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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멍’ 때리는 사람들

흐르던 물이 멈추면 고인 물일까 밝은 거울일까

불멍·물멍·달멍·비멍 등 현재 대한민국은 ‘멍’ 때리기 열풍
머리 비우고 마음 쉬는 게 ‘멍’ 목적…명상으로 오해하기도
일시적 ‘멍’ 체험으로 근본적 개선 없어…‘지관’ 함께 해야

‘멍때리기 대회’에 참가한 시민들.
‘멍때리기 대회’에 참가한 시민들.
‘2016 멍때리기 대회’에서 우승한 가수 크러쉬. 서울시는 매년 멍때리기 대회를 열고 있다. [서울시]
‘2016 멍때리기 대회’에서 우승한 가수 크러쉬. 서울시는 매년 멍때리기 대회를 열고 있다. [서울시]

멍 때리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24시간 연결되어 있는 과도한 접속과 정보에 지친 사람들이 인터-넷이라는 ‘그물망’ 속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하고 싶은 것이다. 그들은 한결 같이 집착·욕심·불만·경쟁 등 부정적인 생각을 ‘내려놓고’ ‘머리를 비우고’ 싶다고 한다. 

원래 ‘멍하게 있는 것’은 주어진 일이나 상황에 집중하지 못하는 상태를 뜻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교정되어야 할 것이고 꾸지람과 질타의 대상이었지만, 지금은 과도한 스트레스 상태를 치유하는 방법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 ‘멍하니 있는 상태’가 뇌의 활동과 관련하여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는 신경과학과 심리학 분야의 연구결과가 소개되기도 하면서 일부 사람들에게 ‘멍 때리기는’ 머리를 비우고 마음을 쉬게 하는 적극적 행위로 까지 인식되고 있다. 

이제 멍때리기는 MZ 세대를 중심으로 일종의 생활 트렌드가 되고 있다. 그간의 불멍이나 물멍만이 아니라 달멍, 비멍, 바다멍, 숲멍 등 다양한 멍때리기가 등장하고 급기야 ‘누가 누가 멍 잘 때리나’를 겨루는 대회까지 열리고 있다. 2014년 10월 서울시는 ‘현대인의 뇌를 쉬게 하자’는 취지하에 서울광장에서 제1회 멍때리기 대회를 개최하였으며, 이후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호응 속에 국내 대회는 물론 대만, 네덜란드, 중국 등 해외에서도 국제대회를 매년 이어가고 있다. 올해 6월에도 힐링의 핫플로 알려진 서귀포 웰니스 숲 힐링 축제에서도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숲 멍때리기 대회’가 주요 프로그램으로 포함되었으며 지원자가 많아 3:1의 경쟁을 통과해야했다. 9월4일 열린 한강 멍때리기 대회에는 50팀(팀당 최대 3명까지) 모집에 무려 3800명이 지원했다고 하니 멍때리기의 열풍이 어느 정도인지 가히 짐작이 된다. 

한국의 멍때리기 열풍은 해외에서도 큰 관심거리다. 작년 11월 워싱턴포스트지(WP)는 서울발 기사로, 서귀포 웰니스 숲 힐링 축제에서 열린 멍때리기 대회와 함께 한국의 멍때리기 열풍을 소개하였다. 올해 2월 미국의 NBC 방송 The Today Show는 “Hitting mung. Stressed Out? Try South Korean wellness trend ‘hitting mung’” (멍 때리기. 과도한 스트레스로 지쳤나요? 한국의 웰니스 트렌드 ‘멍때리기’를 경험해 보세요)이라는 제하로 디지털 환경에서 마음을 편안하게 내려놓기 위한 활동으로 한국의 멍때리기를 소개한 바 있다.

대회는 90분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오래 유지하는 것을 기준으로 우승자를 선발하는데 만약 크게 움직이거나 딴 짓을 하면 실격패를 당한다. 참가자들은 모두 심장박동 측정기를 장착해야 하며 10~15분마다 측정하는 심박 수가 가장 안정적으로 나오는 사람이 우승자가 된다. 서울광장에서 열렸던 제 1회 대회에서는 9살 초등생인 김모 양이 대회 우승자가 되었으며 우승자에게는 상장과 함께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모양의 트로피가 수여되기도 하였다. 

