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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 고대불교-삼국통일과불교(34)  (7) 동아시아 불교역사상의 원효불교 (17)

원효는 특정 종파 파벌의식 벗어나 교판 통해 사상적 갈등을 해소

기존 주석 방식 탈피, 핵심 간명하게 논술하는 종요 형식 선호
교판은 중국 경전해석 방식…신봉하는 교리 수승함 표방방법
남북조 교판방법 살핀 후 4교설 제창…신구 일체경전 체계화

‘법화경종요’(제5 명교섭문자 부분, 위)와 ‘열반경종요’(제 4명교적 부분, 아래), 서울 규장각 소장 ‘열반경종요’(오른쪽). [동국대 전자불전]
‘법화경종요’(제5 명교섭문자 부분, 위)와 ‘열반경종요’(제 4명교적 부분, 아래), 서울 규장각 소장 ‘열반경종요’(오른쪽). [동국대 전자불전]

원효 저술 중 ‘종요(宗要)’라는 명칭이 붙은 것이 많다. 전해지는 종요라는 형식의 저술이 16부에 이르며, 여러 학파의 경론이 망라되어 있다. 종요는 경론의 논(論)·소(疏)·초(抄)라는 주석서의 틀을 탈피해 각 경론의 중심 내용을 몇 개의 부분으로 나누어 간명하게 논술하는 방법인데 원효 저술의 특징이다. 이러한 저술 형식은 8세기 중반의 태현(太賢)의 저술에서도 2부가 발견되었으나, 이후 단절되었다. 경전해석에서 창조성이 퇴색하고 번쇄한 자구주석(字句注釋) 위주로 연구의 분위기가 바뀐 결과이다. 그런데 원효불교의 핵심 내용을 망라한 것으로 추정되는 종요체의 저술은 대부분 일실되고, 5부만이 전해지는데 그 가운데 ‘대혜도경종요’ ‘열반경종요’ ‘법화경종요’ 등 3부에 원효의 교판설이 제시돼 주목된다. 

교판(敎判)은 교상판석(敎相判釋)의 줄인 말로 중국의 경전해석 방법의 하나이다. 부처님 설법 내용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기 위하여 설법의 방식·시기·이론 등을 구별하고 평가하는 것인데, 실제 의도는 자신이 신봉하는 교리와 수행이 최고로 수승한 것이라고 표방하려는 것이다. 남북조시대부터 수·당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학파와 종파의 성립에 상응하여 수많은 교판설이 제창되었다. 수의 통일제국 성립을 계기로 하여 남북조 불교를 통합한 천태종의 중심저술인 ‘법화현의’ 제10에서는 남북조시대의 대표적인 교판설로서 이른바 “남3북7(南三北七)”이라 하여 10종의 교판설을 들고 있는데, 실제 교판의 종류는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이후 당대에도 신유식학의 법상종, 이어 통합불교인 화엄종의 성립과 함께 새로운 교판설들이 제기되어 백가쟁명의 시대를 연출하였다. 중국 불교계의 다양한 교판설 가운데 가장 주목되는 것은 신역경전 이전의 천태종 지의의 5시8교설, 신역경전 이후의 화엄종 법장의 5교10종설인데, 원효의 4교판설은 그 중간 지점에 해당된다.

원효는 앞에 열거한 ‘대혜도경종요’ ‘법화경종요’ ‘열반경종요’ 등 3부의 저술에서 이러한 중국 불교학자들의 교판 논쟁에 참여하여 남북조시대의 다양한 교판방법을 살폈으며, 최후 저술인 ‘화엄경소’에서는 종합적인 교판설로서 4교설을 제창하였다. 원효의 4교설은 중국 화엄종 법장의 5교설과 함께 인도불교 단계를 뛰어넘어서 동아시아불교의 사상체계를 수립하는 기반을 구축케 하였다. 원효는 중국에 유학한 적은 없었으나, 신구역을 망라하는 일체의 경전을 체계화하는 성과를 거두었고, 법장의 5교설에도 영향을 미치었다. 원효의 4교판설을 검토하기에 앞서 지적할 점은 경전 주석의 태도와 방법이다. 원효는 주석하는 경전이 얼마나 훌륭한지 강조하는 것이 그의 기술 방식이었기 때문에 각 경전마다 각각의 의의가 있다고 보고, 다른 경전과 비교하여 각 경전의 위치를 명료하게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먼저 원효의 ‘대혜도경종요’는 구마라집이 번역한 ‘마하반야바라밀경’의 핵심 내용을 특유의 6문(六門)으로 제목을 세우고 논지를 전개한 것이다. 그런데 원효가 마지막 부분에서 “이 경은 600권이고 16분으로 구성되어 있다”라고 기술한 것에 의거하여 현장이 번역한 ‘대반야바라밀다경’ 600권이 텍스트가 되었던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6문은 제1 대의, 제2 종지, 제3 제목, 제4 경을 설하게 된 인연, 제5 가르침의 판별, 제6 문장의 풀이(생략) 등으로 구성되었는데, 교판론은 제5 가르침의 판별함(第五判敎者)에서 논술하였다. 이곳에서는 ‘반야경’에 대한 두 가지 교판을 제시하고 있는데, 하나는 이교오시설(二敎五時說)로서 일체 경전들을 돈교(頓敎)와 점교(漸敎)로 나누고, 점교를 다시 5시기로 구분하여 사제교(四諦敎)·무상교(無相敎)·억양교(抑揚敎)·일승교(一乘敎)·상주교(常住敎)라고 하여 얕은 것에서 깊은 것으로 차례대로 배당하였고, 반야의 가르침은 두 번째인 무상교에 해당된다고 하였다. 

