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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간 공존을 위한 조건

최근 법보신문이 제기한 가톨릭의 무분별한 역사유적지 확대에 대한 우려의 기사들을 보면서 숨이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조선이 가톨릭 국가였나” “서울시, 로마 ‘바티칸 시티’ 조성하려는가?” “박해·순교 역사에만 매달리는 ‘회상 종교’ 벗어나야” 등 다소 분노가 서린 기사들이 불교계의 위기감을 표출하고 있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공공의 장소를 한 종교 일변도의 성지로 포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가톨릭 내부는 물론 제대로 된 역사의식을 가지지 못한 위정자들에게도 문제가 있다. 따라서 불교를 바라보는 시각을 교정해야 한다.

한반도에 불교가 들어온 것은 약 1700년 전이다. 그 이전에 종교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삼신각이나 칠성각처럼 독자적인 전각이나 산신, 칠성, 독성을 모신 삼성각이 절 뒤편에 있는 것은 불교와 그 이전 시대의 신앙이 습합된 것을 보여준다. 신불습합이 강렬한 일본에서 자연종교인 신도는 불교의 영향으로 방대한 신도서를 편찬하기도 하였다. 불교는 전통 신앙을 흡수하면서도 한반도 문화의 담지자로 기능해 왔다. 불교 이전에 수만 년 동안 형성된 한반도의 고유한 정신이 또한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삼국사기’에 나온 것처럼 최치원은 ‘난랑비서’에서 “우리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풍류라고 부른다”고 하여 그것이 삼교를 융합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어쩌면 이 풍류가 유불도만이 아니라 가톨릭, 개신교, 근대 신종교들을 받아들이고 탄생시킨 힘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불교인들은 이러한 풍류의 정신을 자기화함으로써 한반도가 발신하는 불교사상을 꽃피워냈다. 원효대사는 모든 것을 다르마(dharma) 속에 받아들여 세계에 자랑할 만한 한반도의 고유한 철학체계를 세웠다. 이처럼 한국의 조사들은 그 어떤 사상도 타자화하지 않는다.

한편 불교는 실크로드와 중국을 거치면서 국제화된 사상을 풍부하게 품게 되었고, 한반도가 이를 받아들인 것은 고대국가의 완성을 위해서였다. 실제로 국내 및 국제정치의 안정을 위해 자신의 역할을 해왔다. 고대국가에서 불교를 빼고 무엇을 논할 수 있는가. 불교는 한반도의 생활문화를 담는 그릇이 된 것이다. 유무형의 문화재가 불교를 통해 유산으로 전해지는 것은 이러한 역사적 전통 때문이다. 과연 불교를 하나의 종교로만 볼 수가 있겠는가. 가톨릭이나 개신교는 유럽에서 오랜동안 정치와 종교와의 갈등을 겪고 근대에 와서 가까스로 정교분리의 원칙에 합의하여 종교로서의 고유 영역을 확보하게 되었다. 이러한 자신들의 잣대로 불교를 봄으로써 오해를 불러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프로테스탄트 불교라고도 하지만, 불교만의 특유한 무유정법(無有定法)의 정신으로 이제는 계시종교와의 공존을 통해 서구에 정착하고 있다.

나는 공영방송에서 흘러나오는 서구 기독교 음악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 한편에선 공공의 방송이 편향적으로 종교음악을 송출하고 있다고 비판도 한다. 그렇지만 서구사회에서 ‘성경’의 구약이 중심인 헤브라이즘과 신약이 중심인 ‘예수교’의 세계를 빼고 나면 무엇이 남겠는가. 여행을 가도 고색찬란한 성당이 없는 곳이 없지 않은가. 한반도에 오랜 역사를 지닌 사찰이 산재해 있듯이 말이다. 불교를 공부함으로써 마음을 확충하면 지구의 어떤 문화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사실을 체험하고 있다. 결국 한반도에서의 불교는 종교적인 역할도 해왔지만 문화의 전승자, 계승자로서의 역할도 해온 것이다. 이로써 역사의 한 축을 기록하고 있다.

종교의 교리를 서구에서는 도그마(dogma)라고 한다. 여기에는 독단성이라는 성격이 내재되어 있다. 이는 신을 모시는 종교들의 특징이다. 불교 또한 각종 각파를 이루면서 현실적으로 이러한 독단성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서구 종교의 이러한 독단성이 사회적으로 표면화 될 때, 종교 간 평화로운 공존은 무너지고 지옥으로 변화될 수 있음을 어제와 오늘의 현실에서 읽을 수 있다. 다종교사회의 모범을 보여 온 한국사회가 종교 간 대립과 갈등으로 가지 않도록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깊이 성찰해야 한다.

원영상 원광대 원불교학과 교수 wonyosa@naver.com

[1649호 / 2022년 9월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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