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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수행이론의 총망라(16)-이론 관련; 각론⑧

일체개공 알고 그 위에 지혜 더해야

십주품은 공성에 입각한 발심
진리 향한 발심 10단계로 설명
범행품의 10가지 법을 닦으면
옳고 그름을 아는 지혜가 생겨

‘화엄경’ 구성작가는 ‘이론[解] 관련’ 각종 이론을 자신의 작품 속에 총망라하기 위해, 도리천을 무대로 삼아 모두 6품(品)을 배치했다. 배열 방식은, ①부처님을 하늘 궁전으로 가시게 한 다음 그곳 임금과 사방에서 몰려온 청중들을 인사하게 하는 장면, ②몰려온 청중을 대표해서 큰 보살들이 부처님의 공덕을 찬양하게 하는 장면, ③본론 장면, ④다시 한층 더 나아가는 깊은 수행을 설하는 장면, 이렇게 네 장면으로 구성했다.

지난 연재까지 필자는 ③에 해당하는 ‘십주품 제15’과 ‘범행품 제16’과 ‘초발심공덕품 제17’ 중에서 ‘십주품’을 설명해 마쳤다. ‘십주품’에서의 주(住)는 ‘머물다’는 뜻인데, 우리말의 주소, 주택, 주민 등의 ‘주’도 그런 뜻이다. 그러면 어디에 머문다는 말인가? 진리에 머문다. 무엇이 진리이고 어떤 진리를 말하는가? 참인 명제가 진리이고, “모든 법은 공하다”는 명제는 참(true)이다. 공(空)이라는 개념은 문맥에 따라 연기, 무상, 무아, 반야 등과도 치환되는데, 다섯 개념의 외연(extension)은 좀 다르지만 내포(intension)는 같다. 

‘십주품’에서는 공성(空性)에 입각[住]한 ‘발보리심’ 관련 이론이 총망라되고 있다. ‘발보리심’을 줄여서 ‘발심’이라고도 하는데, 진리 체험을 이루겠다는 마음먹기, 작정하기이다. ‘화엄경’ 구성작가는 ‘십주품’ 속에, 기존의 불교 교리와 인도 철학의 역사에 등장하는, 발심을 모두 열 가지 사례로 묶어 단계화하고 있다. 그러면, ‘십주품 제15’과 다음에 나오는 ‘범행품 제16’ 및 ‘초발심공덕품 제17’과의 관계를 ‘화엄경’ 구성작가는 어떤 방식으로 배치했는가? 화엄의 경학(經學)에서는 그 의도를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해석 소개에 앞서, 지금 이 글을 쓰는 필자나 읽는 독자나 모두 현재 진행하는 연재의 중심 주제를 환기해 두고자 한다. 즉 일체가 모두 공하다는 진리를 바탕으로 그를 체험하겠다고 마음먹을 때 필요한 이론, 그 이론이 주제이다. 이 주제와 관련하여 작가는 세 부분으로 설명한다. 첫째 부분은 그런 이론의 10가지 ‘단계’, 둘째 부분은 그런 이론의 10가지 ‘실천’, 셋째 부분은 그런 이론의 10가지 ‘효과’이다. 청량 국사는 세 품과 각 품 사이에 드러내고자 하는 내용을, ‘십주품’(辨位)-‘범행품’(辨行)-‘초발심공덕품’(辨德)으로 짝지었다.

‘청량소’가 널리 퍼진 임진왜란 이후 조선에서는 이런 분석 방법으로 ‘화엄경’을 읽었다. 설파, 인악, 연담, 백파, 함명, 경운, 석전, 운허, 월운, 취봉 등, 역대 강사 스님께서 이런 방법으로 제자들과 경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범행품 제16’에는, 위에서 말한 “일체가 모두 공하다는 지혜(진리)에 입각하여 그를 체험하겠다고 마음먹을 때 갖추어야 하는 이론”, 그 이론이 제시한 내용을 몸소 익히기 위한 ‘방법(이론)’을 소개하고 있다. 여기서는 ‘이론’이다. 경을 읽을 때 이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실천’을 보여주는 곳은 ‘이세간품 제38’이고, ‘입법계품 제39’에서는 그 ‘실천’을 선재동자라는 가상의 인물을 등장시켜 작품의 현장성을 높였을 뿐이다. 

이하에 ‘한글대장경’에 실린 운허 스님의 번역을 소개한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범행을 닦을 때는 마땅히 열 가지 법으로 반연을 삼고, 뜻을 내어 관찰하여야 한다. 이른바 몸과 몸의 업과 말과 말의 업과 뜻과 뜻의 업과 부처님과 교법과 승단과 계율이니라. 마땅히 관찰하기를 몸이 범행인가, 내지 계율이 범행인가 할 것이니라.” 관찰과 관찰의 대상이 핵심어이다.

보다시피 ‘범행품 제16’에서는 공(空)을 이해하고 나아가 체험하려는 발심 방법(이론)을 10가지로 요약하고 있다. 어떤 방법인가? ‘관찰’이라는 방법이다. 무엇을 관찰하라는 말인가? ‘관찰의 대상’을 압축하여 열 가지로 제시했다. 그런 다음 여기에서 더 나아가 “다시 열 가지 법을 닦아야 하나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옳고 그름을 아는 지혜, … 지혜”이다. 일체개공(一切皆空)을 알고, 그 바탕 위에 ‘지혜’를 더해야 한단다. 반야부가 부처의 어머니[佛母]란 말이 여기에서도 입증된다.

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 ananda@yonsei.ac.kr

[1640호 / 2022년 7월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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