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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봉암사 주지 함현 스님 “나는 이제 정토행자”

  • 불서
  • 입력 2022.05.17 18:36
  • 수정 2022.05.18 10:55
  • 호수 1633
  • 댓글 3

저서 ‘머리 한 번 만져 보게나’ 통해 공표
“이제 정토의 살림꾼, 정토의 종지기 될 것”

“나는 이제부터 새 살림을 차리려고 합니다. 선행공덕을 살뜰히 키우면서 나의 이웃들을 끝없이 살려 나가는 일이 살림입니다. 나는 공성의 오두막인 극락정토를 장엄하는 정토의 살림꾼, 아미타부처님의 본원(本願)을 깊이 믿고 널리 권하는 정토의 종지기가 될 것입니다.”

선객들 사이에서 명망 높은 함현 스님이 정토행자의 길을 걷겠다고 공표했다. 스님이 상주하는 서울 응암동 도솔선원 이름도 ‘선(禪)’을 뺀 도솔원으로 개칭했다. 1970년대 출가해 해인사, 송광사, 백양사, 극락선원, 대승사, 동화사 등에서 정진하고, 조계종 종립선원 문경 봉암사 주지 소임도 맡았던 대표적인 선승의 ‘선언’이어서 큰 관심을 모은다.

스님은 최근 출간된 ‘머리 한 번 만져 보게나’(제작 담앤북스, 비매품)에서 이 같은 소회를 진솔하게 털어놨다. 이 책은 지난겨울 내내 부처님께 올렸던 참회·발원과 옛 선지식들이 남긴 정토문 위주의 가르침을 한데 모아 펴낸 것이다.

“나는 위리안치(圍籬安置)의 죄인이 되어 겨울 내내 공성의 오두막인 극락정토와 그 집의 주인장이신 아미타불을 그리워했습니다. 그러면서 위리안치의 괴로움도 그 괴로움의 끝인 공성의 집도 지금 여기의 발원지인 자신에게 달려있음을 깊이 믿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이미 경험했던 이해나 거듭 다져왔던 각오와는 다른 돌연한 발견 같은 것이었지요. 무엇보다도 시도 때도 없이 수행자를 가장하고 나서는 ‘자아’의 벽이 문제였습니다. 이 벽은 구체적인 참회와 실제적인 발원 없이는 돌파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정토행자로서의 결연한 각오는 책의 머리말에서 뿐만 아니라 ‘머리 한번 만져 보게나!’ ‘도솔원발원문’ ‘함현자계(涵玄自戒)’ 등에서 잘 나타난다. 그간 과거 촌음을 아끼지 않고 살아왔음에 대한 뼈저린 참회, 이번 생이 여름날의 저녁 무지개처럼 아차하면 사라질 것이라는 아픈 성찰, 이제라도 염불하고 염불하여 길고 긴 윤회의 굴택(屈宅)에서 기필코 벗어나겠다는 비장한 서원을 세우고 있다.

“비구 함현은 엎드려 발원하옵니다. 이 목숨을 마칠 때 궁극의 평안과 안락의 문이 연꽃 피듯 저절로 열려지이다. 그 문 앞에서 성중과 더불어 이 몸 맞아 정토로 인도해주실 아미타부처님께 미묘한 빛과 향기로운 소리로 찬탄하고 공양하고 예배 올리옵나니 바라옵건대…천상·인간·아수라 세계의 항하사 중생들이 봄비 기다리는 설렘으로 아미타불께 귀의해 여덟 가지 고통 벗어나 정토에 태어나게 하소서.”(도솔원 발원문)

“걸어온 길 돌아보며 흰머리 만져보니 지치고 늙은 이 몸 지는 꽃비 맞은 꼴이라. 이제라도 늦지 않았네. 땅거미 속 홀로 앉아 들숨날숨 행주좌와 그저 힘써 염불하세. ‘염불하는 그 마음이 부처님이다’ 하셨으니 부처님이 부처님을 부르는 염불로 생로병사 억겁의 때를 한바탕 벗어 보세.”(함현자계)

이어 ‘연문수경(蓮門手鏡)’에는 함현 스님이 경전과 선지식들의 어록 등에서 찾아낸 주옥같은 정토문의 성언 39편이 실려 있다.

지난 40여년간 스님은 칼날 위를 걷듯 살불살조(殺佛殺祖)라는 선승의 본분을 지키면서도 지극한 신심을 잃지 않았다. 1980년대 이후 부처님의 자취를 따라 인도, 파키스탄, 스리랑카, 태국, 미얀마 등 전역을 순례했으며, 한국 간화선의 성지인 봉암사에서 주지를 맡을 땐 죽비를 세 번 치는 것으로 예불을 대신하는 관례를 깨고 ‘지심귀명례~’로 시작하는 칠정례를 실시했다. 또 청주 관음사 주지로 대중포교에 나섰을 때는 불보살을 찬탄하는 가사를 직접 쓰고 저명 작곡가들의 도움을 얻어 대중들이 찬불가를 부를 수 있도록 했다.

사실 오늘날 선승의 염불수행 공표가 의외일 수 있지만 역사적으로는 드문 일은 아니다. 역대 동아시아의 수많은 선승들이 염불수행을 병행했으며, 근대 한국선의 중흥조라는 경허 스님도 ‘온갖 인연 쉬고서 다만 아미타불을 염하니 곧 그것이 여래선이며 그것이 바로 조사선이다(萬緣都放下 但念阿彌陀 卽是如來禪 亦是祖師禪)’라고 말했다. 특히 북송 법안종의 영명연수 선사는 ‘참선만 하고 정토수행을 하지 않으면 열에 아홉은 길을 잃나니 중음의 경계가 눈앞에 나타나면 눈 깜짝할 사이에 그것을 따라가리라’라고 경계하며 ‘참선도 하고 염불수행도 했다면 뿔까지 달린 호랑이와 같나니 현세에는 사람들의 스승이 되고 내세에는 부처나 조사가 되리라’고 밝혔다.

“한국불교가 사는 길은 각자의 자리에서 정진하며 보살행을 펼치는 데에 있다”는 함현 스님. 삭발염의한지 40여년이 지나 재출가의 결연함으로 정토행자의 길을 걷겠노라 선언한 스님이 ‘정토의 살림꾼’ ‘정토의 종치기’가 되어 뭇 중생들을 아미타불 회상으로 이끌기 위한 첫 발을 내딛었다. 오탁악세에 ‘뿔 달린 호랑이’를 기다리는 사람들로서는 반색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책 배송 문의 02)351-4422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1633호 / 2022년 5월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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