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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절집마다 전하는 신기한 영험담

기자명 김태형

‘영험담’ 절집 향한  애정 투영된 것

염라, 비사리구시 크기 물어봐
사실 말한 할머니 큰 칭찬 받아
애정도 지나치면 대상에겐 독
성보 문화재 훼손으로 이어져

송광사 경내에는 꽃무릇이 한창이다.

남도 사찰의 초가을은 붉은 꽃무릇이 무리를 지어 피고 하얀 은목서 꽃도 감미로운 향기를 풍기며 피어난다. 색과 향이 조화를 이루는 남도 산사의 가을은 그래서 아름답다.
절집마다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오래된 사찰에는 ‘전설따라 삼천리’ 같은 영험담들이 전하고 있다. 특히 일제강점기에는 이런 류의 얘기들이 활자화 되어 전국에 퍼지면서 그와 비슷한 이야기들이 여기저기 생겨났다. 

송광사에는 천자암 쌍향수와 능견난사와 더불어 3대 명물이 있는데 그중에 ‘비사리구시’와 관련된 전설이 전한다. 남원에 살던 어떤 노파가 죽었다가 살아나 염라대왕으로부터 특명을 받고 송광사를 찾아오면서 얘기가 시작된다. 

옛날 남편을 여윈 할머니가 아들 며느리 손자들과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어느날 점심을 먹다가 갑자기 숨을 거두었다. 저승사자를 따라 염라대왕 앞으로 간 할머니는 먼저 온 많은 사람들이 염라대왕 앞에서 시험을 치르는 광경을 보게 됐다.

염라대왕은 사람들에게 송광사를 다녀왔는지 묻고 ‘예’ 라고 답하는 이들에게 비사리구시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를 물었다. 그러나 이들은 송광사를 다녀오지 않고도 참배했다고 거짓을 고해 염라대왕에게 호된 꾸지람을 들었다고 한다. 

마침내 차례가 되어 염라대왕 앞에서 할머니는 송광사에 초파일에도 가고 보조국사 종제에도 가보고 해서 비사구리도 여러 번 보았지만 크기를 잰 적이 없어 정확한 크기를 말할 수 없다고 하자 염라대왕은 크게 칭찬하며 좀 더 살다가 오라고 했다.

할머니가 눈을 뜨니 죽었다고 가족들이 깜짝 놀랐고 할머니는 자초지종을 말하면서 염라대왕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길로 바로 할머니와 아들은 송광사로 가서 비사리구시의 크기를 쟀다.

30여년 전만 해도 실제로 비사리구시의 크기를 재는 이들이 하루에도 여럿이 찾아와 소란스러웠다고 한다. 또 이 실로 수의(壽衣) 한 벌을 꿰맬 수 있다고 한다.

심지어 선방 문고리만 잡아도 지옥(혹은 삼악도)을 면한다던가 송광사 산내 암자인 천자암 쌍향수 나뭇가지를 만지면 극락에 간다는 등의 얘기들이 지금도 전하고 있다.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는 영험담들을 보면서 그저 재미로 생각하거나 헛된 미신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에는 절집에 대한 애정이 반영된 것이 아닐까 한다.

그렇지만 애정도 도가 지나치면 그 대상에게는 지옥을 선물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예전에 부석사에 있을 때 국보로 지정된 석등 화사석 안으로 동전을 던져 넣는 몰지각한 행동들이 있어 경고문을 붙인 일이 있다. 한동안 잠잠했는데 최근 다시 가보니 여전히 동전이 석등을 훼손시키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성보문화재를 훼손시키는 일은 명백한 법 위반행위이며, 문화유산을 파괴하는 사소하지만 엄청난 일임을 알아야겠다. 

김태형 송광사성보박물관 학예실장 jprj44@hanmail.net

[1650호 / 2022년 9월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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