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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몸이 좀 어떠신지요!”

기자명 하림 스님

익어야 할 시기 새 열매 맺으면
익기 전에 겨울 와 결국 망가져
오른 시간만큼 천천히 내려와야
급하게 서두르면 사고나기 마련

오랜 도반이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이 들려서 안부 전화를 해봅니다. “괜찮아요. 혼자 푹 쉬는 시간인데요. 많이 아프진 않아요. 다만 시간이 걸릴 뿐이지요.” 돌아오는 대답은 스님답습니다. 늘 스님들은 혼자가 될 준비가 되어있고 혼자가 되는 것이 처음 출가할 때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어쩌면 바쁘게 살던 사람이 나이 들면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스님들의 고향은 혼자가 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니 인간이라면 모두 홀로 이 세상에 왔다가 갈 때도 홀로 가게 됩니다. 그때 따라오는 감정이 외로움이고 쓸쓸함입니다. 또, 아쉬움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도반 스님은 20년 넘도록 남쪽 땅끝에서 아름다운 절을 가꾸었습니다. 모든 것을 걸고 살아왔지만 세월은 지나고 인연도 바람처럼 지나갑니다. 

잠깐이라도 얼굴을 보고 싶어 로비에서 만났습니다. 환자복을 입은 모습은 왠지 수많은 사람 속에서 작아 보입니다. 그동안 너무나 큰 모습으로 보였던 탓도 있습니다. 오히려 이제 인간세계에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스며들어 보입니다. 한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들로 안쓰러운 마음을 나눕니다. 대화 속에서 ‘건강하게 살자구요’라는 마음이 오고 갑니다. 로비에 사람들이 넘쳐서 앉을 자리도 없이 선 채로 대화하다가 잠시 거닐고는 작별합니다. 평생 산과 하늘과 바다를 보면서 살던 사람이 나무도 풀도 땅도 없는 병원 건물 안에서 4주를 있어야 한다니 병에 대적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도 없다는 것을 한 번 더 보게 됩니다. 그래도 지혜로운 사람이니 자신의 시간을 본인에게 유익한 시간으로 활용하리라 믿고 돌아왔습니다. 

돌아보니 저도 요즘은 체력이 떨어지는지 아니면 원력이 작아지는지 아니면 뭔가 열정이 생기는 일을 찾지 못한 것인지 조금 쳐진 느낌입니다. 삶의 변화가 오는 시기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체력이나 열정이 40대와 다르다는 느낌이 오고 그런 열정이 필요한 사회에서는 물러나야 할 시점이 다가오기도 합니다. 저도 이 과도기라는 시기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체력과 열정으로 하던 것들은 내려놓으려고 합니다. 그것은 이제 제가 잘 쓸 수 있는 도구들이 아니고 제 몸에도 마음에도 맞지 않는 것들입니다. 

앞으로는 다른 것들을 쓰고 살려고 합니다. 우선 긴 인생을 산으로 보면 참 많이 올라왔습니다. 길로 보더라도 참 멀리 왔습니다. 올 때는 앞만 보고 달리느라 이렇게 멀리 온 줄 몰랐습니다. 이제는 돌아설 때가 되었습니다. 뭔가 열정이 필요한 일은 가능하면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가끔 익숙한 업력이 자꾸 저를 종용합니다. 길이 보이고 방법도 보이고 남들보다 잘 해낼 것 같으니 참기가 힘이 듭니다. 그래도 참으려고 합니다. 

사과나무도 봄에는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여름이면 바람과 햇빛에 자라고, 가을이 되면 익어갑니다. 잘 익어가야 할 시기에 새로운 열매를 맺으면 그 과일이 익기 전에 겨울이 오고 결국 사과는 익지 못하고 떨어지고 맙니다. 무엇인가를 결정하고 책임지려는 습관들을 줄여야 할 시기입니다. 아직도 차를 보면 불쑥불쑥 내가 운전을 하고 싶습니다. 아니면 잔소리를 하려고 합니다. 올라오는 이 업력에서 아직도 걸리고 자유롭지 못합니다. 정말 큰 일입니다. 이제 제가 해야 할 일들은 뒷정리고 설거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열정적으로 하는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뒷바라지하고 빠뜨린 것들이 있으면 주워주고 바쁘다고 뭔가 부탁하면 고맙다고 해주는 이런 일들 말입니다. 

작은 일이라도 비우고 도와주면서 처음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 내가 걸어야 할 길이 아닌가 싶습니다. 산은 오르는 시간만큼 천천히 내려와야 합니다. 대부분 산에서의 사고는 내려올 때 일어납니다. 급하기 때문이지요. 

지금 시작해도 빠른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매일 매일 하나씩이라도 비워나가려고 합니다. 홀로인 시간이 오히려 고향에 온 것처럼 반갑고 평온하고 편안하게 느껴지는 순간을 준비합니다. 참 열심히 살았던 작은 거인의 모습을 보면서 더 절실해진 결심입니다. 오늘도 좀 더 가벼워지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하림 스님 부산 미타선원장 whyharim@hanmail.net

[1629호 / 2022년 4월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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