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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원

기자명 혜달 스님
  • 세심청심
  • 입력 2022.07.19 15:31
  • 수정 2022.07.19 18:28
  • 호수 1641
  • 댓글 1

버스비 건네고 떠난 어르신과
거스름돈 10원 돌려주기 위해
먼 길 되돌아 간 5층 스님에게
부처님 제자로 사는 자세 배워 

대만의 여름은 고온다습해서 한낮의 바깥활동은 그야말로 고난이다. 아스팔트가 푹신푹신한 8월 여름 한 낮, 나는 학교를 가기 위해 버스정류장에 서있었다. 연거푸 혼잣말로 “얼굴이 익어가는 구나~”하며 홀로 버스를 기다리는데, 아주 허름한 옷차림에 몸이 한 쪽으로 기운 할아버지 한 분이 버스정류장 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바로 내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 어르신은 느닷없이 내 손을 잡더니 손바닥에 무언가를 쥐어주고는 아무 말 없이 오던 길을 되걸어가셨고, 엉겁결에 손을 잡힌 나는 놀라 얼른 손을 펴보았다. 내 손안에는 동전 10원이 놓여있었다.

뒤축이 거의 닳은 슬리퍼에 발을 들인 채 걸어가시는 어르신 뒷모습에서 나는 아무 것도 읽을 수 없었다. 나의 심장은 마구 쿵쿵거렸고 눈물은 그렁그렁 고여 왔다. 당시 대만 버스비는 10원이었고, 스님에게 버스비를 보시한 것이다. 얼굴조차 봐 둘 여유 없이 뒷모습만 보았지만 어르신의 마음을 나는 십분 전해 받았다. 그리고 어르신의 보시금은 나에게 기억이라는 기능이 제 역할을 하는 한, 맨 첫 자리에 있을 것이다.

승려여서 받은 시물(施物)을 어찌 셈법으로 셈할 수 있겠는가! 40여 년간 나는 무시무시한 시주의 은혜를 입었고, 그 시은(施恩)의 무게는 나의 빚으로 염라대왕 장부에 빠짐없이 하나하나 기록되어 있을 것이다. 그래서 혹자는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나의 유학생활은 행운이었다. 나의 곁에는 셈법이 정확하고 소박한 대만 비구니가 지척에 있어서다. 나는 3층에, 대만 비구니 스님은 5층 옥탑에 거주했고, 나는 그를 ‘5층 스님’이라 부른다. 우리는 종종 차밭, 등산, 시장, 불교관련 전시회에 함께 했다.

푹푹 찌는 여름, 시계 침이 오후 3시를 막 넘어서자 5층 스님이 시장 보러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고, 나도 5층 스님을 따라 1㎞ 넘는 거리의 전통시장으로 향했다. 스님은 야채며 두부며 과일이며 1주일 식재료를 잔뜩 사서 바퀴달린 장바구니에 담았고, 나도 야채 두어 가지를 사서 비닐봉지에 담아 들고는 땀투성이가 된 채 집 앞에 드디어 당도했다. 그런데 1층 출입문에 서자마자 5층 스님은 야채가게에서 10원(대략 당시 한국화폐 280원)을 더 받아왔다며 돌려주고 오겠다한다. 다음에 시장 갔을 때 돌려줄 것을 권유했지만 5층 스님은 본인이 잊어버릴 수 있다며 먼저 집에 들어가라 한다.

땀이 등골을 타고 비 오듯 했지만 혼자 다녀오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고, 의리가 있어야지 하는 마음에 함께 가겠다고 했다. 간간히 불어오는 축축한 바람과 함께 둘의 발걸음은 시장에 다다랐고, 맑은 미소에 자비가 그득한 밝은 목소리로 야채가게 아저씨에게 10원을 되돌려준 5층 스님은 함께 와준 나에게 사탕수수 원액 1컵을 사 주었다. 어찌나 덥던지 사탕수수 원액 1컵은 생명수였고, 사탕수수 힘을 빌려 집으로 되돌아오던 나의 발은 천근만근이었지만, 5층 스님의 발걸음은 허공을 걷는 것처럼 가벼워 보였다.

‘1원도 나의 것이 아니면 가져서는 안 된다’는 깨우침은 이때의 경험에서 터득한 교훈이다. 내 것 아닌 것을 알고도 게을러서 이기심에서 어부렁더부렁 하다 내 것 인양 써버린다면 오롯이 나의 빚으로 남는다는 것도 명심하게 되었다. 하찮은 1원이지만 내 것 아닌 것은 돌려줘야 마땅하고, 원주인이 망각했다 해서 돌려주지 않는다면 자신의 수치로 남을 것이다.

건전한 삶의 기준을 명확히 말하긴 어렵지만, 석가모니부처님 제자라면 부처님 체면 살려드리는 행동은 하고, 부처님 체면 없게 하는 행동은 하지 않는 것을 삶의 기준으로 삼으면, 큰 화는 입지 않을 것이다.

미래의 평화로움과 고통스러움은 지금 내 마음 씀씀이에 달려 있다. 숨 쉬고 움직이는 순간순간 우리가 지닌 선한 마음을 선동(煽動)하면 평화롭고 즐거울 것이다.

혜달 스님 (사)봉려관불교문화연구원장
hd1234369@gmail.com

[1641호 / 2022년 7월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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