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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빔’ 입고 연등놀이한 민족 대명절

기자명 성진 스님
  • 법보시론
  • 입력 2022.05.02 14:45
  • 수정 2022.05.03 09:34
  • 호수 1631
  • 댓글 0

‘아기네들이 손을 꼽고 기다리던 사월팔일의 명절이 돌아왔다.··· 도미국에 배를 불리고 때때옷으로 파일빔한 도련님, 적은 아씨들이 딴 세상에 난듯하다.··· 견디는 집 아이들은 윤이 흐르는 색비단으로 내리 감았지만, 그렇지못한 바깥방 그네들까지 넝마를 빨아서라도 고웁게 물을 들여입고 동무끼리 손목을 이끌고 명일이 한 때라고 벙글벙글 돌아다닌다.’

이 글은 1917년 5월29일 ‘매일신보’에 실린 기사로 당시 부처님오신날의 풍경을 설명한 것이다. 이 기사에서 필자의 눈을 사로잡은 두 단어가 있다. 하나는 ‘명절’이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파일빔’이라는 단어이다. 지금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명절은 ‘추석’ ‘설’ 정도이고 국어사전에도 ‘대보름날, 단오, 동짓날’ 정도로 쓰여 있다. 그런데 이 당시의 신문들을 보면 ‘부처님오신날’을 민족의 대명절로 당연히 여기며 글을 쓰고 있다. 

‘영롱한 색동반배 빛고은 파일빔을 한 아이들이 길에 널리어 정초를 다시 당한 듯 그 아름다운 빛을 이루 형상화할 수 없더라’(1915년 5월22일 매일신보).

명절에 입거나 신는 새 옷이나 신발을 ‘명절빔’이라고 한다. 그래서 설날에 입는 옷을 ‘설빔’이라고 부르듯이 부처님오신날인 사월팔일에 입는 옷과 신발을 ‘파일빔’이라고 쓴 것이다. 그리고 삼국시대 이후로 우리 조상들이 보낸 명절 중에서 여성과 어린아이들이 시내거리를 낮이나 해가 진 밤에도 나와 놀 수 있는 명절은 부처님오신날뿐일 것이다. 왜냐하면, 거리와 상점에 연등이 걸리고 집집마다 긴 대나무 장대에 가족 수만큼의 연등을 걸어 수명장수를 기원하는 등간(燈竿)이 세워진 것은 이 날뿐이기 때문이다. 

‘종로네거리에서 관등불 장하다니까 늙은이, 젊은이, 사내, 아낙네 할 것 없이 삼십만 부민이 통틀어 쏟아져 나온 듯하여 종로 네거리에는 그야말오 인산인해를 이루었다’(1925년 5월1일 조선일보)   

이토록 민족의 대명절로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온 민족이 함께 즐기던 부처님오신날이 이제는 국어사전 검색에서는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니 지금 대부분의 불자나 국민들은 일제의 서슬 퍼런 강점기 속에서도 민족의 세시풍속이었고 대명절로 이어져 왔음을 알지 못할 것이다. 

부처님오신날이 국가공휴일로 지정 된 것은 ‘크리스마스’가 공휴일로 지정된 26년 후 대법원 상고까지 가는 우여곡절 끝에 겨우 지정되었다. 그리고 통일신라시대부터 시작되었던 연등회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2012년에 와서 비로소 이루어졌다. 그 후 8년 만에 2020년 12월 유네스코(UNESCO)에서는 연등회를 세계적인 유산으로 인정하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한다. 민족의 대명절이었지만 한국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미군정과 분단의 역사 속에서 ‘민족 명절’의 단어에서 지워진 ‘부처님오신날’의 ‘연등회’가 등재된 것이다. 

유네스코에서 ‘연등회’를 세계인류의 유산으로 지정한 것에는 불교라는 한 종교의 행사로서가 아니다. 한반도 전역에서 남녀노소 모두가 자발적으로 연령과 국적, 심지어 종교에 관계없이 참여하여, 세상의 아픔과 기쁨을 함께 위로하고 축하하며 오랜 세월부터 지금까지 우리 민족에서 세계인의 축제로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은 우리가 ‘부처님오신날’이 민족의 ‘명절’이었음을 알리고 다시금 되찾을 수 있는 당당한 이유일 것이다.

조계사 마당의 연등에는 ‘나누면 따듯해요’라는 글이 새겨져 있고 올해의 봉축 표어는 ‘다시 희망이 꽃피는 일상으로’이다. 한 분, 한 분이 올린 연등 하나, 하나에도 ‘우리’를 담아 코로나로 지쳤던 모두의 마음을 위로하고 용기를 갖자고 한다. 바로 이런 마음으로 함께 하는 축제이기에 ‘파일빔’을 입고 ‘연등’을 밝히는 민족 대명절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성진 스님 조계종 백년대계본부 미래세대위원
sjkr07@gmail.com

[1631호 / 2022년 5월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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