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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는 심리다

기자명 하림 스님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우려 
서로간의 불신은 삶 괴롭게 해
존중·협력할 때 평화의 길 열려
삶의 목표는 신뢰 속 지혜 성장

며칠 전 어느 거사님이 종무소에 명함을 두고 갔다고 합니다. 들어보니 20대 초반 강원도 인제군 원통면 천도리에서 군대 생활을 함께하던 한 달 후배였습니다. 근 30년 넘어서의 연락에 바로 전화하진 못하고 며칠이 지난 뒤 통화하며 그동안의 안부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니 그 시절이 떠오릅니다. 그 시절에 배운 경험도 기억납니다. 요즘 인플레이션이 온다고 다들 걱정입니다. 곧 물건이 부족하고 생필품의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분위기입니다. 지금 상황에 옛 군대 시절을 대입하니 ‘경제는 심리다’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저와 후배가 소속된 부대는 각 분대가 열두, 세 명으로 구성된 포반이 6개, 관측부, 수송부가 2개 정도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중간 계급의 상병이 각 분대의 살림을 챙깁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밥을 먹을 때 쓰는 숟가락이었습니다. 신기하게도 수저는 늘 부족했습니다. 밥때가 되면 수저가 없으니 중고참들은 밥 먹을 때마다 수저를 얼마나 잘 보급하는가가 능력으로 보이던 시절이었습니다. 보이는 대로 주머니에 숨겼고 나중에는 부족할까 싶어 녹슬지 않게 비닐로 싸서 나만이 아는 담장이나 땅에 묻어 두었습니다. 심지어 밤이 되면 상대방의 관물함에서 훔쳐 오기도 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처음으로 훔치는 것을 해보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러다 동기들이 중고참이 되었을 때입니다. 서로 수저를 다 내놓고 나누자고 뜻을 모았습니다. 그랬더니 우리가 필요한 개수의 세배 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실제로는 넘쳐나는 수저였지만 왜 우리는 늘 부족해서 괴로워했을까요? 돌아보면 우린 서로 불안했던 것입니다. 나중에 부족할까 봐, 또 내가 부족할 때 상대가 도와주지 않을 것 같아서였습니다. 상대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고 불안해서 숨기다 보니 서로의 정보가 공유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다 꺼내놓고 함께 나누어 쓰기로 한 뒤 수저가 부족하거나 서로 훔치는 일이 없어졌습니다. 

이런 일이 지금 세계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자원은 넘치도록 풍족합니다. 그러나 내가 부족할 때 상대가 도와주지 않을 거라는 불신이 생기면 자원은 부족하게 됩니다. 서로 지키려고 다투고, 숨기고, 한쪽에서는 쌓인 채 썩어가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부족해서 어려움을 겪습니다. 결국에 이런 불안은 물가 인상으로 이어지고 서로 간 불신이 커져 결국 고통받는 것은 인류의 생활이 됩니다. 

사소해 보이는 삶의 모습이 확장되면 세계인의 삶으로 나타납니다. 군대에서의 경험처럼 서로 자원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고 있는 것을 보여주며 협력해서 살기로 약속할 때 우리는 다시 평화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군대 생활에서 배운 인플레이션을 극복하는 경험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밧지족이 외부 침입에 흔들리지 않는 사회로 나아가는 삶의 지침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하십니다. “첫째, 자주 모임을 하고 서로 의논하는가! 둘째, 서로 존중하고 화합하는가! 셋째, 법을 잘 지키고 예의를 잘 지키는가! 그리고 약속한 계약들은 잘 지켜나가고 있는가!” 이 세 가지는 곧 지금 인플레이션을 걱정하고 있는 인류에게 회복할 수 있는 길이자 예방할 수 있는 길을 일러주신 것 같습니다. 

 

다툼과 전쟁은 늘 있었습니다. 비록 전쟁 중이더라도 우리는 길이 찾아질 때까지 더 자주 모여서 의논해야 하고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해야 하며 흔들리는 서로 간의 믿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과 정직하고 수행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사회가 존경하는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가!” 우리의 궁극적인 삶의 목표는 돈과 권력이 아니라 서로 간의 신뢰와 믿음 속에서 경험하는 기쁨과 감동입니다. 이로 인해 쌓아가는 지혜와 영적인 성장입니다. 

군대 후배와의 통화는 결국 이 세상은 우리가 마음 쓰는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것을 한 번 더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감사한 인연입니다.

하림 스님 부산 미타선원장
whyharim@hanmail.net

[1638호 / 2022년 6월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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