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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비극과 대리고

4월은 만물이 겨울로부터 완전히 해방되는 날이다. 개나리, 진달래에 이어 목련과 벚꽃이 화려함을 더하고, 메말랐던 가지에선 연초록 잎이 앞다퉈 솟아난다. 신기할 뿐이다. 그러나 딱 100년 전 토머스 엘리엇은 그 유명한 ‘황무지’에서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라고 읊었다. 인류의 지옥문이 열린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문명 파탄의 원인을 욕망에서 찾는다. 자본, 과학, 국가가 한패가 되어 지구를 황폐화하고, 절망의 비가 대지를 적시던 때다. 결국은 평화를 뜻하는 “샨티, 샨티, 샨티”를 외치는 것으로 장시가 끝난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인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류는 제3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왔다. 여전히 정신 차리지 못하고 방황하는 인류는 언제쯤 철이 들 것인가. 한반도 또한 마찬가지다. 1948년의 제주 4·3항쟁, 1960년의 4·19혁명, 1975년 4·8인혁당 판결, 2014년 4·16 세월호 사건은 4월을 그냥 지나가게 하지 않는다. 정의를 향한 백성들의 함성과 혁명이 있는가 하면 타살당한 약자들의 비명과 원한이 하늘을 벌겋게 물들인다.

하여 이 땅에 진리가 없다고 해서는 안 된다. 진실은 드러나고, 시비는 가려지며, 선은 악을 물리친다. 선인선과 악인악과는 역사의 정맥이다. 대충 넘어갈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세월이 흘러도 역사의 심판은 이뤄진다. 그 희생자들의 넋이 살아남은 자들을 움직여 한을 풀게 한다. 영혼의 심층부에서는 죽은 자와 산 자가 함께 만난다. 그러니 아무리 역사가 퇴행하는 것처럼 보여도 조금씩 전진한다. 그것이 희망이다. 대리고(代理苦)를 짊어진 그들이 있었기에 자본의 욕망 분출, 과학의 맹종과 비행(非行), 국가의 폭력 독점이 드러난다. 그들이 바로 우리며, 우리가 그들이 되어 역사를 이끈다.

대리고는 예수의 대속(代贖)과도 통한다. 그는 ‘마태복음’에서 “인자(人子, 사람의 아들)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니라”라고 말한다. 불교는 한 명만이 아니라 수많은 보살들이 대리고를 짊어지며 대승정신을 펼치고 있다. ‘유마경’에서는 보살이 어느 정도 수행을 해야 이 사바세계에서 상처받지 않고 정토에 태어날 수 있는지에 대해 유마거사는 “중생에게 이익을 주되 바라지 않으며, 모든 중생을 대신하여 갖가지 괴로움을 받고, 지은 공덕은 모두 남에게 베풀어 중생들에게 평등한 마음을 가지고 겸손, 하심하여 걸림이 없는” 마음 등의 여덟 가지를 말한다. 고통받는 중생의 대리자로서 무념을 기반으로 모든 공덕마저 회향하는 마음이다.

이 세계는 이러한 보살들이 여전히 활동하고 있다. 주위를 둘러보라.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 것은 성불제중을 서원한 보살들이 지구와 하늘을 떠받치는 아틀라스처럼 진리와 정의를 떠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세계는 붕괴되어 불모의 사막처럼 먼지로 뒤덮여 있을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제어되지 않은 자기 분열과 자아의 폭주 아래 희생당한 수많은 이웃들이 병든 문명의 부조리와 모순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대리고를 짊어진 보살들이다. 지금 무자비한 총과 미사일로 죽어가는 우크라이나의 숱한 민초들이 길길이 날뛰는 인간의 야만성을 있는 그대로 고발하는 보살들이다. 

한국 또한 대리고를 짊어진 보살들의 피와 육신이 스며들어 비옥해진 땅이다. 멀리는 식민지 해방을 위해 풍찬노숙하며 싸운 우국지사들로부터 권력의 폭압에 단호히 저항한 민초들, 분단 모순 속에 터무니없이 박해받고 스러져간 시민들, 인간의 탐욕과 국가의 기능부전으로 차가운 바닷속에 잠긴 아이들이 다 대리고를 짊어진 보살들이다. 4월의 하늘을 볼 때 눈이 아린 것은 우리 곁에 다녀간 이 보살들이 흩날리는 꽃비처럼 눈물 흘리며 돌아오기 때문이다. 총원(總願)인 사홍서원을 받든 우리 또한 무지와 폭력에 대항할 대리고의 수행자들 아닌가.

원영상 원광대 원불교학과 교수 wonyosa@naver.com

[1629호 / 2022년 4월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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