멍 때리기 대회가 ‘뇌를 쉬게 하고’ ‘스트레스로 지친 심신을 회복’한다는 취지에 과연 도움이 될까?  한 참가자는 “멍 때리기는 쉬워도 멍 때리기 대회는 쉽지 않다. 멍 대신 번뇌가 가득 찼다”는 후기를 남기고 있다. 탈락과 경쟁, 우승자를 선발하기 위한 ‘대회’는 결국 또 다른 경쟁과 긴장 속으로 사람들을 몰아넣고 있는 건 아닐까? 

멍 때리기의 실제적 장기적 효과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흔히 ‘머리를 비우고 마음을 쉬게’하는 목적으로 멍을 때린다고 한다. 집착과 긴장을 해소하고, 초조불안과 같은 부정적 생각을 내려놓기 위해 멍을 때린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멍때리기는 얼마만큼의 실제적인 효과가 있을까? 앞서 언급한대로 신경과학이나 심리학에서는 멍때리기의 긍정적 효과를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 효과는 잠깐의 ‘휴식’을 통한 리부팅 혹은 리프레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장기적이며 지속적인 효과, 이를테면 내려놓았던 마음이 다시 올라 오지 않고, 평온한 일상을 유지하는 그러한 효과는 장기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일시적인 상태의 경험으로 의식이 변하긴 어렵다. 어망 안의 물고기가 벌어진 그물망 사이에 코를 박고 잠깐 숨을 돌렸을 뿐 돌아서면 또 다시 어망 안이다. ‘오분 간 휴식’을 마친 훈련병이 다시 연병장을 빡빡 기어야 하듯이, 멍 때리는 달콤한 휴식이 끝나면 마찬가지의 삶이 기다리고 있다. 근본적인 삶의 변화를 기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결국 잠시 쉬다 다시 무거운 짐을 지고 어디로 가는지 모르던 길을 다시 또 가야한다. 

머리를 비운다고 가슴까지 비워지는 것은 아니다.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거리는 36센티 정도에 불과하지만 삶에서 두 곳 간의 거리는 멀다. 김수환 추기경은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까지 내려오는데 70년이 걸렸다”고 하셨다. 입으로, 머리로 하는 관념적 사랑이 가슴으로 내려와 이해, 관용, 포용, 동화, 자기낮춤으로 실천되는데 오랜 세월이 걸렸다는 말씀이다. 물론 그 분 다운 겸손의 말씀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머리와 가슴의 거리는 멀디멀다. 머리를 채운다고 가슴이 채워지지 않듯 머리를 비운다고 가슴도 비워지는 것은 아니다. 머리로는 ‘내려놓자!’라고 생각하지만 마음은 그것을 놓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흔히 멍 때리는 것을 명상의 일종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오해다. 명상은 마음을 진공상태로 만드는 ‘멍 때리기’가 아니다. ‘멍’하기만 한 상태를 혼침(昏沈)이라고 한다. ‘어둡고’ 바닥으로 ‘가라앉는’ 마음의 상태다. 명상은 ‘wake-up’ 곧, 깨어나는 것이다. 

그렇다고 로댕의 ‘사람’처럼 하나의 대상에 몰입한 상태도 아니다. 명상은 ‘나’를 쳐다보는, 자각(自覺)의 상태로 쾌/불쾌/고통 등의 감각과 감정, 생각 등 내적 경험 자체가 일시적 현상임을 통찰하는 과정이다. 그리하여 명상은 우리의 몸과 의식이 외부와 내부 환경에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몸과 마음에 대한 조절력을 확장하는 훈련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요컨대 명상은 마음의 근육을 ‘수의근’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번다한 생각의 흐름을 멈춘 것을 불교명상의 용어로 지(止)라고 할 수 있겠으나, 흐름을 그친 물은 ‘명경’(明鏡, 밝은 거울)일 수도 있고 단지 ‘고인 물’일 수도 있다. ‘흐름을 그친 물’이 밝은 거울이 되기 위해서는 ‘바라보는’ 관(觀)이 함께 해야 한다. 소위 지관겸수다. 멍 때리는 것만으로 마음은 비워지지 않는다. 또한 비워진 ‘상태’를 일시적으로 경험한다고 해서 의식이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다. 지속적이며 근본적인 의식의 전환을 위해서는 지관을 함께, 동시적으로 실천해야 한다.    

조성택 고려대 철학과 교수 stcho@korea.ac.kr

[1647호 / 2022년 9월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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