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함안군에 있는 1200년 전 절터에서 신라 장인이 만든 8~10㎝ 금동불상들과 불상머리(불두), 청동으로 만든 작은 탑 파편 등이 쏟아져 나왔다.
지난해부터 함안 절터를 발굴 조사 중인 불교문화재연구소(소장 제정 스님)는 다단으로 된 계단 석축과 건물터 15군데를 찾아냈으며, 이 유적들에서 소형 금동불입상 4구와 불두, 철제 종, 청동제소탑편 등 유물들을 거뒀다고 밝혔다.
조사한 절터는 강명리 광려산 기슭에 자리한다. 원래 공동묘지가 들어섰던 곳으로 지난해 발굴조사에서 ‘義谷寺’(의곡사) 명칭이 새겨진 기와 조각과 고려시대 금동불좌상, 건물지, 대형 석축 등이 발견된 바 있다.
이번 조사에는 모두 10㎝ 내외의 크기의 금동불입상이 추가로 4구 더 나왔다. 불상은 연꽃이 새겨진 3단 대좌 위에 서 올려져 있다. 불상들의 손갖춤 표시(수인)로 오른손 바닥을 밖으로 하고 손가락이 위로 간 시무외인과 왼손 바닥을 보이고 손가락이 아래인 여원인이 보인다.
옷주름은 조금씩 차이를 보이지만 양 어깨를 덮은 통견이며, 몸체의 배 아래로 드리운 가사의 옷자락은 발 아래까지 흘러내리는 특징을 보여준다. 통일신라 후기 유행한 불입상 형식으로, 경주 월지, 황룡사터, 양양 선림원터 등에서 나온 금동불입상과 비슷하게 생겼다.
사찰 건물 안의 장엄했던 청동소탑은 신장상(神將像)과 사자상, 풍경(風磬), 풍탁(風鐸) 등 탑의 각 부분에 해당하는 수십여개 조각들로 나뉘어 출토됐다. 원래 형태를 추정해볼 때 기단부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청동탑, 탑신부는 리움미술관 소장 금동탑과 유사한 형태라고 연구소 쪽은 분석했다. 이밖에 철제 종, 풍경, 토제 말, 곱새기와, ‘大夫人’(대부인), ‘太平’(태평)이란 글자들이 새겨진 기와조각 등 당시 절의 격과 중창시기를 짐작하게 하는 유물들이 출토됐다고 연구소 쪽은 전했다.
강명리 절터 조사는 문화재청이 기획재정부의 복권기금 지원을 받아 2013년부터 진행해온 ‘중요폐사지 시굴·발굴’ 사업의 일부다. 불교문화재연구소는 8월30일 오후 2시부터 현장설명회를 연다.
정주연 기자 jeongjy@beopbo.com
[1647호 / 2022년 9월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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