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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 비구니스님들을 위한 다짐

기자명 진원 스님

“앞으로의 우리 후배스님들을 위해서 20년을 결사하자”는 어른스님의 한마디에 30년도 넘은 기억을 꺼내들었다. 어떤 법문보다 큰 울림으로 다가온 말씀이었다. 

나는 비구니계를 받던 날을 잊을 수 없다. 겨울의 초입 즈음에 산사의 새벽 기온은 제법 추웠다. 그 차가웠던 날씨보다 더 추웠던 건 파란색 방수포를 대걸레로 썩썩 밀어내고 비구니계를 수계한 기억이다. 좀 더 형식을 갖추고 여법할 수는 없었던 것일까. 한국비구니계를 이끌어 갈 출가자 탄생을 존중하고 축하할 수는 없었던 것일까(물론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의례적인 행사를 치르듯 나는 비구니가 되었다.

그 이후 종단개혁이 있었고, 조계사 종각 아래 4~5평 규모의 골방에서 전국비구니회 간사 소임을 시작했다. 비구니계의 심장부에 들어간 것이다. 내가 비구니회 간사 소임을 본 것은 비구니회에 열정이 있어서가 아니다. 순전히 대학원 학비가 필요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일은 손에 익었다. 성장과 변화에 대한 염원이 깊어지자 없던 패기와 열정도 생겼다. 그러나 그럴수록 비구니회가 처한 처절한 현실 앞에 좌절해야 했다. 종각 아래 현실보다, 추운 날 방수포 위에서 수계하던 날보다 더 엄혹했다.

회장스님과 임원스님들의 하루는 전국비구니회관을 건립하기 위해 전화를 거는 것으로 시작이 됐다. 그만큼 간절했다. 원력을 모은 끝에 비구니스님들의 역량을 결집할 비구니회관이 건립됐다. 사실 그때는 구심점이 될 회관 건립에 몰두하느라 100년 대개를 위한 비전과 목표 설정의 시스템 구축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 중심의 비구니회였다. 이제는 사람과 시스템이 함께 하는 운영체계가 절실해졌다.

얼마 전 나는 20년도 넘은 세월 동안 ‘강 건너 불 구경’하고 있던 비구니회의 운영위원으로 워크숍에 참가했다. 

불교계의 특성이 그렇듯 아직도 사람중심(즉 리더자 또는 회장단)이기는 하지만, 상당히 수평적이고 기초적인 시스템이 구축돼 있다. 이에 따라 각 분과별로 비전을 제시하고 정책을 개발하는 등 사회문제와 불교문제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주어사 문제 등 일회성과 이벤트성이 아닌 지속적이고 끈질긴 관심이었다. 더욱이 사회과학적 경험이 부족했던 비구니회가 사회참여에 대한 의식이 높아져 환경문제, 복지문제, 죽음에 대한 문제 이외에도 현대과학과 불교, 심리학과 불교 등 특히 비구니 정체성을 위한 연구소 등이 촘촘하게 구축되기 시작했다. 

조금 더 변화가 필요하다면 이 시대의 여성 성직자로서 여성의 문제에 좀 더 민감해졌으면 한다. 예를 들면 한부모 가정, 미혼가정, 조손가정, 홀로가정, 청소년가정, 좀 더 나아가 성소수자 가정 문제까지 관심분야를 확장시켜야 한다. 또한 현행 운영위원 자격을 대폭 열어 놓고 책임과 의무, 권리를 함께 가질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리고 비전과 목표 제시는 지속되어야 한다.

우리끼리 하는 뒷담화가 있다. “종단이 우리를 위해서 무엇을 해주었냐고…” 성토를 한다. 그러나 나는 종단으로부터 음으로 양으로 받은 혜택이 수 없이 많다. 고민하지 않고 출가할 수 있는 종단이 있어서 행운이었고, 그 종단에서 격에 맞는 교육을 받았고, 일선에서는 제법 열심히 활동할 수도 있었다. 처음 출가했을 때 답답함과 반골기질은 아직도 내 안에 성성하다. “도대체 선배스님들은 후배스님들을 위해 무엇을 했단 말인가?” 그러나 이제 거꾸로 후배스님들한테 듣는다. “도대체 선배스님들은 후배스님들을 위해서 무엇을 했단 말인가?” 이 화두와도 같았던 질문에 명쾌하게 대답을 받았다. “후배스님들을 위해서 남은 20년을 헌신하겠다.” 나 역시 후배스님들에게 답한다. “우리들의 세대가 후배스님들을 위해서 남은 생을 헌신하겠다.” 

이 시대에 새로운 전법게이다. 후배스님들을 위해서 남은 20년을 헌신하겠다.

진원 스님 계룡시종합사회복지관장
suok320@daum.net

[1640호 / 2022년 7월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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