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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보다 옳음이다

새 정권이 들어서면서 여러 가지 공약(公約)들이 공약(空約)으로 될 가능성이 점쳐지고, 그것을 사납게 비난하는 여론이 일고, 또 안 지킨다는 것이 아니라는 변명이 이어지는 진부한 정치적 행태가 일어나고 있다. 

정치인의 말, 그것은 어느 누구의 말보다도 무거워야 할 것이다. 여러 사람의 앞에 나서서 그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겠다는 정치인의 말이 가벼우면 나머지는 볼 것이 없다고 말해도 좋지 않을까? 그런데 어떤 말보다 믿지 못할 것이 정치인의 말이라는 것이 우리 국민의 일반적인 정서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런 행태들의 연장선에서 대통령 선거 공약도 나왔을 것이기에, 그 공약들이 모두 실현가능하다고 믿기는 힘들다. 표심을 의식한, 저열한 ‘정치적’ 속셈이 깔린 선정적 공약들이 상당히 끼어 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일단 당선이 되고나서 그것들을 그대로 지키기에는 많은 무리가 따를 것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그것을 비판하는 것은 당연하고도 또 마땅한 일이다. 한 나라의 대표가 되려는 사람이 함부로 약속을 하고, 상황에 따라 그것을 쉽게 팽개친다면 그 자격 자체를 의심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하여 그 약속들을 반드시, 꼭 지키라고 강요해야 할 것일까? 만일 그 약속에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었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나라의 운영에 관계되는 것들이, 약속을 꼭 지켜야 한다는 강요 때문에 위험성을 무릅쓰고 시행된다면 그 폐해는 어찌할 것인가?   

‘논어’에는 ‘말로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고 말을 함부로 하고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좋다는 것은 아니다. 말의 약속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말이다. 그것은 무엇인가? ‘옳음[義]’이라는 보다 높은 가치가 있다. 말로 한 약속을 지키는 것이 ‘옳음’이라는 보다 높은 가치를 해치는 경우에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더라도 올바른 길을 따라야 한다. 그런데 지금 정치권의 행태는 큰 ‘옳음’에 대한 관심보다는 약속을 지키느냐 안 지키느냐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를 지켜보는 국민들은 양극화의 편가르기에 빠져 있거나,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원색적인 소리를 내고 있을 뿐이다. 이런 방식의 논의는 전혀 생산적인 결과를 낼 수 없다.

공약을 지킬 수 없는 현실이 드러나 공약(公約)을 공약(空約)으로 만들고서, 진정성 있는 사과나 해명도 없이 변명으로 슬그머니 넘어가거나, 내용도 없는 겉치레의 생색내기 정책으로 사태를 호도하는 것은 수도 없이 되풀이되어 온 구태의연한 작태이다. 그런 모습을 또 보게 될까 두렵다. 그리고 더 두렵다. 공약이니까 꼭 지키겠다고 막무가내로 공약을 실천할까봐 정말 두렵다. 진실성이 부족한 말, 쉽게 뱉어진 말을 꼭 지키겠다고 하면 정말 무서운 결과가 올 수 있다.

정치인의 말과 약속은 참으로 무거워야 한다. 그것이 가볍게 되고 가장 못 믿을 것이 된 지 오래다. 그 잘못된 악순환을 끊어야 하지만, 지금 상황이 정말로 불신의 바닥을 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렇기에 꼭 지키라고 몰아붙이는 방식이나, 적당히 변명하고 호도하는 방식,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공약이니 실천하겠다고 밀어붙이는 방식들을 모두 지양해야 한다. 보다 높은 가치인 ‘옳음’에 비추어 보는 엄정한 비판이 필요하다.

언제나 국가와 국민 전체를 위한 최선을 찾는 ‘대의(大義)’ 앞에 열려있어야 하고 그 ‘대의’가 논의를 이끌어가는 축이 되어야 한다. 내 공약은 절대로 옳다든가, 저쪽 공약은 절대로 잘못된 공약이라든가 하는 선행적인 판단을 보류하고, 겸허하게 올바른 방향을 모색하는 태도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이런 지향을 지닌 공약이었지만 현실적인 여건과 맞지 않아 이행이 불가능합니다. 진심으로 사과합니다”라든가, “공약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적절한 선에서 절충점을 찾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열린 이야기가 오가는 모습을  봤으면 좋겠다. 

성태용 건국대 명예교수 tysung@hanmail.net

[1632호 / 2022년 5월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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