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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자주 만나고 자주 떠나자

기자명 진원 스님

코로나에 걸릴까봐 오는 것도 가는 것도 꺼려지던 시절을 뒤로 하고 여행을 떠났다. 지나는 길에 사찰에 들려 예불도 할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이 특별함으로 오는 여행이었다. 무작정 들렸던 주지스님의 방에 ‘休(휴), 억지로라도 쉬어가소’라는 글귀가 마음에 훅하니 들어왔다. 진심을 다해 객을 맞아주었던 스님의 환대에 오래 전 소임 시절 객들을 귀찮아하던 속 좁은 마음을 반성했다. 옛 기억 속에 쥐꼬리 같기도, 뱀이 똬리를 튼 것 같기도 했던 미시령 옛길을 새벽에 트래킹 했다. 미시령에서 바라본 울산바위가 여명을 받아 깨어나고 있었다. 이렇듯 나의 솔루션인 여행을 통해 코로나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시작했다.

그런가하면 종단에도 훈풍이 불어오는 듯하다. 머나먼 인도에서는 해외포교를 위한 분황사가 건립되어 개원식을 가졌다. 또 산중 도량에서는 눈 푸른 납자들이 모여 활구를 참구하는 하안거가 시작됐고, 전국비구니회에서도 지역별로 전국운영위원회 워크숍이 활발히 진행 중이다.

주지소임을 놓은 지 몇 해가 지난 나는 코로나가 치성했던 시간, 사찰 안에서 일어나는 자세한 내막은 잘 모른다. 다만 정부정책에 저항 없이 불교 전래 1700년 만에 사찰 문을 닫고 모범적으로 대응하던 착한 종교, 그로 인해 사찰 경제가 궁핍해졌음에도 코로나에 시달리던 국민들을 위해 템플스테이를 열었다는 얘기 등은 알고 있다.

이번 여행에서 주지스님들의 이런저런 고민도 들을 수 있었다.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막지 않는다는 절집 정서도 바뀌는 모양새다. 한 스님은 법당에 터주처럼 자리 잡고 계시던 노보살님이 코로나로 작고하시어 마지막 길을 배웅조차 못했다며 눈물을 훔쳤다. 그런가 하면 한 달에 한두 번 습관적으로 찾아오던 불자들의 발걸음마저 그쳤다며 한숨을 내쉬는 스님도 있었다.

교육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을 만나는 현장교육보다는 줌을 이용한 교육이 편해졌다. 줌이 무엇인지 비대면이 무엇인지 생경하던 스님들조차 자연스럽게 컴퓨터 앞에 앉았다. 오히려 시간과 경비 면에서 편리함과 효율성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제 더 중요한 것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이다. 음소거의 일방소통에서 얼굴을 보면서 경청하고 공감하고 소통하는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당장 다음 달에 교육이 하나 있는 나로서도 난감하다. 소통하면서 실습해야 효과가 클 것이 분명함에도 국장스님이 “줌 강의되시죠?” 하는 말에 얼떨결에 “네” 대답했다. 그러나 얼굴을 마주하면서 얻어지는 생동감과 현장감, 질의응답은 효율성 이상의 역량강화가 되고 서로에게 경책이 된다. 기계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얼굴을 보고 표정을 살피고 듣고, 말하고, 꼭 말하지 않더라고 비언어적인 공감이 필요한 것이다.

코로나 이후 정치, 교육, 문화, 환경 등 모든 분야가 달라졌다. 그렇지만 아무리 세상이 달라져도 그러면 안 되는 것들이 있다. 그 중 가장 근간이 되는 것은 관계이다. 단절된 관계는 어떻게든 회복돼야 하는 것이다. 우리 종단에서도 그동안 느슨해졌던 조직을 다시 점검할 시기이다. 초기화되다시피 한 기초단위 조직을 다시 리부팅해야 한다. 어린이들은 함께 만나 웃고 떠들고, 청소년들은 잠시나마 공부에서 벗어나 부처님 그늘에서 행복해야 한다. 청년들은 지혜를 설계하고, 불자들 모두가 자기 일과 삶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나부터 사람을 자주 만나야 하고, 주변 사람들도 누군가를 만나도록 독려해야 한다.

어느새 느슨해진 나도 가다듬으려 한다. 불자들이 올 수 있는 장을 자꾸 마련하고, 삼사순례도 떠나고, 기도회나 불교대학도 힘을 내서 우리가 함께 해야 된다. 우리 안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다. 지도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 마음을 내면 바로 그 자리가 선불장이고 지도자이다. 다함께 지도자가 되어 나부터 다시 발심하자. 그래서 혼돈의 시대를 건너는 지혜의 다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 이 시대 스님과 불자들의 역할이다.

진원 스님 계룡시종합사회복지관장
suok320@daum.net

[1635호 / 2022년 6월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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