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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스님이라도 원력 갖춘다면

기자명 이병두

얼마 전 공직을 퇴직하고 귀향한 옛 동료를 만나러 경북 영주에 다녀왔다. 그와 함께 부석사와 소수서원을 돌아본 뒤, 불현 듯 풍기읍내에 있는 작은 절 영전사 주지스님을 뵙고 싶다는 생각이 났다. 왜 갑자기 이 생각이 났을까.

1994년 이른바 개혁불사 이후 조계종 포교원이 의욕을 갖고 1996년을 ‘불교청소년의 해’로 선언한 뒤 다양한 프로그램을 계획하여 실행하고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파라미타청소년협회 출범이었다. 많은 분들이 전폭 지원해준 덕분에 파라미타는 빠르게 성장‧발전하였다. ‘캠프가 무엇인지?’ 잘 알지도 못하고 1996년 여름 전북 무주 덕유산 야영장에서 3000여명의 청소년이 참가하여 개최한 ‘제1회 파라미타 캠프’를 열었지만, 종단 차원에서도 이런 일에 경험이 없다 보니 모든 것이 서툴렀다. 돌이켜 보면, 첫 캠프는 ‘사고가 없었던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는 말로 위안을 삼을 수밖에 없었다.

이듬해인 1997년 여름 강원도 고성군 세계잼버리 야영장에서 개최한 ‘제2회 캠프’는 조직에도 경험이 생기고, 자원봉사자들도 노하우가 쌓여서 한결 세련되게 진행할 수 있어서 참가 학생들의 반응도 좋았다. 특히 22사단 군 법사님이 애쓴 덕분에 현지 군부대에서 의무부대 등 매우 중요한 지원을 해주어 어려움을 풀어주었다. 당시 군법사였던 정범 스님과는 그 뒤 25년이 지나도록 좋은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그리고 이 고성 캠프에서 각별한 고마움을 느끼게 해준 분이 이번에 갑자기 찾아뵙게 된 영전사 주지 해득(海得) 스님이었다.

캠프 마지막 날 스님이 찾아와, “학생들을 주문진 해수욕장으로 데리고 가서 2박 3일을 더 머물게 하며 답답했던 가슴을 풀고 집으로 갈 수 있게 하겠다”는 말씀을 듣고 감동했다. 그 뒤로 스님은 서울 나들이 때면 파라미타 사무실에 오셔서 직원들을 격려해준 일이 자주 있었고, 나도 지방 출장 때에 풍기 읍내 주택가 골목에 있는 영전사로 스님을 찾아뵌 적이 있다. 스님은 “이곳 학생회 출신 중에 경북대 불교학생회장도 나오고, 대불련 지부장도 있습니다. 참 기분이 좋지요”라고 하였는데 어느 때인가에는 “중앙고속도로가 뚫리면서 어른들이 대구로 옮겨가는 등으로 이제 어린이와 학생 인구가 줄어 학생회 운영이 어렵다”며 안타까운 말씀을 했던 기억도 난다.

이번에 갑자기 스님 생각이 나서 찾아뵙게 된 이유에는 이런 옛 추억과 함께, 아마 출가자 감소와 군종법사 정원 미달 사태 등 최근 종단이 겪고 있는 여러 문제들의 원인과 해결책을 둘러싼 논란도 있을 것이다. 영전사 스님은 “그때 파라미타 활동 참여했던 아이들 중 고향에 남은 이들은 결혼해서 그 아들과 딸들이 어린이법회와 학생법회에 나온다”고 하였다. 힘들게 애쓴 어린이‧청소년법회의 효과가 수십 년 뒤에 열매를 맺은 데에 대한 기쁨과 자부심을 뚜렷이 느낄 수 있었다. 그 말씀을 듣는 나도 기뻐서, 짧은 이야기 중에 몇 차례 “스님, 감사합니다!”는 인사가 저절로 나왔다.

1960년대 말~1970년대 초에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이들 중에 손꼽히는 불교학자가 여러 명 배출된 배경에도 당시 학생들을 불교에 입문시켜 지도해준 상인 스님의 역할이 컸고, 정읍에서도 혼신을 다해 룸비니불교학생회를 이끌었던 행신 스님에게 감화받고 출가하여 비구와 비구니 수행자가 되어 종단과 불교계에 보은하고 있는 이들이 여럿이다. 얼핏 떠오르는 사례를 말했지만, 서울‧부산‧대구‧창원‧전주 등지에서 이와 비슷한 불사를 펼친 스님과 법사‧선생님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때인가부터 이런 얘기 듣기가 어려워졌다.

불자인구와 출가자 감소는 사회 분위기가 바뀐 것이 가장 큰 원인이겠지만, 광주‧정읍과 풍기에서 애써서 훌륭한 불자를 키워 출가수행자와 불교학자를 배출한 스님들의 사례가 보여주듯이 언제든 ‘길’은 있다. 종단이 종책을 제대로 세워 실행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각 지역에서 원력과 의지를 갖고 애쓰는 스님이 없으면 효과를 낼 수 없다.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633호 / 2022년 5월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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