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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삼매수’로 잘못 씻고 새롭게 나아가자

기자명 성원 스님

“진심으로 소통하고, 신심으로 포교하고, 공심으로 불교중흥의 새 역사를 열겠다”고 천명하는 조계종 37대 총무원장의 일성이 울려퍼졌다. 지금까지 많은 불교의 글들이 필요 이상으로 이상적 세계를 기웃거리며 현실 상황과 이격되는 듯한 느낌이 많았다면 이번 취임사는 달랐다. 분명하게 우리 불교의 현재 상황과 문제를 직시하고 당당하게 우리 사회의 리더적 역할로 자리해 나갈 것을 분명히 하겠다는 의지와 자신감이 충만한 취임사였다. 듣는 것만으로도 참으로 기분이 좋다. 더구나 소속감에 강한 긍지가 느껴지는 것은 비단 나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조계종 총무원장의 선출 과정은 지금까지 숱한 어려움을 겪어 왔고 성숙한 사회적 의식에 미치지 못한 행태로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무엇보다 화합을 중요한 덕목으로 여겨왔던 승단에서 대중결의와 대중화합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출범한 새 집행부는 처음부터 분명 무언가 다른 길을 당당히 걸어갈 것이라는 확신을 전해주기에 충분한 것 같다. 불자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기대에 걸맞은 자신감 넘치는 모습에서 벌써부터 큰 기대를 걸고 싶다.

지금 우리 사회는 잘못한 말 때문에 큰 홍역을 치르고 있다. 국제적으로 위상이 한껏 높아진 탓에 우리의 일은 결코 국내만의 문제가 아니다. 특히나 외교무대 자리에서 저속한 발언은 아무리 사적 발언으로 둘러댄다고 해도 따가운 세계의 시선을 피하기는 역부족이다. 국내 언론만 단속하며 피해 가려는 모습은 더욱 큰 모순으로 덩치만 키울 뿐이다.

잘못과 거짓은 어떤 핑계나 변명으로 덮을 수 없다. 하나의 거짓을 덮기 위해서는 열 개의 거짓으로도 힘들다. 거짓의 불길은 오직 진실한 참회수(懺悔水)로만 끌 수 있다. 불교는 일찍부터 자신의 과오는 자비의 물길로 씻을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죄를 씻고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예참법인 자비수참(慈悲水懺)이 새삼 생각난다.
당나라 의종 때에 오달국사 지현 스님이 편찬한 ‘자비삼매수참법’ 서문에서 스님이 겪었던 생생한 일화를 후대에 전해주었다. 스님이 사미 때 총림에서 병을 앓는 노승 한 분을 지극히 간병해 주었는데 회복 후 떠나면서 “어려운 일을 당하면 서촉 땅 팽주 다롱산 쌍 소나무로 찾아 오시오”라고 했다. 

그 후 국사가 된 스님의 법문을 들은 황제가 도력과 덕망을 숭모하여 보시한 침향목 침상을 율장에 금지하였지만 사용했다. 그때부터 마음에 틈이 생기고 허벅지에 인면창(人面瘡)이 생겨 의사들도 치료하지 못했다.

스님은 옛 기억을 더듬어 다롱산을 찾아 바위 밑 샘물에서 인면창을 씻으려 하니 “한나라 원앙과 조착의 전기를 기억하오? 그때 죽인 원앙이 당신이었고, 죽은 조착이 나였소. 너무나 원통하여 앙갚음하려 했지만, 늘 고승이 되어 계행이 청정하여 원한 갚을 틈을 얻지 못하였는데, 이제 분에 넘치게 사치하고, 명예를 탐해 마음에 틈이 생기니 해하려 한 것이오. 그러나 그때 병자 가낙가존자를 지극히 간병한 공덕으로 삼매의 물을 얻어 나를 씻게 되었으니, 다시는 당신을 원수로 생각하지 않겠소” 했다. 씻은 후 잠시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나니 인면창은 흔적조차 사라졌다. 이 일을 겪은 오달국사는 한번 쌓인 원한은 성현의 법력 없이 풀 수 없었음을 통감하고 ‘자비수참법’을 지어 온 천하에 전하여 지금까지 행해지고 있다.

잘못을 저지르는 일보다 그 잘못을 뉘우치고 올바로 참회하는 모습에서 우리들의 진정한 위대성이 발현되는 것이다. 우리 불교가 그동안 어려움 속에서 잘못이 있었다면 물로 씻듯이 깨끗이 참회하고 나아간다면 더 큰 갈채의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나랏일 하는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가낙가존자의 자비삼매수로 씻지 못할 잘못이 어디 있을까? 씻을 줄 모르고, 씻지 않는 어리석은 중생들이 있을 뿐이다. 

지난 잘못을 씻고 힘차게 나아가는 희망찬 우리의 새날에 어찌 부처님의 가호가 함께하지 않겠는가?

성원 스님 약천사 신제주불교대학 보리왓 학장
sw0808@yahoo.com

[1652호 / 2022년 10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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