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등회 이끈 장애인 행렬

기자명 최종환

부처님께서 인간의 해방과 대자유, 영원한 행복을 근간으로 삼고, 사바세계에 나투신지 2566년째를 맞았다. 룸비니동산에서의 탄생 일성인 “하늘 위 하늘 아래 모든 생명은 존귀하다. 세계의 고통받는 중생들을 내 마땅히 편안케 하리라”라는 말씀은 사회적 약자 소외 등 오늘날 불평등한 현실을 꾸짖는 말씀같기도 하여 올해 부처님 오신 봄날은 무척 남다르다.

연등회는 인간으로 말미암은 기후위기와 감염병으로 수년간 중단됐었다. 그러다 3년 만에 동국대 운동장에 형형색색의 등과 각국 불자들의 미소가 다시 모였다. 흥인지문(동대문)을 거쳐 조계사까지 연등행렬이 이어지고, 그 곁을 환호하는 시민들을 보며 다시 맞는 봄, 부처님오신날의 자비롭고 평등한 그 봄이 오는 듯하여 행렬 속 작은 등이었던 필자에게도 자유와 행복감이 밀려들었다. 연등행렬은 노을녘에 시작됐고, 해가 넘어간 후 수많은 등들은 어둠 속에 비로소 제 색을 드러냈다.

연등(燃燈)은 등불을 밝히는 것으로, 불교에서는 무명을 깨치고 부처님 가르침의 공덕을 찬탄하며 귀의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어리석음과 어둠을 밝히는 지혜와, 마음을 밝히는 행렬이니 얼마나 존엄하고 장엄한 의식인가. 장애인복지에 종사하는 필자는 유독 승가원을 비롯 조계종복지재단과 연화원 등 복지단체들이 참가한 등단의 선두 행렬에 마음이 간다.

엄중하고도 밝게 길을 내고 있는 장애를 가진 이들의 선두행렬은 제 빛을 내는 연등과 어우러져 의연하기까지 하다. 휠체어를 타거나 혹은 보이지 않는 장애가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 제일 앞에서 행렬을 이끄는 모습을 보며 문득 부처님의 제자들이 떠올랐다.

시각장애였으나 지혜와 심안을 지닌 훌륭한 부처님의 제자였던 아나율존자, 지적장애를 가졌으나 ‘쓸고, 닦으라’는 부처님 가르침을 깊이 수행하며 세상의 귀감이 된 주리반특이라는 제자의 존귀함이 스쳤다. 사람의 겉모습과 신분, 능력으로 차별하지 않고 오직 생명으로서 존중하며 가르침에서 소외시키지 않고 평등을 설하셨던 부처님의 세상 불국정토와 우리는 지금 어디까지 닮아있는가. 부처님은 오늘의 연등회를 통해 대자유와 영원한 행복과 더불어 대오각성의 화두를 던지지는 않으실까.

무수한 이들이 장애를 갖고 있다는 이유로 교육과 노동, 자유로운 삶에서 차별받고, 국가와 공동체가 함께 책임지지 않는 사이 개인과 가족이 고통을 감수한다. 신체가 불편한 많은 이들이 곳곳에서 눈물로 삭발하며 곡기를 중단하는 투쟁으로 이 사회에서 배제된 설움을 외치고 공감받기를 희망하며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팽팽한 시선과 또 다른 목소리로 걸음은 더디기만 하다.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고 일깨워주신 부처님께서 천상의 도솔천에서 고해의 중생계로 내려오셔서, 다시금 큰 꾸짖음으로 우리를 깨닫게 해주는 것 같다. 그런 이유로 장애 가진 것을 뒤로 숨기지 않고, 선두에서 활짝 열고 나아가 부처님의 자비로 함께하는 세상의 의미를 알린 연등행렬은 오래 가슴에 남는다.

연등은 어둠 속에 있을 때 가장 밝게 빛이 난다. 하나가 아닌 여러 무리들이 연결되고 이어질 때 물결이 되고 어둠을 밝히는 광명의 파도가 인다. 개체와 개체가 모여 우주 만물이 되고 연기의 세계가 되는 것이다. 우주 속에 삼라만상의 모든 것들은 상호 연관돼 있고, ‘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사라지면 이것이 사라진다’는 연기의 세계 속에 우리는 상호 연관된 존재들이다.

이제 등을 높혀 우리 안의 빛을 밝힐 때이다. 우리 안의 어리석음과 편견을 타파하고 차별 없는 평등세상으로 정진할, 등공양(燈供養)과 관등(觀燈)의 참 깨달음을 배우자. 어느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보통의 삶이 모든 이들에게 평등하게 누려지기를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해 발원해본다.

최종환 서울시립영등포 장애인복지관 관장
chungpajjang@hanmail.net

[1632호 / 2022년 5월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