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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채식과 육식-상

불살생계 수지 불자라면 채식주의 선호는 당연

불교는 자신의 생명 잃는 상황 발생하더라도 살생 피할 것 요구
논리적으로 나에 대한 해악 원치 않기에 다른 존재 해악 피해야
가축 도살은 가축에게 고통이지만 도살업자에게도 정신적 고통

나에게 나쁜 것을 남에게 강요할 수 없다는 공감논증을 통해 육식금지의 논증도 가능하다.
나에게 나쁜 것을 남에게 강요할 수 없다는 공감논증을 통해 육식금지의 논증도 가능하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불자들은 채식과 육식 사이를 줄타기하면서 각자의 식습관을 적당하게 합리화하며 사는 것 같다. 이 글은 제임스 J. 스튜어트(James J. Stewart)가 쓴 “The Question of Vegetarianism and Diet in Pāli Buddhism”(Journal of Buddhist Ethics, vol.17, 2010)을 대본으로 삼아 채식과 육식의 문제를 한번 살펴본 것이다. 논문은 채식주의를 찬성하는 논변과 승가의 음식 규정, 그리고 붓다 자신의 식사 및 승가의 분열을 막기 위한 노력 등의 순서로 전개되고 있다.

대승불교권과 달리 남방불교에서 육식은 계율의 제약을 받지 않으며 사실상 전통적인 음식문화의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훌륭한 불자(a good Buddhist)’가 되려면 여전히 채식주의자여야 한다는 사고방식도 엄연히 공존한다. 이는 불살생의 도덕적 가르침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고 본다. 불교에서 폭력의 거부 입장은 너무나 분명하다. 심지어 자기방어(self-defense)를 위한 살생조차도 거부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쌍윳따 니까야’에서 붓다는 폭력적인 적대자들을 대하는 뿐나(puṇṇa)의 평화주의적인 태도를 승인한다. 뿐나는 폭력적이고 비종교적인 도시 수나빠란타(Sunāparanta)를 방문하는 동안 -그가 비록 공격받는 일이 있더라도 그리고 심지어 그 싸움이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다고 하더라도- 자신은 그들과 싸우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한다. 붓다가 이런 행동을 승인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붓다의 가르침은 -가능하면 살생을 피해야 한다는 약한(weak)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어떤 환경에서도 살생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는 강한(strong) 의미에서도- 살생을 반대하는 것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무엇을 살아있는 존재로 규정할 것인가와 따라서 무엇을 죽여서는 안 되는가의 문제는 그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심각한 윤리적 논쟁거리이다. 람베르트 슈미트하우젠(Lambert Schmithausen)은 이러한 생명의 규정이 식물의 생명도 포함할 것인가를 놓고 한동안 고심했다. 하지만 이러한 “살아있는 존재”의 관념은 거의 예외 없이 동물을 포함한다는 사실은 분명한 것 같다. 

“비구들이여! 어떤 종류의 사람이 자기 자신을 고문하고 또한 다른 사람들을 고문하는 관행을 추구하는가? 여기에는 양 도축업자, 돼지 도살업자, 들새 사냥꾼, 덫을 놓아 야생동물을 잡는 사람, 사냥꾼, 어부, 도둑, 사형집행인, 간수 혹은 그 외에도 손에 피를 묻히는 직업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다른 존재들을 고문하고 나아가 다른 존재들을 고문하는 관행을 추구하는 종류의 사람이라고 불린다.”(MN 51. 9) 이러한 직업들은 살생이 거부되었던 것과 똑같은 이유로 배척된다. 왜냐하면 그런 직업은 희생자인 동물들에게 고통을 초래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런 직업은 도살업자들에게도 정신적 고통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들은 죽어서 지옥에 떨어져 오랫동안 고통을 당할 것이라는 말을 듣는다. 

