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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와 진보 사이

기자명 황산 스님

환경 변화에 따라 시각 달라져 
분열 아닌 화합 인연 찾아간 것
깨달음의 방법 계속 고민하면  
중도 찾고 행복한 미래 만들어

시대나 상황에 따라 변화하여 대처하는 것이 연기적 삶이고 부처님 제자다운 삶입니다. 시대가 변했는데도 낡은 철학이나 관념, 제도 등에 얽매인다면 불행한 사람이 생길 뿐만 아니라 더 좋게 성장하지도 못하고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해지는 기회를 잃기도 합니다.

전통적인 것은 다 낡고 불필요하며 거추장스러운 것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전통적인 것 중에 그런 것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새로운 것은 다 좋은 것이라는 뜻도 아닙니다. 새로운 것 중에는 전통적인 것보다 더 해악을 끼치는 것도 있습니다.

전통적인 것을 보수라 할 수 있고 새로운 것을 진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기질은 어느 정도 타고나는데 보수적인 성향으로 태어난 사람도 있고, 진보적인 성향으로 태어난 사람도 있습니다. 지역도 상황에 따라 보수와 진보가 결정됩니다. 해외 무역이나 이주민의 왕래가 잦으면 진보적이기 쉽고, 왕래가 적은 농촌이나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은 보수적이기 쉽습니다. 

물론 이러한 지정학적 성향도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시간에 따라 분위기가 바뀌기 때문입니다. 불교는 보수와 진보의 가치가 늘 충돌해 왔습니다. 부처님의 열반 후 상좌부와 대중부로 분열된 것도 계율에 대한 보수적인 시각과 진보적인 가치 차이로 인해 생긴 일입니다. 부처님 당시 지켰던 계율을 한치의 변함 없이 똑같이 지키며 살아야 할까요? 아니면 시대와 상황이 변했으니 변화를 반영해서 변경하며 살아야 할까요? 해답은 ‘부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나? 부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를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부처님께서는 계율을 엄격히 지키시기도 하셨지만 제바닷타의 건의대로 율법을 강하게 만들진 않으셨습니다. 가섭존자의 12가지 두타행을 찬탄하셨어도 계율보다는 정진에 더 비중을 두셨습니다. 엄격한 고행과 욕망을 따르는 쾌락, 두 가지를 모두 부정하시며 중도를 설하셨습니다.

그러나 막상 후학들은 중도가 무엇인지 합의점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각자 업력이 있고 시대와 지역, 상황마다 달랐기 때문입니다. 부처님 열반 후 100년, 진보와 보수는 더는 같이 존재하기 어려웠고 논의 끝에 인연 있는 사람끼리 뭉치기로 합의되었습니다. 역사는 이것을 근본분열·부파 분열이라고 이름 붙였지만, 분열보다는 확장이라 판단하고 싶습니다. 출가자의 숫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 인연 있는 사람끼리 모여 그들의 논리를 만드는 것은 당연합니다. 화합하지 못한 게 아니라 더 나은 수행을 위해 인연을 찾아간 것입니다.

미래는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이렇게 하면 될 것 같아도 엉뚱한 결과가 생기고, 저렇게 하면 성공할 것 같아도 실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과거의 장점이 다 맞는 것이 아니고 과거의 단점이 다 틀린 것만이 아닌 이유입니다. 부처님 당시에도 서로 의견이 다르고 업력이 달라서 계율이 생겼습니다. 부처님처럼 큰 스승이 계셔도 모르고 살았던 사람이 많고, 부처님을 만났어도 게을리 수행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부처님 열반 후 제자들은 각자 인연 있는 수행으로 인연 있는 사람과 인연 있는 정진을 해왔습니다. 물론 지금이 가장 훌륭한 상황은 아닙니다. 그런데 역사의 한 시점에서 더 나쁜 선택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어느 것이 더 나은 미래를 만들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문명이 발달하면서 데이터를 분석하면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다는 것을 오래전 발견했습니다. 그 데이터 분석을 잘한 사람은 사회적으로 성공할 확률이 높았습니다. 수행자도 어떻게 수행해야 깨달음을 얻을까에 대한 고민을 통해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그 정보대로 수행하려 노력하면 깨달음에 가까워지곤 했습니다.

어느 것이 가장 적절한 행동과 말인지 정해진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스승이나 경전, 강연과 책 등을 통해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분석하여 실천하려 노력한다면 완벽하지는 못해도 점점 더 나은 선택을 하게 됩니다. 늘 마음을 알아차리며 중도를 찾아가기는 어렵지만 결국 그것이 가장 행복하며 훌륭한 미래를 만드는 길입니다.

황산 스님 울산 황룡사 주지
hwangsanjigong@daum.net

[1636호 / 2022년 6월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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