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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마음 나누기

기자명 하림 스님

자책·후회는 우울함으로 안내
힘듦 공유해 지지·격려로 위로
마음 가만히 분명히 지켜보면
실제로는 지나갔음 깨닫게 돼

10여년 만에 어느 스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급한 일인가 싶어서 바로 전화했더니 반가운 목소리로 안부를 먼저 주고받게 됩니다. “스님! 스님의 근황은 유튜브를 통해서 잘 알고 있어요. 예전에 비하면 살도 찌셨네요!” 순간 반가운 마음에 찬물을 끼얹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상대방은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그것이 반갑다는 마음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이런저런 근황들을 묻고 전화를 끊었는데 남은 마음은 ‘유튜브에 나갈 땐 살을 빼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고 ‘나도 이제 늙어 가는구나!’라는 사실을 되새기게 됩니다. 

가끔 어르신 보살님들에게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하면 손사래를 치시면서 거부하십니다. 그 마음을 조금씩 이해하게 됩니다. 늙음은 피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문득 ‘아!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다리를 건너왔구나!’라는 느낌이 듭니다. 어느 순간부터 ‘젊은이의 기운이 좋다!’라는 말이 귀에 들리게 되고 저도 하게 됩니다. 

요즘 매주 명상상담 강의가 김해, 서울, 우리 절에서 있습니다. 공부하는 그룹 가운데 열에 한, 두 명은 20대도 있고 30대도 있습니다. 

말은 하지 않아도 다 같이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젊은이가 있으니 함께하는 모두 생기가 도는 듯합니다. 가끔 종무소나 센터에 화초를 키웁니다. 화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그 푸른 색깔과 건강한 에너지, 화사한 꽃은 함께 하는 이들에게 생기를 줍니다. 젊은이가 꼭 능력이 있어야 하고 일을 잘하고 공부를 잘해야 좋아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그 자체로 꽃이고 화초입니다. 젊음이 그리워지고 생기가 그리워진다는 것은 내가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생기보다는 피곤한 느낌이 많습니다. 만나는 사람들이 가만히 나를 살피고는 “스님! 피곤해 보이시네요!”라고 인사를 합니다. 걱정해주고 위로해 주기 위해서 안타까운 마음에 건네는 인사지만 이 소리를 들을 때 기분이 좋아지거나 피로가 회복되는 느낌은 아닙니다. 그래서 피곤한 느낌이 들면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고 움직임이 예전보다 줄어듭니다.

소화도 잘되지 않아 공양 시간이 부담스럽고 귀찮을 따름입니다. 밥을 해 주시는 공양주 보살님은 가끔 하소연을 하십니다. “스님! 제발 공양 시간에 빨리 오세요!” 알겠다고 하면서도 매번 늦게 됩니다. 소화를 생각하면 밥 먹는 것이 힘들기만 합니다. 뭔가 변화가 있어야 한다며 이것저것 계획도 세워보지만, 그것을 하기도 귀찮아만 집니다. 

명상 프로그램을 하며 ‘마음 나누기’를 할 때 들어보면 이런 경험을 한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면 저도 공감이 되고 위로받는 느낌이 듭니다. 

어제는 김해에서 명상공부를 하다가 마지막으로 제가 말할 기회가 왔습니다. 마무리 인사 대신 저도 하소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최근 1년은 이런 마음들을 경험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공부하시는 분들이 잘 들어주셨고 그러고 나니 저도 좀 후련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힘든 마음을 나누고 누군가의 지지와 격려를 받으면서 위로가 되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 요즘 말하는 심리치료의 효과입니다. 일상에서 늘 하고 있고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번뇌에서 벗어나는 길을 일러주셨습니다. 우울할 땐 ‘우울하구나!’라고 알고 알아차리기만 하라는 것입니다. 기다리며 지켜보면 그 느낌은 사라져 갑니다.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서 화가 납니다. 나 자신에게 화내는 것이 자책이고 후회고 원망입니다. 이 마음이 나를 우울함에 빠지도록 안내합니다. 이때도 ‘원하는 마음이 있구나!’라고 그 마음을 가만히 분명하게 지켜보라고 합니다. 그러면 그 마음도 사라져 간다고요. 그렇게 내가 경험하는 모든 마음은 그 마음에서 마음을 지켜보면 사라져가고 아지랑이처럼 지나간다고 합니다. 

저도 지금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피곤한 느낌도 지금 찾아보니 이미 없습니다. 이렇게 지금 바로 주의를 돌이켜서 확인해 보면 실제로는 지나갔음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다행입니다.

하림 스님 부산 미타선원장
whyharim@hanmail.net

[1642호 / 2022년 7월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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