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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을 만나야 하는 이유

기자명 남춘호
  • 법보시론
  • 입력 2022.07.25 14:24
  • 수정 2022.07.25 14:25
  • 호수 1642
  • 댓글 0

지난 6월 말, 완도가족사망사건이 알려지면서 한국사회는 그야말로 발칵 뒤집혔다. 많은 이가 추정하는 것처럼 경제적 어려움이 초래한 극단적 선택인듯하다. 특히 세간의 이목을 끈 것은 부모가 자식의 목숨을 끊었다는 점이다. 사건이 보도되자 많은 사람은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라며 아동학대, 가족살해의 문제를 강력히 비판했다. 소수지만 일부에서는 “부모의 결정이 잘못된 것이지만, 그 심정이 이해된다”는 댓글도 있었다. 그만큼 복잡하고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인 것이다.

이 사건을 통해 한국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살펴볼 수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부쩍 늘어난 아동 학대, 코로나와 경제 위기, 사회적 고립과 각종 정신건강 문제, 카푸어 등으로 대표되는 과잉소비주의와 코인 투자 같은 일확천금 심리, 어려운 문제에 부닥쳐 현실을 온라인 상황으로 착각하는 리셋(reset) 증후군. 그리고 이 문제들이 한국사회의 허리라 할 수 있는 젊은 가정에서 나타난다는 점이다. 어느 하나 무거운 주제가 아닐 수 없겠지만, 자의든 타의든 사회적 고립으로 인해 마지막 판단을 잘못했으리라는 점은 특히나 안타깝다.

자유시장주의 체제에서는 경제적 어려움은 예견된 문제라서 파산·회생 등의 제도를 만들어놓았다. 어렵고 때로는 수치스럽겠지만 대안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 대안은 분명 자신과 가족의 삶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것보다는 비교할 수 없이 나은 것이다. 어쩌면 최악의 선택을 한 이유가 주변에 지지해주거나 새로운 시각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예방의학에는 사회적 처방이라는 수단이 있다. 사회적 처방은 의료인이 환자에게 약물·시술 등 직접적인 치료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비의료적 서비스 제공기관에 연계시켜준다. 비의료적 서비스로는 봉사활동, 음악·미술 등 예술활동, 정원 가꾸기, 요리교실, 건강한 식생활 교육 및 다양한 스포츠 활동 등이 있다. 고 조유나 어머니처럼 우울증을 앓는 이에게 오히려 친목활동 기반의 사회적 처방을 권했더라면 여러 측면에서 도움이 되지는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얼마 전 옛 친구들을 만난 적이 있다. 젊은 시절 이주민 지원단체에서 한국어 교육 봉사를 하면서 만났다. 근 10년 만에 만나 서로 다르게 기억하는 옛 추억을 짜 맞추는 재미가 쏠쏠했다. 하는 일이 달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러다가 평소에 가졌던 고민을 해결하는 기회가 되었다. 연구계획서를 써야 하는데, 자료가 부족해서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그 분야에 경험이 있는 친구가 있어서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필자는 이 모임을 통해서 심리적 지지뿐만 아니라 새로운 정보를 얻은 것이다.
기대치 않던 사람을 통해 정보를 얻는 현상은 마크 그라노베터의 ‘약한 연결의 힘’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자신과 관계가 강한 연결(가까운 사람)보다 상대적으로 약한 연결(먼 지인)을 통해 새로운 정보를 얻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나와 자주 만나는 사람은 같은 그룹에 속한 사람이라 가진 정보의 차이가 별로 없다. 오히려 가끔 만나는 사람은 다른 그룹에 속해 있다보니 그 사람을 통해 새로운 정보를 더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만의 힘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 불교의 인드라망에서 그물은 한없이 넓고, 그물의 이음새마다 달린 구슬이 서로를 비춰주는 관계라고 한다. 나라는 인간의 실체는 사실 나와 연결된 다양한 관계를 통해서만 정의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도 가슴 아픈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회적 처방의 차원에서 잊고 지냈던 지인을 만나보는 건 어떨까? 약간의 자격지심을 내려놓고 고민을 나눈다면, 분명 삶에 대한 지지와 새로운 시각을 얻는 기회가 될 것이다.

남춘호 한국산업개발연구원 연구위원
namchoonho@naver.com

[1642호 / 2022년 7월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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