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불제자가 누리는 혜택

기자명 효림 스님

일렁이던 불청객 같은 마음 속
살펴보니 괴로움 자리잡고 있어
용서한다면 괴로움 평화로 변해
내 이웃 행복이 내 행복임 되새겨

새벽 목탁소리가 참 좋습니다. 상단예불을 마치고 중단에 ‘반야심경’ 독송을 하는데 불현듯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므로~’하는 대목에서 울컥하는 마음이 올라옵니다. 요 며칠 일렁이던 마음이 쉬어집니다. 이것이 부처님 제자로 사는 혜택이구나 싶습니다.
불청객 같은 그 마음 안에는 상처받은 나와 상처를 준 상대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내 선한 의도를 알아주지 않는 섭섭함과 슬픔이 있었고,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싶은 분노도 있었습니다. 이성적으로는 더 이상 관계 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없다는 판단을 내렸음에도 한번 씩 찾아드는 그 마음은 괴로움이었습니다. 내 자신을 위해서라도 그 마음과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어야 했습니다.

몸에 상처가 나면 귀찮은 마음이 들더라도 깨끗하게 소독하고 필요한 연고를 찾아서 발라주어야 하듯 마음의 상처도 마찬가지입니다. 덧나지 않고 빠른 치유가 될 수 있도록 하려면 지난 일에 대해 마음을 닫아두기만 하면 안 됩니다. 보다 넓은 마음으로 그 상황을, 세상을 조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와 너라는 단단한 관념 넘어 만물이 서로 의존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틱낫한 스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만일 당신이 시인이라면, 당신은 이 종이 한 장 속에 구름이 있음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구름이 없으면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이고, 비가 내리지 않으면 나무가 자랄 수 없습니다. 나무가 없으면 우리는 종이를 만들 수 없습니다.”

만일 나에게 상처를 주고 고통스럽게 만든 상대를 향해 미움과 분노의 마음만 키운다면 그것은 결국 내 자신의 평화만 위협할 뿐입니다. 또 괴롭고 힘들다고 외면하기만 한다면 돌로 풀을 누른 것과 같아서 온전히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상대를 용서한다면 그 즉시 마음에 평화가 찾아들 것입니다. 용서에 대해 달라이라마 존자님은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용서는 단지 우리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들을 향한 미움과 원망의 마음에서 스스로를 놓아주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용서는 자기 자신에게 베푸는 가장 큰 자비이자 사랑입니다.” “용서는 과거를 잊어버리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과거를 기억해야 합니다. 과거의 고통이 양쪽 모두의 편협한 마음 때문에 일어났음을 자각해야 합니다.”

힘들고 괴로운 마음 때문에 무작정 제주도로 도망을 갔던 적이 있습니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무심히 창밖을 바라보는데, 저렇게 작은 세상 속에서 ‘나’를 내세우느라 그리도 힘이 들었구나 싶어 웃음이 났습니다. 항하사 모레 만큼 많은 삼천대천세계 안에 한 행성인 지구, 그 안에 작은 면적인 한국, 조금만 하늘 위로 날아올라도 보이지 않을 ‘나’라는 존재, 그리고 우리. 기약 없는 한정된 삶을 살아가면서 영원할 것처럼 집착하고 탐심 내며 살았던 모습에 연민이 저절로 스며들었습니다. 사랑하며 살기에도 부족하다는 생각에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게 되었습니다. 상대의 평화를 지켜주지 못한다면 나의 평화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배웠고, 지금 여기 존재하며 누리는 혜택 안에 수많은 인연의 노고가 깃들어 있음을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그렇다고 그 마음이 늘 유지되었던 것은 아닙니다. 새내기 수행자를 위협하는 일들은 너무도 많습니다. 남들보다 더 자주 넘어지는 것 같지만, 부처님 말씀 안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환경에 산다는 것이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수행을 한다는 것은 더 멋진 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부족한 모습도 그리고 상대의 부족한 모습도 더 많이 껴안을 수 있도록 품을 키우는 것임을 배우고 있습니다. 나에게 상처를 준 상대가 다른 방법으로는 배울 수 없을 내면의 힘을 키워준 스승임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 그리고 나의 좁은 마음으로 알게 모르게 상처 준 이들에게 참회와 용서를 구합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잘못된 신념을 경계하며 맑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기를 서원합니다. 게으름 없는 정진으로 내면의 흔들림 없는 평화를 구축할 수 있기를 서원합니다. 내 이웃이 행복할 때 나 또한 행복할 수 있음을 기억하며 주변의 행복을 발원합니다. 

효림 스님 자비명상지도법사
metta4rest@gmail.com

[1635호 / 2022년 6월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