‘반야경’을 점교의 제2시로 판별한 돈점이교 오시설은 남북조시대 구마라집의 제자였던 혜관(慧觀)이 주창한 것으로서 교판의 시초가 되었으며, 또한 유규(劉虯)의 돈점이교 오시설은 경전의 배당 순서와 명칭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것과 다른 교판은 ‘해심밀경’의 3시설에 의거한 사제법륜(四諦法輪)·무상법륜(無相法輪)·요의법륜(了義法輪) 등 3종법륜인데, 현장을 계승한 자은기는 부처님의 일대 교설을 유교(有敎)·공교(空敎)·중도교(中道敎)로 구분하는 유식법상종의 삼교팔종의 교판을 수립하였다. 3종법륜 가운데서 반야교는 일체개공 무자성을 종지로 하는 제2 무상법륜(공교)에 해당된다고 하였다. 이러한 두 가지의 교판설에 대해 원효는 그 교판설 자체는 하나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며, 또한 모두 도리가 있다고 일단 긍정하였다. 그러나 ‘반야경’을 점교 5시 가운데 두 번째 시기, 그리고 3종 법륜 가운데 두 번째 법륜에 포함시킨 것은 이치상 절대 그렇지 않다고 부인하고, ‘대지도론’과 ‘대품반야경’의 교설에 근거하여 네 번째 시기의 일승교인 ‘법화경’ 이후이며, 종지는 두 번째 시기를 뛰어넘어 부처님의 뜻을 완전히 드러낸 세 번째 요의법륜과 다름없다고 주장하여 이들 교판이 가르침의 내용을 한정하는 규정적인 것이 아님을 밝혔다. 그리고 “‘반야경’은 저 ‘화엄경’과 같아 이보다 나은 것이 없고, 이것을 포용하는 것도 없다. 다만 그 가르치는 방법이 각각 다르거나 같을 뿐이다”고 하였다. 이로써 원효는 반야교에 대한 교판을 통해 반야공관불교의 의의를 불교의 총체적인 경전체계 속에서 파악하고 있으며 나아가 ‘반야경’을 소의로 하는 중관학파와 ‘해심밀경’을 소의로 하는 유식학파의 대립을 ‘화엄경’을 중심으로 화쟁시키는 교판상의 근거를 마련하였음을 알 수 있다.

다음 ‘법화경종요’는 구마라집 번역의 ‘묘법연화경’을 저본으로 종지와 교설의 요체를 논술한 것인데, 6문으로 나누어, 제1 대의, 제2 종지, 제3 일불승에 들어가는 작용, 제4 제목의 해석, 제5 교설의 섭수, 제6 경문의 풀이(생략) 등으로 구성되었는데, 교판론은 다섯째 교설의 섭수 편에서 서술하였다. 원효는 ‘법화경’이 어떤 교문에 속하는지를 요의(了義)와 불요의(不了義)로 나누어 논술하였다. 불요의 법문으로 보는 주장으로는 유식법상종의 3시설을 들고, ‘법화경’을 불요로 판별하는 주장을 비판하였다.  

