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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정치를 위한 불교 정의론

정의(正義)는 사회와 인간, 인간과 인간 간에 발생한 다양한 문제를 어떻게 바르게 해결할 수 있는가라는 차원에서 제기된 것이다. 오랜 농업이나 유목 생활에서 점차 도시화와 국가체제를 만들어 오는 과정에서 정의의 문제는 더욱 첨예하게 대두되었다. 관계에서 발생한 도덕이 윤리로 승격되고, 윤리가 법으로 강화되면서 삶은 더욱 더 자율과 타율이 팽팽한 긴장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다. 이제는 사소한 시빗거리도 법에 의지하는 시대가 되었다.

새 정부는 이러한 법을 다루던 사람들의 독무대가 되었다. 검찰총장이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정부의 요직에 검사 출신들이 대거 등용되었다. 국가는 헌법에 입각한 다양한 법으로 대중을 규율하는 조직이라는 차원에서 법률가의 정치는 일견 의미가 있다. 그러나 국가는 다양한 이해관계가 모여 있는 집단이며 이를 법으로만 해결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중국 최초 통일국가인 진나라가 법가를 등용했지만 한 세대도 넘기지 못하고 한나라로 넘어 갔다. 한나라 이후, 위진남북조, 수, 당, 송의 시대에는 유학과 불교가 서로 국가 경영의 근간이 되었다. 삼국과 고려, 조선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현대에 와서 법률은 국가 통치의 도구인 동시에 권력을 창출하는 통로가 되었다. 국가의 역할이 정교해짐에 따라 법률전문가들의 손이 필요해진 탓도 있다. 그럼에도 법률은 국가의 기능적인 요소이지 통치 그 자체와 일치되는 것은 아니다. 입법, 사법, 행정의 삼권 분립으로 나뉜 것도 국가 내의 균형과 조화를 위해 각자의 헤게모니를 견제하기 위한 것이다. 국가는 홉스가 말하듯이 만인 대 만인의 투쟁 상태를 해소하기 위해 개인의 자유와 권리 일부분을 국가에 양도함으로써 그 공포를 덜고자 하는 계약으로 보는가 하면, 막스 베버는 국가를 폭력을 합법적으로 사용하는 유일한 기구로, 그리고 베네딕트 앤더슨은 상상의 공동체로 보기도 한다. 국가의 기원과 성격에 대해서는 이처럼 다양하다. 그러니 국가가 무엇을 지향하고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국민 모두의 의견을 모으지 않으면 안 된다. 정치가 대화와 타협의 장인 근본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요동치는 세상사에 법전문가들은 과연 국가 운영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에서 보는 것처럼 여전한 약육강식의 세계 내에서 이 나라의 안전을 지켜낼 수 있을까. 이 사회의 모든 모순과 갈등의 근원인 분단체제를 과연 극복할 수 있을까. 자본의 독식과 횡포로 점점 벌어지는 사회적 격차와 소외를 해소하고 함께 사는 세상으로 만들어갈 수 있을까. 오직 “좋은 놈과 나쁜 놈”으로만 나누어 보던 사람들은 이 정치 행위를 제대로 수행해낼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서 법의 근원이자 정언명법인 정의의 문제를 다시금 생각해야 한다.

지금 시대는 분배의 정의가 중심이 되어있는 것처럼 정의는 시대를 따라 그 관심과 대상이 달라지기도 한다. 종교에서는 진리와 성현의 가르침을 세상에 구현하는 것이 정의다. 불교의 경우에는 다르마(Dharma)의 구현이 가장 큰 정의라고 할 수 있다. 통치도 정법(正法)으로 하게 된다면 정의를 실현하게 된다. 세상에 불국토를 건설하고자 한 불타의 다르마의 세계에서는 욕망의 제어를 기반으로 사회적 공정성, 바른 경제생활, 장애인이나 약자에 대한 배려 등이 사회적 정의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세계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성현의 회상에서는 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그 핵심에는 깨달음을 통한 지혜에 기반, 차별 없이 중생을 제도하는 자비의 심법이 자리하고 있다. 법이 통찰로 이어진다면 청정법신의 세계에서는 국가의 구성원이 하나임을 여실하게 볼 수 있다. 정권 쟁취를 위해 갈랐던 적과 아군을 뛰어넘어 국민을 통합해 낼 수 있다. 그리고 그들 모두를 대자비의 품안에 품을 수 있다면 비로소 법의 정의와 다르마의 정의가 궁극에서 만나게 된다. 새 정권은 부디 이 ‘오래된 새 길’을 펼치는 대정치의 주인공이 되길 바란다.

원영상 원광대 원불교학과 교수
wonyosa@naver.com

[1634호 / 2022년 6월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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