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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꿀암을 아십니까

고인(故人)이 된 어느 대통령이 ‘갱제’를 살리기 위해 ‘강간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가 시중의 놀림감이 된 적이 있다. 복모음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 대통령이 ‘경제’를 ‘갱제’로 ‘관광’을 ‘강간’으로 발음하는 바람에 일어난 웃지 못할 해프닝이었다. 그 정도는 아니지만 나도 몇 가지 발음은 여전히 잘 안 된다. ‘ㄱ’과 ‘ㄲ’, ‘ㄷ’과 ‘ㄸ’, ‘ㅓ’ 와 ‘ㅡ’, ‘ㅅ’과 ‘ㅆ’ 등을 분간하지 못한다. 그래서 ‘고추장’은 ‘꼬추장’이고 먹는 ‘밤’은 ‘빰’이며, ‘성공’은 언제나 ‘승공’이고 ‘쌀’은 죽으나 사나 ‘살’일 뿐이다. 윗세대는 ‘ㄱ’과 ‘ㅈ’ 발음을 뒤섞어 ‘기름’을 ‘지럼’이라고 하는 어른들도 있었다. 말이 길어진 것은 순전히 ‘꼬꿀암’이란 절 이름 때문이다. ‘꼬꿀암’은 경주 골굴사의 옛 이름이었던 ‘골굴암’의 지역 발음이다. ‘꼬굴암’의 본사인 기림사도 ‘지름사’라고 불렸다. 어릴 때의 기억들은 후천적인 유전자가 되는 듯 성년이 된 다음에도 몸과 마음속 어딘가에 세포처럼 살아 있는 것만 같다. 나에게는 ‘꼬꿀암’이란 단어가 그런 경우가 아닐까 싶다. 어머니의 손맛과 할머니의 말맛은 함부로 잊을 수 없다.

‘꼬굴암’은 내가 살던 동네에서 경주 방향 신작로를 따라 서너 시간은 족히 걸어가야 했던 제법 먼 곳에 있었다. 5일 장이 열리던 양북면 소재지 어일리에서 한 시간 남짓한 거리였다. 어머니와 동네 숙모들은 유일한 탈출구였던 어일 장날에 큰맘 먹고 인근의 ‘꼬꿀암’을 다녀오시곤 했다. 보나 마나 자식이 잘되기를 부처님 전에 빌고 또 빌었을 것이다. 어느 시인의 말을 패러디하면 지금의 나는 그런 어머니가 9할을 만들어주셨다. 나와 불교의 첫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아카시아꽃 향기가 좋았다거나 바위 절벽 위에 부처님이 앉아 계신다는 말씀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거기서 조금 더 올라가면 ‘지름사’가 있었지만, 식구들의 저녁밥과 쇠죽을 끓여야 하는 어머니는 감히 그곳까지 갈 엄두를 내지 못하셨다. 어머니는 생전에 기림사 오백나한전(五百羅漢殿)에 가보고 싶다는 말씀을 여러 번이나 하셨다. 

내 유년기의 기억을 종합하면 당시 ‘꼬꿀암’은 인근 지역에서 소문난 핫플레이스였다. 이불 속에서 몰래 들었던 형과 누나의 추억담 속에는 언제나 ‘꼬꿀암’이 등장했다. 위치상 사방 삼십리 이내에 살고 있던 처녀, 총각들이 어른들의 눈을 피해 조심스럽게 소개팅과 단체미팅을 할 수 있었던 최적의 장소가 아니었을까 싶다. 지금은 절 이름도 골굴사로 바뀌고 몇 번의 중창 불사 끝에 편의시설도 갖추게 되었지만, 그때에는 서로 손을 맞잡아야 마애불상이 있는 가파른 바위 위로 오를 수 있었다. 안성맞춤의 데이트 코스였던 셈이다. 처음 본 청춘남녀가 급한 나머지 자기도 모르게 내민 손을 누군가 덥석 잡았을 장면을 상상하면 바로 눈앞에서 행복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누나는 그렇게 만난 어떤 잘생긴 청년과 사랑에 빠졌다고 했다. 동본이성(同本異姓)인 김해 김씨와 김해 허씨였던 두 사람은 우여곡절 끝에 백년가약을 맺었지만, 슬픈 영화 속 이별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신혼 때 사고를 당한 자형이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발생한 일이었다. 

그 시절 ‘꼬꿀암’에서 만난 연인들은 기림사 오백나한전에 들러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것이 유행이었다고 한다. 그 가운데는 더러 호기심에 오백나한전의 불상 헤아리기 게임을 하는 커플들도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다 중간에 그만 숫자를 까먹으면 센 만큼의 햇수만 만나다가 헤어진다는, 말을 주고받으면서 서로 깔깔거렸다고 했다. 아마 열 개 이상은 세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만큼 불상이 많고 모양도 엇비슷하기 때문이다. 오백나한전의 불상들은 정말 똑같이 그러나 다르게 보였던 기억이 새롭다. 서로 닮은 듯 조금은 다른 듯 천진난만(天眞爛漫)한 불상들이 좌대(座臺) 위에 빼곡했다. 저마다 해맑은 미소를 경쟁하듯 얼굴 가득히 머금고 있었다. 부처님오신날 즈음에는 그곳 ‘지름사’와 ‘꼬꿀암’에도 아카시아꽃이 만발해 있을 것만 같다.

허남결 동국대 불교학부 교수 hnk@dongguk.edu

[1631호 / 2022년 5월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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