법상종(현장과 지은기)에서는 법문을 제1시 상이 있는 유상법륜(有相法輪,有敎), 제2시 상이 없는 무상법문(無相法輪,空敎), 제3시 상이 없는 최상의 법륜(無相無上法輪,中道敎) 등 3시로 구분하였다. 그리고 제1시에는 ‘아함경’ 제2시에는 ‘반야경’ 제3시에는 ‘해심밀경’을 배당하고, 제3시의 ‘해심밀경’은 적정열반에 결정적으로 안주하여 대승심을 내지 못하는 이승 성문은 아무리 여래의 교화를 입어도 성불할 수 없다(五性各別說)고 설하는 요의경이며, 그에 비하여 오직 법의 공성에 의하여 법을 굴리는 제2시의 ‘반야경’과 마찬가지로 ‘법화경’도 정성이승(定性二乘)과 무성중생(無性衆生)도 성불할 수 있다고 설하는 불요의경이라고 판별하였다. 원효는 유식법상종의 3시법륜설에 대하여 삼론종 길장의 3종법륜설을 들어 ‘법화경’의 요의설을 주장하였다. 길장은 부처님 평생의 교설을 3종법륜으로 구분하여 근본법륜(根本法輪)·지말법륜(枝末法輪)·섭말귀본법륜(攝末歸本法輪)을 들었다. 첫째 근본법륜은 부처님의 성도 후 처음으로 보살들을 위하여 깨달은 법을 그대로 설한 화엄법문을 말하고, 둘째 지말법륜은 일불승을 근기에 맞추어 셋으로 나누어 설한 삼승의 가르침이며, 셋째 섭말귀본법륜은 삼승을 설하여 성숙시키고 회통하여 일승의 도에 들어가게 한 법화법문을 가리킨다. 구역불교 교판설을 집대성하였다는 천태지의의 5시8교설은 길장의 3종설을 발전시킨 것이다. 3종법륜 가운데 첫째와 셋째 법륜이 구경요의경이며, ‘화엄경’과 함께 ‘법화경’은 구경요의설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리고 나아가 원효는 ‘법화경’의 불요의설과 요의설의 두 주장에 대하여 ‘대지도론’ ‘유가사지론’ ‘아비달마잡집론’ ‘법화론’ ‘보성론’ 등을 인용하여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회통시켰다. 결국 원효의 ‘법화경’ 교판론은 단순히 불요의설·요의설의 이설을 화회시키는데 그치지 않고, 인도 중관파 계통의 삼론종·천태종과 유식학파 계통의 섭론종·법상종의 대승불교 양대 주류의 교설을 회통시킨 것이 성과다.         

다음 원효의 ‘열반경종요’는 ‘남본열반경’ 36권본을 저본으로 종지와 교설의 요체를 논술한 것인데, 대의를 간략히 설명하는 부분과 자세히 분별하여 설명하는 부분으로 크게 나누고, 다시 자세히 설명하는 부분을 경을 설한 이유, 가르침의 종지(宗旨), 교체(敎體), 교적(敎迹) 등 네 부분으로 논술하였다. 원효의 교판론은 마지막 교적을 밝히는 부분에서 다루었는데, 원효는 남방의 논사로는 유규(劉虯)의 교판설을 들었다. 

“여래 평생의 일대 교화는 돈점을 벗어나지 않으니, ‘화엄경’ 등은 돈교이고, 나머지는 점교인데, 점교 가운데는 5시가 있다. 첫째는 부처님이 성도하시고 제위(提謂, Trapuśa) 등을 위해 오계와 10선의 인천교를 말씀하신 것이고, 둘째는 부처님이 성도하신 이후 12년 중에 삼승의 차제교문을 말씀하신 것인데, 아직 공의 이치는 설하지 않았다. 셋째는 부처님이 성도하신 후 30년 중에 공하여 상이 없는 ‘반야경’ ‘유마경’ ‘사익경’ 등을 설하셨고, 넷째는 부처님이 성도한 이후 40년이 지나서 8년 동안 일승의 ‘법화경’을 설하셨으나, 아직 중생들에게 똑같이 불성이 있고 부처님이 상주함을 밝히지 않았으니 불요의의 가르침이다. 다섯째는 부처님께서 열반에 임하시어 대열반을 설하시고 모든 중생이 다 불성이 있으며, 법신이 상주함을 밝히셨으니 요의경이다.” 

반면 북방 논사들은 “‘반야경’ 등이 모두 요의의 가르침이지만, 그 종지가 각기 같지 않을 뿐이라고 하였다. ‘반야경’ 등은 지혜로써 종지를 삼고, ‘유마경’ 등은 해탈로써 종지를 삼고, ‘법화경’은 일승으로써 종지를 삼고, ‘대열반경’은 묘과(妙果)로써 종지를 삼는데, 이 모두가 크게 연기를 깨달은 구경의 대승 요의의 말씀이니, 이는 곧 앞에서 말한 남방의 주장인 5시교를 부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교판에 대하여 원효는 여러 경전의 뜻이 광대하고도 매우 깊기 때문에 남방의 5시로써 부처님의 뜻을 한정시키려고 하거나, 북방의 4종으로써 경전의 요지를 나누려고 하는 것은 마치 소라로 바닷물을 잔질하고, 대롱으로 하늘을 엿보는 것과 같은 좁은 소견이라고 비판하였다. 원효는 두 가지 교판설이 한쪽만을 고집하여 한결같이 그렇다고 말한다면 모두 틀리지만, 만약 분한을 따라서 그 고집하는 뜻이 없다면 두 주장은 모두 타당하게 된다며 회통의 자세를 보였다. 원효는 남북조시대 이후의 경전해석 방법과 교판 내용을 폭넓게 활용하여 각 경전의 의미를 불교의 총체적인 사상체계 속에서 파악하고 있었다. 특히 학파나 종파의 파벌의식에서 벗어나서 각 경전의 의미를 파악하려고 하였기 때문에 그의 교판은 불교계의 사상적 대립 갈등을 해소시킬 수 있는 좀더 타당성이 높은 회통설이 될 수 있었다.

최병헌 서울대 명예교수 shilrim9@snu.ac.kr

[1639호 / 2022년 7월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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