야 할 품은 배다.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나는 방해받지 않고 홀로 조용히 지내고 싶어 산 아래 자그마한 마을로 들어왔다. 마당을 세면으로 포장하자는 권유도, 마당에 돌이라도 두껍게 깔아야 풀이 덜 나온다는 조언도 연신 뒤로하고 잔디를 심었다. 그런데 이때부터 나의 고생길이 시작된 것이다. 여름이면 잔디가 어찌나 쑥쑥 자라던지 감당이 되지 않았다. 

자연을 유기농으로 잘 보살피겠다는 다짐은 해가 거듭될수록 힘을 잃어갔고, 한가한 오후 허리를 굽히고 잔디 사이사이 풀을 뽑던 나는 잔디 속에 똬리를 틀고 있던 뱀과 눈을 마주치고 말았다. 뱀은 고개를 곧추세우고 잔뜩 긴장한 채 나를 쳐다보고 있었고, 뱀과 눈을 마주친 순간 나는 뒤로 물러선 채 동결되어 버렸다. 그 후론 잔디마당에 발 들이는 게 무서워 오갈 때면 갓으로 뱅글뱅글 돌아서 다녔다.

해마다 거듭되는 생면부지 풀들의 세상나들이는 나의 생존 뇌를 당황 시켰고, 뽑아야 할 풀과 뽑지 않아도 되는 식물을 익히느라 사고 뇌는 쥐가 날 정도다. 아침나절 풀을 뽑고 다음 날이면 특히 비 온 다음 날은 낯도 코도 모르는 풀이 머리를 쏘옥 내밀고 “스님, 안녕!”하고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전날 고생이 물거품 돼버린 허탈감에 움튼 풀의 인사가 반갑지만은 않다. 참으로 밉다. 풀은 뽑기 무섭게 또 나오고, 잔디는 깎고 돌아서면 자라서 결국 유기농 자연 돌보기 계획을 접어야만 했다. 

지금 마당엔 잔디가 없다. 심심찮게 출몰하는 뱀을 걱정하자 마을 분들이 이구동성으로 잔디 때문이라고 해서다. 뱀도 무섭고, 커다란 두꺼비가 뱀 입속에 거의 절반이 물린 채 꽥꽥 소리치는 모습을 보면서 잔디를 없앴다. 그랬더니 온갖 풀이 제 세상인양 온 마당을 덮어 더더욱 힘들어졌고 결국 보온덮개로 마당을 덮어버렸다. 잔디마당을 가꾸는 일은 나처럼 일머리 없고 일에 게으른 사람은 애당초 시도해선 안 될 일이다. 익숙잖은 풀들에 지쳐 마당을 보온덮개로 덮고 나니, 가끔 가꾼 채소를 나누어 주시는 어르신이 마당에 앉아 놀아도 되겠다며 부러워한다. 

정착 후 ‘박사스님이 이사 왔다’는 소문도 시작됐는데, 친구 스님이 나를 마을 분들에게 알리기 위해 이곳저곳 인사 다니며 퍼뜨린 거였다. 두어 달 후 나는 이 소문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 어르신 몇분이 찾아와 넌지시 말을 건넨다.

“스님, 올 운수 좀 봐주세요.” 
“예! 저는 그런 것 볼 줄 모릅니다.”
“그냥 봐 달라는 것 아닌데~”
“아이고, 저는 정말 모릅니다.”
“아이! 책이 이렇게 많은데 모른다 하세요, 복채는 더 드릴게요.”

서가에 꽂힌 전공 책 5000여권 모두를 사주운세 보는 책으로 아신 것이다. 이 책은 사주운세 보는 책이 아니고 부처님 말씀을 모아 놓은 책이라 설명하자, 대뜸 “이렇게 많은 책이 스님 머리에 들어있는데 얼마나 잘 아시겠어”하며 채근한다. 어르신들은 나를 항간에 사주관상운세 봐주는 ‘철학박사 ○○○철학관’으로 생각하신 모양이다.

의심어린 눈초리는 한동안 계속되었고, 가끔 눈치 봐가며 새해 운세를 물어오면 불교달력 뒷면의 총 운세 ‘◎, ○, △, ☓, ❈’를 보여주었고, “딸이 올해는 결혼할 수 있을까요?”하면 “콩깍지 끼면 갑니다”하고, “손자가 집을 나갔는데 살아서 돌아올까요?” 걱정하면 “살아서 꼭 돌아올 거예요”하며 위로해준다. 며칠 후 그 손자는 되돌아왔고, 다행한 우연에 내 입을 틀어막고 싶었다. 마을 주변 구성원을 얼추 파악한 나는 전문성과 분업화를 내세우며 사주, 관상, 운세, 궁합은 윗동네 무당님에게, 49재를 포함해 제사와 기도는 저 윗동네 절로 보냈다. 불교공부, 한글공부는 내가 자원했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고, 신통치 않은 스님임을 눈치챘는지 이제 더는 묻지 않는다. 나는 ‘모르는 스님’이 되었다.

혜달 스님 (사)봉려관불교문화연구원장
hd1234369@gmail.com

[1628호 / 2022년 4월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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