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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법을 등에 업고 세상을 살리자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세계는 신 냉전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나토의 민주주의 동맹과 옛 공산세력인 중국·러시아라는 두 대척점이 형성되고 있다. 새 정부는 한미동맹이라는 군사적 힘에 의지하며 전자의 세력에 합류하고 있다. 세계는 군비를 확충하며 끝없는 갈등으로 치닫고 있다. 강대국들 이해관계에 의해 흔들리는 한반도는 이럴수록 중도와 중립의 외교정책으로 오히려 힘의 완충지대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주위에서는 세계 최고의 화약고가 된 이 땅에 다시 전쟁이 일어날지 모르겠다고 불안해한다. 선에 대한 인간의 무한한 믿음이 깨지고, 약육강식의 야만이 판치는 부조리한 문명을 구축한 인류는 과연 무엇을 진화시켜 온 것일까. 평화주의자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에서 여러 등장인물 중의 한 사람인 마리야의 편지를 통해 전쟁을 비판하고 있다. “그저께 여느 때처럼 마을 거리를 산책하고 있던 나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그것은 이곳에서 소집되어 군에 나가는 한 떼의 신병들이었습니다. 나는 출발하는 사람들의 어머니, 아내, 아이들의 비참한 모습을 목격하고, 떠나는 사람과 보내는 사람의 통곡을 들어야만 했습니다. 인류는 우리에게 모욕을 용서하는 것과 사랑을 가르치신 구세주의 계율을 잊어버리고 서로 상대방을 죽이는 솜씨를 더없이 큰 장점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는 전쟁의 무모함과 무의미를 역설하고 있다. 

인간의 무도(無道)함에 대해 호령하던 종교마저 자본에 예속되어 교조나 종조의 ‘종교적 야생성’을 잃어버리고 거의 빈사 상태에 이르고 있다. 석가모니부처님도 그러셨지만 대승불전들을 펼쳐보면, 부처님들이 정치적인 왕들을 훈계하는 장면들이 곳곳에 펼쳐진다. 호국삼부경 중 하나인 ‘인왕호국반야바라밀다경’에는 불법의 멸시로 법멸과 망국을 초래하는 왕에 대해 “나라를 파멸하는 인연은 다 그대들이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라고 꾸짖는다. ‘대살차니건자소설경’에는 보살도로 교화하는 대살차니건자가 왕에게 윤회의 수레바퀴에 빠지는 원수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살생의 죄를 멀리해 칼과 몽둥이를 버리고 해하려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아야 합니다”라고 단호하게 설한다.

왜 우리는 정치의 변화에 따라 일희일비해야 하는 것일까. 공업인 기세간에 둘러싸인 우리는 왜 이토록 하루하루를 노심초사하며 살아가야만 할까. 지구상에 명멸한 국가를 셀 수도 없거늘 고립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우린 그 너머를 보지 못하고 그 중심을 잡지 못한다. 경전에서는 불변의 정법에 대한 의지가 세속의 우두머리인 왕들에게 거침없이 전달된다. 불생불멸의 영성을 체득한 부처님들 앞에서 세속의 권력자들조차도 어린아이에 불과하다. 불법을 호지(護持)하는 자들이 떳떳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무지와 무명이 세상을 뒤덮는 이 현실과 그것을 주도하는 자들에 대해 정법을 등에 업은 불자들은 당당하게 호통을 쳐야 한다.

여산의 혜원 스님은 ‘사문불경왕자론’에서 “사문은 안으로 육친의 중요한 은애와 괴리되더라도 불효가 되지 않으며, 밖으로 군주에 대한 공경의 예가 결여되어도 그 공경을 잃지 않는다”라고 일갈한다. 그 이유는 출가자의 도가 “이미 제왕이 천하를 다스리는 기준과 일치하고, 백성들을 해방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비록 재가자들은 왕법을 존중해야 한다고 하며 성속을 구분했지만, 인과를 믿는 불자 그 누구라도 권력자들에게 정법 외에는 길이 없다는 점을 분명하게 각인시켜야 한다. 삶은 정치다. 그러나 삶이 정치에 지배당할 수는 없다. 재가든 출가든 매번 투표라는 정치 행위를 하고 나서도 비록 후회하지만, 공동체 속의 소박한 정치 행위를 통해 의무와 책임의 주체가 바로 나임을 확인하는 것이다. 전쟁의 뇌관은 하루아침에 터지지만 그 직전까지의 극도의 압력은 서서히 준비된다. 정법정치를 구현하는 불자들이 그 압력을 줄여야 한다. 파멸의 불구덩이로 직진하는 세계를 구제할 길은 오직 불법밖에는 없다.

원영상 원광대 원불교학과 교수
wonyosa@naver.com

[1639호 / 2022년 7월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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