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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을 사실 그대로 보기

기자명 하림 스님

쉬는 것에 익숙해지지 못하면
스트레스로 몸과 마음 힘들어
내편 되어 주는 이들 많기에
부담 내려놓고 편히 잘 쉬길

아침입니다. 공기가 다릅니다. 맑고 밝은 느낌입니다. 아침 햇살이 방 창문을 통해 들어오듯 지구의 공기가 나의 마음에 그 기운을 보내 줍니다. 참으로 고맙고 또 감사합니다. 오늘은 푹 잤는가 봅니다. 역시 아침의 개운함은 일찍 잠드는 방법이 제일입니다. 다른 온갖 방법을 동원해 보아도 마침내는 휴식의 시간이 지나야만 합니다. 

일하는 것에 익숙해 있었습니다. ‘쉬는 것은 게으르다. 착하지 못하다’라는 가르침이 머리에 또 가슴에 새겨져서 참 힘들었습니다. 사실을 사실 그대로, 있는 그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과로로 인해 또 한약을 먹게 되었습니다. 서울에서 6주간의 명상 강좌가 진행됐고 저는 3주를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참여했던 분이 제가 너무 힘들어 보인다며 부산까지 내려와서 기어이 한의원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80세가 넘으신 한의사 선생님께서는 제 느낌으로 거의 도인이셨습니다. 맥을 잡으시더니 하시는 말씀이, “스님, 죄송한 말씀이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으십시오. 불사도 중요한 일이지만 신경 쓰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 다른 병은 없습니다. 마음 편하게 지내면 다 나을 수 있습니다”라고 하십니다. 

아! 부끄럽습니다. 명상으로 스트레스 관리를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까를 과제로 삼아 부처님의 가르침인 ‘대념처경’을 기반으로 그 길을 전해주겠다고 말해왔는데 정작 저 자신은 스트레스에 많이 힘들어하고 몸과 마음이 지쳐있는 상태였던 것입니다. ‘이것을 어찌해야 좋을까?’ 며칠 동안 이런저런 일을 보다가도 다시 그 한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자꾸 생각납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불현듯 떠오르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 내가 과도했구나. 당분간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 그리고 3일이 지났을 무렵 약이 왔습니다. 

약은 쓰기만 할 뿐 역시 달지 않았습니다. 쓰디쓴 약을 먹고 나서 저 자신을 좀 살펴보았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많이 신경 쓰길래 몸과 마음이 힘들어하는가? 제가 신경 쓰고 있는 것들을 써보았습니다. 마치 방을 정리하려면 우선 방에 있는 것들을 모두 내려놓고 구상대로 다시 올려놓는 것처럼 말입니다. 

가장 큰 것은 은사스님을 모시고 살피는 일입니다. 또 하나는 신도님들을 살피는 일입니다. 또 하나는 주변의 가까운 인연들을 살피는 일입니다. 또 하나는 명상으로 불법으로 번뇌에서 벗어나는 길을 안내하는 것입니다. 법회를 준비하고 강의를 준비하고 원고를 준비합니다. 그런데 이 정도의 일은 사실 누구나 하고 있습니다. 또 누구나 해내는 일입니다. 저보다 더 큰 일을 매일 매일 하는데도 건강하고 즐겁게 하시는 스님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유독 제가 더 피곤해 보이는 것은 왜 그럴까요? 살펴보니 쉬는 것을 너무 힘들어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절에서 살았고 10살이 넘도록 의지할 대상이 없었기에 이곳저곳으로 떠돌며 지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기에 ‘이 절에서 무엇인가 열심히 하고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으면 다른 절로 쫓겨날 거야!’라는 생각이 자리 잡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디를 가든 그곳의 힘든 일을 짊어지려 합니다. 오히려 힘든 일은 내가 해야 한다고, 그래야 착한 사람이고 그래야 이곳에서 버려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지금도 제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사실을 사실 그대로 본다면, 지금 그 누구도 제가 어떤 일을 잘하지 못한다고 해서 위협하거나 비난하거나 어딘가로 보낼 일이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지금 제 인생에서 가장 저의 편이 되어 주시는 스님들과 신도님들이 많이 계십니다. 그런데도 그 마음을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물론 약으로는 그런 마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도 이제 정신 바짝 차리고 살려고 합니다. ‘내가 그 일을 해결해야 해!’ ‘쉬는 시간은 게으른 것이야. 뭔가 열심히 해야지!’라는 생각이 찾아올 때마다 용기 있게 이야기하렵니다. “그렇게 생각해도 나는 괜찮아.” “잘 쉬어야 힘이 모이고 그래야 다음 일을 할 수 있어! 나는 쉴 거야!”
이제야 속이 시원합니다. 여러분도 함께해 보시길 권합니다.

하림 스님 부산 미타선원장
whyharim@hanmail.net

[1646호 / 2022년 8월3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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