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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법은 고쳐야 할 대상이다

기자명 안직수
  • 법보시론
  • 입력 2022.07.11 13:28
  • 수정 2022.07.11 13:29
  • 호수 1640
  • 댓글 0

절대 군주가 지배하던 고대 로마의 격언 가운데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이 있다. 소크라테스도 악법을 따라 기꺼이 독배를 마셨다. 그런데 정말 악법도 법일까?

인도의 간디는 ‘악법은 악법’이라고 정의했다. 따라야 할 법이 아니라 고쳐야 할 대상이라는 의미다. 1928년 영국이 식민지 인도를 수탈하기 위한 방법으로 ‘소금세’를 신설했다. 인도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먹어서는 안 되며 영국에서 판매하는 소금만 유통하도록 강제한 법이다. 인도인이 ‘인도산 소금’을 만지기만 해도 엄하게 처벌했다. 이에 맞서 간디는 70여명의 인도인과 바닷가로 가서 300km가 넘는 거리를 행진하며 인도 바다에서 나오는 소금을 집어 들었다. 24일간의 도보시위대는 어느새 수만 명으로 늘었고, 결국 영국은 1931년 소금세를 폐지했다.

절대왕권이 지배했던 시기에는 악법도 법이었지만, 근대 들어 악법은 타파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됐다. 현재 우리나라와 같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국민을 대표한 국회의원, 도의원, 시의원들이 나서 악법이 없도록 잘못된 법을 폐지하거나 수정해야 한다. 현재에 맞지 않는 법이나 조례를 방치해 악법으로 만든다면 이는 위정자들의 직무유기다.

최근 경기도와 광주시가 일제강점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거주하는 나눔의집을 대하는 행위가 ‘악법’이다. 법을 현실에 맞게 개정할 의무가 있는 사람들의 직무유기로 인해 고령의 할머니들이 피해를 입게 생겼는데, 행정가들은 법의 잣대만 만지작거리고 있다.

경기도는 40만 광주시민 가운데 240여명이 참여한 청원을 받아들여 8일까지 감사를 진행했다. 핵심 사안의 하나는 “무료노인요양시설 지원기준이 10명 이상의 노인이 거주하는 시설로 규정돼 있는데, 4명의 위안부 피해 할머니가 거주하는 나눔의집을 지원하는 것은 위법하다”는 것이다.

30년 전, 나눔의집 설립 초기엔 정부 지원 없이 불교계와 시민단체 모금으로 어렵게 할머니들의 공동체를 이어갔다. 나눔의집에는 국내 위안부 피해 할머니뿐 아니라 중국 등서 귀국한 할머니들이 함께 살면서 일본의 책임 있는 사죄를 지속적으로 요구하며 여성인권의 상징이 됐다. 무료노인시설로 지정될 당시는 10명이 넘는 할머니들이 거주했지만 많은 분들이 나눔의집에서 생을 마감했고, 현재는 평균 96세의 할머니 네 분이 거주하고 계시다.

경기도와 광주시가 지금와서 0.0006% 광주시민의 청원을 이유로 법의 잣대를 들이대려 하고 있다. 더 이상 지원을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 그동안 위안부와 여성인권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던 많은 정치인들, 행정가들이 “예외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대상”을 논의조차 해본 적이 있는가. 20년 넘는 세월 동안 법과 규정의 보완을 방치한 공직자들의 직무유기에 대한 처벌이 우선 이뤄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지원 중단’으로 결론이 난다면 나눔의집이 선택할 수 있는 안은 세 가지 정도로 보인다. 첫째로 유료노인요양시설로 전환하는 것이다. 연간 3억원이 넘는 비용을 나눔의집 운영진과 할머니 네 분이 감당해야 한다. 둘째는 나눔의집 정체성을 버리고 저소득층 할머니들을 받아들여 10명이라는 인원을 채우는 것이다. 셋째는 할머니들을 법적으로 문제없는 다른 무료노인요양시설로 보내는 것이다.

어떤 선택이 옳은 것인가? 악법을 고쳐야 한다. 법 개정 이전에 조례라도 시급히 개정해야 한다. 국회의원, 도의원 같은 정치인에게 국민이 부여한 임무 가운데 하나는 악법(조례)을 시대와 상황에 맞게 개정하라는 것이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대한제국’이 일제에 의해 무너지면서 모든 인권을 유린당했다. 그리고 해방 후에도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매우 고단한 삶을 살아야 했다. 지금 경기도가, 광주시가, 또 정치인들이 그 할머니들의 노후의 삶에 돌을 던지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길 바란다.

한가지 첨삭하면, 상수도보호구역이란 이유로 나눔의집 내에 할머니들의 납골묘를 모시는 것은 불허하면서 인근 호화 주택 건축은 가능한 법은 또 뭘까?

안직수 복지법인 i길벗 상임이사
jsahn21@hanmail.net

[1640호 / 2022년 7월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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