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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위한 의사결정 

기자명 성원 스님

꽃이 피고, 봄비가 내린다. 조금 지나면 신록이 대지를 가득 덮을 것이다. 폭설로 도로가 봉쇄되었던 것이 불과 얼마 전인 것 같은데 지금은 온 산에 봄이 가득하다. 봄의 전령사를 자처하는 벚꽃들은 벌써 꽃잎을 모두 떨구었다.

몇 주 전 산림조합 묘목 직판장에서 은행나무 묘목과 핑크셀릭스, 왕벚나무를 구입해 비 오는 날 뜰에 심었다. 또 작년 법당 둘레 멋지게 핀 접시꽃의 씨앗과 뜰에 가득 핀 봉숭아꽃 씨앗을 모아 두었는데 봄비 내려 모종판으로 한밭 가득 심었다. 그뿐만 아니다. 루피너스, 라벤더, 안개꽃, 수레국화, 솔체꽃, 꽃양귀비, 공주과꽃 씨앗도 심었다. 꽃이 좋아 심었지만 심다 보니 이 일에도 욕심을 내는 맘이 가득했다. 꽃 심는 일을 망설이게 하는 것이 비단 욕심뿐만 아니다. 어디에 심을까를 두고도 의견이 분분하다. 넓게 보면 정원과 시설 둘레에 꽃을 활짝 심자는 데 이견이 없는 듯하지만 진행하다 보니 가지가지 의견으로 충돌하게 된다. 오래 두고 기를 은행나무 자리 잡기는 정말 쉽지 않았다.

회의 때마다 의견 조율이 쉽지 않은데 자연은 무수히 많은 문제를 척척 잘도 풀어가는 것으로 보인다. 정말 자연스럽게 풀려가는 것을 보노라면 사회에서 풀리지 않는 갈등은 결국 우리들의 원칙 없는 주의·주장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현재 우리 주변의 무수한 기기 장치들은 뉴턴이 발견한 힘의 3법칙에 준거하여 단 한 번의 어긋남 없이 잘 돌아가고 있는 것을 보노라면 그 법칙을 알아낸 과학자도 대단하지만, 자연이란 단순한 원칙을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조화롭고 아름다운 세상을 펼쳐 보이는 것이다.

정권이 바뀌는 현시점에서 엄청난 갈등이 노출되고 있다. 모두 자연적인 현상을 뒤로한 채 각자의 욕심에 편승한 결정을 하다 보니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얼마 전 집안에 상(喪)이 있었는데 묏자리를 두고 세대 간 이견이 있었다. 갑자기 출가한 스님의 의견을 물었다. 그냥 견해를 묻는 것인지 결정을 기다리는 것인지 알지는 못했다. 잠시 여기다 저기다 하는 생각을 멈추고 근본 자리에서 생각해봤다. 사람이 풍수를 들어 자연의 기운을 인간사에 투영시키려는 노력은 많았지만 그저 좋은 게 좋다는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는 내게 답을 구하니 뭐라 답하기가 난감했다. 그래서 어르신들과 젊은 사람들의 의견이 충돌될 때는 묏자리 곁에서 오래 있을 사람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물론 젊은 세대들은 좋아했지만 소위 어르신들은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선원에서 정진할 때 일이다. 도반스님 한 분이 해제하면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우리나라 주요 명산에 박아둔 철심을 뽑으러 다닌다고 했다. 해제 후 같이 한번 가자고 했더니 그 후로 방선 때마다 그 이야기만 했다. 너무 듣기 싫어져서 다시 생각해봤다. 과연 일본이 철심을 박아서 우리나라의 기운이 흐트러지고 눌렸을까? 일본은 철심을 박기 전에는 승승장구하여 조선을 식민지화했는데 어떤 지기(地氣)를 움직일 요량으로 철심을 박았다면 큰 실수였다. 철심 박은 후 일본은 패망하고 대한민국은 더욱 승승장구하고 있지 않은가? 일찍이 부처님은 바이샬리 릿차위족 왓지동맹의 올바른 가치관을 중심으로 상호 존중하는 결속력을 칭찬하시면서 단순히 무력으로 점령하기 어렵다는 가르침을 주셨다.

업무 중에서도 의사결정이 선택의 갈림길에서 머뭇거리면 ‘누가 나이가 어리지?’라고 묻고는 예외 없이 나이 어린 사람들의 의견으로 확 결정해 버리곤 한다. 무엇보다 결정한 상황과 조금이라도 오래 함께 할 사람들이 공감하는 쪽으로 결정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해서다. 지금 국운이 걸릴 수도 있는 대통령의 거처를 옮기는 일을 자신들만의 생각으로 결정하지 말고 옮긴 후 그곳을 중심으로 오래도록 살아갈 젊은이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나이가 들면 점점 자신의 고집 내려놓기가 더 쉽지 않은 것 같다. 그리해야 더 좋은 데도 말이다.

성원 스님 약천사 신제주불교대학 보리왓 학장 sw0808@yahoo.com

[1629호 / 2022년 4월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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