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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는 단 한구절도 유심정토를 설한 적 없다”

  • 교학
  • 입력 2022.07.29 21:12
  • 수정 2022.07.29 21:28
  • 호수 1643
  • 댓글 1

김호성 교수, ‘종요’ 대의 심층분석…자의적 해석 담긴 선행연구 비판
“유심정토설 근거 문장, 전후 맥락서 살펴보면 전혀 다른 해석 나와”

일부 학자들에 의해 잘못 번역된 ‘무량수경종요’가 원효(617~686)의 정토사상을 이해하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들은 ‘무량수경종요’를 전체적인 흐름에서 파악하기보단 특정 문장에만 집중해 “원효가 유심정토를 설했다”고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호성 동국대 불교학부 교수는 최근 ‘한국문화’(제98집·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발행)에 게재한 논문을 통해 ‘무량수경종요’의 대의(大義)를 분석한 선행 연구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했다. ‘무량수경종요’(종요)는 원효의 정토사상을 알 수 있는 핵심 저술로서 대의·종치(宗致)·약인분별(約人分別·擧人分別) 등 세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김 교수는 ‘종요’ ‘불설아미타경소’ ‘유심안락도’ ‘유심안락도사기’ 등 문헌들을 토대로 원효의 정토사상을 재검토했다. 그가 검증한 대표적인 선행연구자로는 정용미 박사·고영섭 교수 등 이 있다. 

정용미 박사는 “원효가 정토를 실재(實在)로 존재하는 공간으로 파악하고 있었던 것일까? 원효에 의하면 불토(佛土)는 원융(圓融)해서 본래 동서(東西)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예토(穢土)와 정국(淨國)이 본래 일심(一心)이며 생사와 열반도 끝내는 같은 것…”이라고 했다. 고영섭 교수도 “원효는 ‘무량수경종요’와 ‘불설아미타경소’에서 예토와 정토가 본래 일심이며 생사와 열반은 끝내 둘이 없다고 했다”며 “일심이 곧 붓다의 지혜정토임을 역설했다. 일심을 증득으로 서방정토가 아닌 차방정토, 타심정토가 아닌 유심정토를 신라에 구현하고자 했다”고 했다. 

김 교수는 이들이 유심정토설을 주장하는 근거로 ‘종요’ 대의에 나오는 ‘穢土淨國 本來一心 生死涅槃 終無二際’(예토정국 본래일심 생사열반 종무이제)를 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이 문장의 앞뒤 단락을 검토해보면 선행연구자들이 해석한 것과 전혀 다른 결론이 나온다고 지적했다. 이어 “‘예토정국…종무이제’ 문장은 유심정토설을 주장하기보단 오히려 타방정토설을 제시하기 위한 출발점으로 보는 게 적절하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이 문장을 치밀한 문헌학적 해석과 함께 분석하고 있다. “예토와 정토가 본래 일심이고 생사와 열반이 마침내 두 가지 경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원래의 대각으로 돌아가려면 공을 쌓아야 얻을 수 있는데, (네 가지 흐름)에 따라서 오래도록 꿈을 (꾸는 중생들에게는) 한꺼번에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 그런 까닭에, 성인께서 자취를 보이시는 데…아미타여래께서 저 안양국을 다스리면서 세 가지 무리들을 인도하여 왕생토록 이끄시는 것과 같다.”

하지만 ‘종요’의 우리말 번역본까지 유심정토관을 주장하는 연구자들과 유사하게 해석되면서 오역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조명기·이평래·정목 스님 등 역본이 오역된 원인은 ‘종요’ 대의의 단락을 잘못 나누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들이 단락을 잘못 나눈 실마리는 ‘然夫’(연부), ‘若’(약), ‘然’(연), ‘今’(금), ‘況’(황), ‘但’(단) 등 원효가 사용한 접속사와 부사에서 찾아냈다. 

김 교수는 유심정토와 타방정토를 절충하는 견해도 정면으로 반박했다. 논문에서 고영섭 교수는 “원효가 ‘정토와 예토는 하나’라고 한 것은 근기가 높은 이들을 위한 설이고 ‘정토가 서방에 있다’고 한 것은 근기가 낮은 이들을 위한 설이며, 전자는 유심정토·차방정토설의 근거이고 후자는 서방정토·타방정토설의 근간이 된다”고 밝히고 있다. 정목 스님 역시 “‘종요’는 타방정토를 버리지 않고 일심정토를 논하기에 특별한 논서이다”고 말한다. 

하지만 김 교수는 “원효가 화쟁을 중시했다고 유심정토와 타방정토를 절충했을 것으로 지레 짐작해선 안된다”고 문제를 제기한 뒤 “원효의 정토신앙은 가장 낮은 중생들에게까지 서방정토의 왕생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원효가 위대하다면 정토법문보다 더 고원(高遠)한 불교교학의 최고봉에 도달하였으면서도 유심정토는 전혀 말하지 않고 타방정토 설만을 범부들에게 제시했다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원효는 결코 유심정토설의 관점에서 ‘종요’를 쓰지 않았다”며 “원효의 정토사상은 유심정토가 아닌 타방정토설임을 분명히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정주연 기자 jeongjy@beopbo.com

[1643호 / 2022년 8월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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