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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죽음 사과까지 88일…버팀목 돼준 스님들께 감사”

  • 교계
  • 입력 2022.06.30 18:56
  • 수정 2022.06.30 19:13
  • 호수 1639
  • 댓글 3

고 이동우 동국제강 비정규직노동자 아내 권금희씨

크레인 정비 중 벨트에 몸 감겨 사망했지만 원청 외면 일관
59일간 노숙농성 끝에 공식사과와 재발방지 대책 약속받아

사회노동위원회 스님과 포옹하고 있는 권금희씨.
사회노동위원회 스님과 포옹하고 있는 권금희씨.

“제 남편 이동우 노동자의 사고에 대한 동국제강의 공식 사과를 받아내기까지 88일이란 시간이 걸렸습니다. 번번이 남편의 목숨보다 회사 이익을 앞세우는 동국제강을 보면서 좌절하기도 했습니다. 그때마다 저희를 지지하며 끝까지 든든한 버팀목이 돼준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스님들에게 깊이 감사합니다. 남편도 억울함을 내려놓고 부디 좋은 곳으로 가길 바랍니다.”

고 이동우(38) 동국제강 비정규직노동자 아내 권금희(40)씨는 최근에서야 남편의 장례를 치렀다. 사고 발생 90일 만이었다. 서울 본사 앞에서 기나긴 노숙농성을 벌인 끝에 동국제강이 남편 사고에 대한 잘못을 인정했다. 그러나 마음이 가볍지는 않았다. 곧 태어날 아이에게 다정한 아빠를 보여줄 수 없다는 미안함에 천 갈래 만 갈래 가슴이 찢기는 듯했다.

사고가 일어난 것은 올 3월21일이었다. 권씨는 저녁 10시50분경 남편 직장 상사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남편이 일하다 다쳤으니 응급실에 가보라는 이야기였다. 불길한 마음을 애써 억누르며 도착한 응급실엔 침묵이 감돌았다. 의사가 다가와 “남편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눈앞이 아득하고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권씨가 임신한지 3개월차에 접어들었을 무렵이다.

고 이동우씨는 동국제강 크레인 기계 보수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였다. 그는 여느 날과 같이 동국제강 포항공장에서 천정크레인을 정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크레인이 작동하면서 벨트에 몸이 감겨 목숨을 잃었다.

사고 발생 88일 째. 유족들과 동국제강이 조인식을 가진 후 진행된 영결식.
사고 발생 88일 째. 유족들과 동국제강이 조인식을 가진 후 진행된 영결식.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스님들이 고 이동우 노동자의 49재를 봉행하고 있다.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스님들이 고 이동우 노동자의 49재를 봉행하고 있다.

안전관리체계 부실로 인한 산재사고였다. 그러나 동국제강의 태도가 석연치 않았다. 사과도 협의 제안도 없었다. 사고 후 8일이 지나서야 동국제강 공동대표이사가 빈소를 찾았다. “출장 때문에” 이제야 오게 됐다는 김 대표이사는 유족들을 만나 “가족들이 일상으로 돌아가고 생활상의 불편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뿐이었다. 며칠 후 동국제강이 보내온 합의안은 책임 있는 배상으로 보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게다가 처벌불원서 제출 등 회사와 임직원 면책 중심의 내용이 가득했다.

더 이상 기다리고만 있을 순 없었다. 간단한 옷가지와 이불만 챙겨 4월13일 서울로 올라왔다. 동국제강 본사 앞에 시민분향소를 마련하고 농성을 시작했다. 유족들은 △대표이사 공개 사과 △재발방지대책 수립 △정당한 배상 등을 요구했다. 그때까지도 동국제강은 외면으로 일관했다.

매일 아침 점심으로 피켓을 들었고, 기자회견과 추모문화제도 열었다. 농성이 길어질수록 권씨의 배는 불러오고 숨이 찼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외로운 시간을 이어가는 권씨와 유가족들 곁을 지킨 것은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스님들이었다. 스님들은 매일 분향소를 찾아 기도회를 열고 유족들을 위로했다. 또 유족들의 처절한 외침에 적극 힘을 보탰다. 특히 5월8일엔 고 이동우 노동자의 49재를 봉행해 고인의 극락왕생을 발원하고 동국제강의 조속한 사태 해결도 촉구했다. 이렇듯 스님들의 지극한 동체대비의 자비심은 좌절과 고난을 버텨내는 힘이 됐다. 유족들을 돕고 싶다는 시민단체와 종교계의 연대도 늘어갔다.

고 이동우 노동자의 아내 권금희씨가 사회노동위원장 지몽 스님에게 인사하고 있다.
고 이동우 노동자의 아내 권금희씨가 사회노동위원장 지몽 스님에게 인사하고 있다.

“이렇게 받기만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세심하게 챙겨주신 스님들 덕분에 더욱 힘을 냈습니다. 스님들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아직은 살만하다 싶었죠. 스님들께 받은 힘과 위로는 저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돕는 것으로 회향하겠습니다.”

결국 유족과 동국제강은 4월18일 1차 협상을 시작으로 총 8차례 협상을 벌여 6월14일 합의에 이르렀고, 16일엔 조인식을 가졌다. 동국제강은 대표이사 명의로 회사 홈페이지에 합의된 사과문을 일주일간 게시했고, 우발적인 사고를 막는 전원 차단 시스템(ILS)을 설치하는 등 재발 방지 대책도 약속했다. 또 유족에게 민사배상금과 위로금을 지급키로 했다. 산재사망 88일, 유족농성 59일 만에 이룬 의미 있는 결실이었다.

권씨는 “지금도 위험한 노동환경에서 안타깝게 목숨 잃는 노동자들이 많다”며 “다시는 우리 남편과 같은 사고가 반복되지 않도록 회사들이 책임감을 갖고 안전한 근무환경을 만들어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6월16일 동국제강과 합의 조인식 후 기자회견을 열었다. 
유족들은 6월16일 동국제강과 합의 조인식 후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내영 기자 ny27@beopbo.com

[1639호 / 2022년 7월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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