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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와 색깔

기자명 성원 스님

‘아! 나는 사랑을 가졌어라 / 꾀꼬리처럼 울지도 못 할 / 기찬 사랑을 혼자서 가졌어라!’
젊은 시설 흥얼거렸던 서정주의 시 구절이다. 처음 이 구절만 보고 남녀 간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로 알고 있다가 한참 후에 시 전체를 보고 헛웃음을 지었다. 제목부터 ‘신록(新祿)’이니 사랑 타령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고 보니 좋아하는 연초록의 색감으로 물든 5월의 산하를 보면 시인의 사무침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곤 한다.

우리는 다양한 감각기관을 가지고 있지만, 항상 보고 듣고 생각하라고 배운다. 듣는 것보다 보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듣고 이해하는 것보다 직접 보면 이해가 빠르다. 그래서 교육학에서는 청각교육보다 시청각 교육을 선호한다. 언제부턴가 구글보다도 유튜브 검색을 먼저 한다. 정보의 양에서 차이도 있겠지만 검색한 내용을 바로 시청각으로 설명 들을 수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언젠가 한 사찰의 낙성식 행사를 기획해 달라고 요청받은 적이 있었다. 막상 도와주려 하니 미리 준비된 일들이 있었다. 며칠을 두고 주지스님을 설득해야 했는데 그 일이 바로 행사의 기본색깔을 정하는 일이었다. 초대장, 현수막, 팸플릿, 행사장 장엄 등등에 앞서 행사 전체를 아우르는 기본 색상을 가장 먼저 설정해야 한다고 하니 의아해하면서 동의해 주셨다. 그렇게 시작부터 끝까지 동일한 색상을 바탕으로 준비하고 진행하면서 잘 회향한 적이 있었다. 대부분 시각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무슨 일을 기획할 때는 글로 된 구호에 집중하면서 막상 행사 전체를 관통하며 주제를 전하는 색상은 뒷전으로 여기기 일쑤다.

지금 한국은 정권이 바뀌고 많은 변화에 직면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이 직책을 잃기도 하고 새로 등용되기도 한다. 인사 원칙에 있어 늘 실력 있는 인재를 잘 등용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대부분 새 정권은 자신들 입맛에 맞는 사람들을 채용한다. 흔히 말하는 색깔론이 무엇보다 우선하는 것이다. 같한 색이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함께한다.

왜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게 같은 색깔이라고 표현하기 시작했는지 신기하긴 하다. 내용보다 색깔 검증이 훨씬 직관적이라서 그런 것 같다. 하지만 참 위험한 논리다. 많은 역사서를 보면 왕조를 몰락으로 이끄는 데는 어김없이 매관매직과 붕당이 활개 쳤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능력보다는 자신에게 직접적인 이익·뇌물을 주는 사람을 뽑고, 덮어놓고 먼저 알았고 색깔이 같다고 느끼는 친구를 곁에 두고 운영했던 나라는 민생이 도탄의 길로 가거나 왕조는 몰락의 길을 걸어갔다.

전국에 다시 선거의 광풍이 불고 있다. 모든 정당과 후보는 공약보다 숫자를, 숫자보다는 색깔 드러내기에 힘쓰고 있다. 사람들도 일상 대화에서 정치적 성향을 색깔로 표현한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각 정당이 내세우는 색상이 세월을 두고 180도 완전히 바뀌었다. 예전에는 붉은색을 ‘국가 전복 세력’으로 낙인찍기도 했다. ‘동백 아가씨’ 노래가 금지곡이 된 이유를 물으니 ‘내 가슴 빨갛게 멍이 들었네’라는 가사를 들먹여서 결국 ‘파랗게’로 바꾸게 되었다고 할 지경이었다. 그런데 예전 파랑으로 시작한 보수정당의 색이 빨간색으로 바뀌었고, 진보정당이 푸른색으로 뒤바뀌었다. 아예 당명에 색깔을 입힌 정당도 있다.

며칠 후면 중요한 선거다. 선거가 끝나면 언론에서는 또 한 번 온 한반도에 색깔 입히기를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선택한 사람이 누구이든 결정된 뒤에는 색깔론으로 접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보수 대 진보, 지역적 진영, 세대별 갈등, 여기에 요즘은 남녀의 갈등까지 더해지고 있다. 가르면 천만 갈래로 갈라지지만 어우르면 아름다운 산천같이 수많은 색이 시절에 따라 변화하면서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수놓을 것이다. 나와 같은 색을 입은 사람을 찾지 말고 함께 어우러져 조화로울 사람을 곁에 두는 게 더 멋지지 않을까?

계절 따라 변하는 산하의 색을 노래하는 아름다운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성원 스님 약천사 신제주불교대학 보리왓 학장
sw0808@yahoo.com

[1634호 / 2022년 6월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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