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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나이 통일 ‘유감’

기자명 안직수

서열과 학번을 강조하는 우리나라에서 헷갈리는 문화가 하나 있다. 나이, 띠 등이 혼합된 서열 매기기다. 이는 단일민족 국가의 보편적 특징이기도 하며, 해방 후 군사문화의 병폐이기도 하지만 문화적 특수성을 담은 부분도 적지 않다. 일례로 필자는 음력으로 1971년 12월생이다. 돼지띠이면서, 1990년에 대학에 입학했다. 그런데 양력으로는 1월생이 된다. 그렇다고 쥐띠는 아니다. 12지신으로 구분하는 띠는 음력으로 계산하는 까닭이다. 양력이 보편화 된 요즘 새해 1월1일을 호랑이띠 첫 출생이니 하는 등의 언론도 있지만, 이는 동양철학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온 ‘오보’다.

재수 않고 대학을 진학하다 보니 90학번이 됐다. 우리나라 학교 입학이 3월1일 기준이라서 1월생인 필자는 다른 친구보다 한 살 빠르게 학교에 입학했다. 또 현재 필자의 한국식 나이는 52세다. 만 나이는 양력을 기준으로 하다보니 49세로 줄어든다. 위에서 나열한 것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나이 서열을 매기기는 참 헷갈리는 점이 많다. 그런데 사회생활에서는 이런 부분을 일일이 따지지도 않고, 복잡할 것도 없다. 71년생 돼지띠를 공식화해 내가 속한 집단에서, 내가 관계를 맺어가고 있다. 아무도 불편해하지 않는다.

윤석열 정부가 정책방향으로 내건 여러 사안 가운데 “내년부터 만 나이로 통일”이라는 문구가 유독 거슬린다. ‘왜 굳이’라는 물음표를 달아본다. 생명의 시작을 보는 관점은 동양과 서양, 특히 우리나라와 외국이 다르다. 외국은 내 눈에 생명이 태어난 것이 보이는 시점을 출생으로 본다. 그때부터 나이를 계산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어머니에게 잉태한 시점으로 생명이 시작됐다고 본다. 어머니는 한 생명을 10개월 동안 몸 안에 품고 살면서 좋은 소리를 듣고, 좋은 말을 하며 태교를 한다. 그래서 한국의 나이는 만 나이보다 한 살이 많다. 얼마나 아름다운 생각이고, 얼마나 과학적인 관찰의 결과인가. 필자는 한국식 나이를 접할 때면 생명의 시작을 바라보는 그 자체로 부처님의 법문과 같다는 생각을 종종하곤 한다.

그런데 일부에서, 특히 서구에서 공부를 한 사회지도층은 이런 부분이 마뜩치 않은가 보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문제를 제기하더니 정권교체 시기에 슬그머니 이 문제를 끄집어내, 결국 바꾸려하고 있다. 사실 그런 노력 자체가 의미 없다. 이미 1970년대 음력 대신 양력 중심의 달력을 사용하면서 법적인 모든 서류의 나이를 만 나이로 계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나이는 처음 만난 사람들이 서로 통성명할 때 사석에서 나오는 숫자에 불과하다. 이를 바꾼다는 발상은 개개인의 인식까지 국가가 통제하겠다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

과거 오세훈 서울시장을 필두로 몇몇 지자체장이 간판이 지저분해 도시미관을 해친다며 대대적인 정비에 나선 일이 있다. 내 눈에 거스르면 내가 안 보고 지나가면 될 일 아닐까. 크기와 디자인이 다른 거리 간판이 어떤 불편함과 악영향을 끼치길래 세금을 투입해 일관되게 바꿔야 할까. 소상공인들은 한 명의 손님이라도 더 모시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간판을 디자인한다. 그런데 이런 노력을 중요하지 않고, 소위 높은 분이 보기에는 “외국의 어디를 가 본 경험으로 볼 때 저 간판들은 지저분한 결과물이니 치우라”는 식의 발상의 결과일 뿐이다.

우리 사회에 불편함이나 위험을 주는 행위가 아니면 사람들의 사고는 ‘개성’이란 이유로 받아들여야 한다. 내 생각이나 취향과 다르면 상대를 고쳐야 한다는 발상은 위험하다. 자칫 이런 주장이 집단화되면 전체주의적 폐단으로 발전할 수 있다.

향후 5년간 나라의 살림을 구상하고 준비하느라 바쁜 윤석열 정부에 한마디 하고 싶다. 내가 내 주변 사람들을 만나 나이를 주고받는 것은 개인들이 알아서 할 터이니, 새 정부에서는 그런 일로 사회적 논쟁을 붙이지 말고 더 중요한 일에 집중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안직수 복지법인 i길벗 상임이사 jsahn21@hanmail.net

[1630호 / 2022년 4월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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