논문의 저자는 경전의 지지에 바탕을 두고 이른바 ‘공감의 논증(the Argument from Sympathy)’을 도입한다. “장자들이여! 여기에 한 고상한 수행자는 이렇게 성찰한다. ‘나는 살기를 바라고 죽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다. 나는 행복을 바라고 고통을 혐오한다. 나는 살기를 바라고 … 고통을 혐오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만약 어떤 사람이 나의 생명을 빼앗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나에게 즐겁거나 기분 좋은 일이 아닐 것이다. 지금 내가 –살기를 바라고 죽기를 바라지 않으며, 행복을 원하고 고통을 혐오하는-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그 다른 사람에게도 즐겁거나 기분 좋은 일이 아닐 것이다. 나에게 즐겁지 않거나 기분 좋은 일이 아닌 것은 다른 사람에게도 역시 즐겁지 않거나 기분 좋은 일이 아닐 것이다. 나에게 즐겁지 않거나 기분 좋은 일이 아닌 것을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부과할 수 있단 말인가?’ 이렇게 성찰했다면 그는 스스로 생명의 파괴를 삼가고 다른 사람들에게 생명의 파괴를 삼가도록 권유할 것이며 나아가 생명의 파괴를 삼가는 것을 칭송한다. 이렇게 해서 그의 신체적 행동은 세 가지 점에서 청정하게 된다.”(SN 55. 7) 이 논증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간명하게 정식화될 수 있다.

- 공감의 논증 -
1. 심리학적 요구(Ⅰ): 나는 다른 사람이 -나의 생명을 빼앗거나 나를 다치게 함으로써 나에게 해악을 끼치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2. 심리학적 요구(Ⅱ): 다른 사람도 내가 -그의 생명을 빼앗거나 그를 다치게 함으로써 그에게 해악을 끼치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3. 숨은 전제(Ⅰ): 행동과 신념에 있어서 비일관성들 즉 모순들은 가능하다면 어디에서나 피해야 할 것이다.
4. 숨은 전제(Ⅱ):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해악 끼치는 것을 원하지 않지만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해악을 끼치는 것은 비일관적(모순적)인 일일 것이다.
▶ 결론: 그러므로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해악을 끼치는 것을 피하고, 다른 사람들이 해악을 초래하지 않도록 권유할 것이며, 해악을 초래하지 않는 사람을 칭송할 것이다. 

이 논증은 심리학적 요구 즉, 모든 사람은 고통을 피하기를 원한다는 요구 위에 서 있다. 이 논증은 직접적으로 독자들에게 호소한다. “당신은 고통을 피하기를 원하는가?” ‘공감의 논증’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명제 즉, ‘나는 나에게 즐겁지 않거나 기분 좋은 일이 아닌 것을 다른 사람에게 부과할 수 없다’라는 명제에 동의하라고 호소한다. 이런 논리를 확장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다른 존재의 살생도 삼가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것은 이미 언급했듯이 동물들의 살생을 포함할 것이다. 저자는 ‘공감의 논증’을 통해 어렵지 않게 ‘육식 금지의 논증(The Argument Against Meat-Eating)’을 유도한다. 

- 육식 금지의 논증 -
1. 동물 도축업은 두 가지 방식으로 고통을 초래한다. (a)그것은 동물을 고문(torment)한다, 그리고 (b)그것은 그 거래인을 고문한다.
2.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종류의 고통을 초래하는 동물 도축과 같은 상거래를 중단하라고 권유하는 것은 훌륭한 불자의 의무다.
3. 도축업자로부터 획득한 고기를 소비하는 것은 동물 도축의 관행을 장려한다.
▶ 결론: 그러므로 훌륭한 불자는 동물살생으로부터 획득된 고기를 소비하지 않음으로써 그와 같은 직업을 지지하는 것을 피할 의무를 갖게 된다.

두 가지 논증을 종합하면 다른 사람에게 살생을 하지 말라고 권유하는 의무는 두 가지 방식, 즉 직접적인 방식과 간접적인 방식으로 작동한다. 두 가지 방식 모두에서 도축업자의 직업에 대한 승인은 철회된다. 그것은 훌륭한 불자라면 고기를 구매해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 직접적으로 그리고 훌륭한 불자는 다른 사람들에게 고기를 구매하지 않도록 권유해야 한다는 점에서 간접적으로 작동한다. 고기의 수요가 없다면 동물은 죽임을 당하지 않을 것이며 나머지 동물들도 도축용으로 거래되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채식주의는 간접적인 형식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살생을 삼가라고 권유하는 도덕 명령의 임무를 수행한다. 불살생계를 수지(受持)한 훌륭한 불자라면 채식주의를 선호해야 하며 그런 점에서 채식주의는 불자들의 바람직한 음식 섭취 방법으로 널리 수용되어야 할 것이다. 새삼 불자인 나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허남결 동국대 불교학부 교수 hnk@dongguk.edu

[1649호 / 2022년 9월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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