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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계바라밀과 보살행

대승계, 단순 규제 넘어 사고 전반으로 개념 확장

대승에서 계는 계정혜 삼학 구성요소 넘어 수행도로 확장 
섭선법계·요익유정계에 대승윤리의 사회적 성격 잘 드러나
대승계 이해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정신 의향과 태도

감지은니 범망경보살계품(보물). [문화재청] 

계의 본질은 해치려는 행동을 버리려는 것이며, 나아가 그런 행동의 토대조차 끊으려는 의도이다. 해치려는 행동은 십불선업 중에서 신업과 구업에 해당되는 앞의 7종이며, 그런 행동의 토대란 불선한 의업으로서의 나머지 3종이다. 십불선업은 살생, 투도, 음행, 망어, 악구, 양설, 기어, 탐욕, 진에, 사행으로 보살이 행해야 하는 십선업의 반대이다. 

초기불교에서 십불선업은 주로 재가자를 위한 가르침으로 간주되고 있고 반면 출가자를 위한 보다 구체적인 금지조항으로서 250종의 별해탈계(別解脫戒)의 항목들이 제시되어 있지만, 십불선업 내지 그 반대로서의 십선업이 보다 불교의 정신적 태도 일반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보인다. 왜냐하면 별해탈계에서 제정된 윤리적 항목들은 붓다께서 무엇을 행하고 무엇을 행하지 말아야 한다고 설하신 것을 실천하기 위한 것으로 고행주의적인 사문전통의 특성을 반영하면서 남에게 방해받지 않고 자신의 해탈을 추구하려는데 초점이 놓여있는데 비해, 십선업에서는 불교윤리를 특징 지우는 동기주의적 관점이 보다 분명히 보이기 때문이다. 

불교윤리를 결과주의적 관점에서 설명하려는 시도가 현대학자들 사이에서 많이 보이지만, 그럼에도 동기/의도의 문제를 고려함이 없이 그 성격을 제대로 이해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행위의 결과만을 고려한다면 중생도 끝이 없고 그들의 불선한 행위도 끝이 없을 터인데 그런 상황 속에서 어떻게 모든 형태의 불선업을 끊음이 가능하겠는가? 따라서 끊어야 할 것은 외적인 모든 불선한 행위가 아니라 자신의 내부에 있는 악행의 토대일 것이다. 샨티데바는 그의 입보리행론(V.12-14)에서 이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계바라밀은 세상에서 물고기의 살생 등을 끊는 것으로 성취되지 않으며, 그것은 오히려 (불선한 행동을)버리려는 의도라네. 내가 얼마나 많은 허공처럼 (무수한)악행들을 끊을 수 있겠는가? 그렇지만 진에심을 끊는다면 모든 적은 살해된다네. 이와 같이 나는 외부의 사물을 지배하지는 못하지만, 내 생각을 다스릴 수는 있다네.”  

이 구절은 의도의 청정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지만, 그렇다고 실천성 없는, 결과를 고려하지 않는 청정한 의도만으로 보살윤리가 성립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살지는 별해탈계를 포함해서 보살계의 항목을 섭선법계와 요익유정계로 확장시키고 있다. 

초기불교의 별해탈계에서 열반이라는 최고의 목적에 전념하는 수행자에게 승원생활을 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의 금지항목들이 제시되고 있다는 점에서 별해탈계는 다른 두 계의 기초가 되며 전적으로 출가보살을 위한 것이지만, 반면 섭선법계와 요익유정계 양자는 각기 의도의 청정성과 그 의향의 사회적 실천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대승윤리의 사회적 성격을 강하게 보여준다. 

섭선법계란 대보리의 증득을 위해 6바라밀 등의 선법을 향해 마음을 일으키고 그것을 내면화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자신에게 아직 생겨나지 않은 선법은 일으키고, 이미 생겨난 선법은 사라지지 않게 하고, 마지막으로 선법을 보존할 뿐 아니라 그것을 계속 발전시키고 강화해 나가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요익유정계란 대승보살이 현생에서나 내생에서 다른 중생에게 도움이 되게 행동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런 행동에는 현생에 일시적으로 도움이 되는 일도 있고, 내생에 도움이 되는 일도 있을 것이며, 또 법시와 같은 정신적 도움뿐 아니라 적극적인 물질적 도움처럼 중생에게 구체적인 도움을 주는 일들도 포함되어 있다. 보살지는 이를 11종으로 나열하는데, 병자의 간호, 세간적이고 출세간적 목표를 올바로 설하는 것, 받은 것을 알고 은혜를 갚으려는 것, 맹수나 왕, 도둑, 물과 불로부터 중생들을 보호하는 것, 불행에 빠진 자들의 위로, 가난한 자에 대한 보시, 자애를 갖고 제자를 이끌고 그들에게 물질적 도움을 제공하는 일, 타인의 요구에 응하는 일, 타인의 좋은 특성을 칭찬하는 일, 불선한 일을 하는 타인으로 하여금 불선한 일을 버리고 선한 상태로 되돌아오게끔 하기 위해 연민심을 갖고 꾸짖고 처벌하고 추방하는 것, 불선한 일의 결과로서 지옥 등을 신통력을 갖고 보여주는 일이다. 

이와 같이 요익중생계의 항목은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정신적 의향뿐 아니라 사회적 이타행의 항목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데, 여기에 특히 출가보살에게 적합하거나 고유한 실천은 설법 및 제자의 지도라는 항목에서만 보이지, 다른 항목들은 재가보살에게 더욱 어울리거나 어필하는 실천내용이라고 보인다. 우리는 불교가 사회적 관심이 부족하다고 생각해 왔지만, 이런 비판은 적어도 보살지의 이념에 따른 대승의 보살윤리에게는 해당되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이 대승불교에서 계의 개념은 단순히 계정혜 삼학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를 넘어 수행도 전체를 포섭하는 방향으로 확장되었다. 쫑카파는 “성문에게 있어 삼학이 처음과 중간, 끝의 선법을 나타내는데 비해 보살에게 있어 계 자체가 그 모두를 포함한다”고 지적하는데, 그 의미는 보살계는 단순히 어떤 행위를 규제하고 따라서 예비적 수행단계로 간주된 별해탈계의 의미를 넘어 이제 대승보살의 사고와 행위 전반을 특징지어주는 개념으로 포괄적으로 사용된다는 것이다. 

초기불교의 윤리적 항목들은 고행주의적인 사문전통에 따라 자신의 해탈을 추구하려는데 목적이 있었을 것이고, 그런 한에서 이를 실천하는 것은 매우 고결한 행위라는데 이의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윤리적 태도는 대승의 관점에서 볼 때 지나치게 소극적인 면이 있었을 것이며, 그러한 변화가 당시의 사회적, 제도적 변화에 의해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대승계의 이해를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의 하나가 바로 수행자의 정신적 의향이나 태도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인도대승의 율의를 처음으로 정형화했다고 평가받는 보살지에서는 실제로 보살에게 성문과는 다른 윤리적 태도를 취할 것을 강하게 요청하고 있다. 

보살지는 먼저 4종의 중죄와 43종의 가벼운 잘못으로 나누면서, 보살계의 경우 설사 중죄라고 해도 별해탈계의 바라이죄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강조한다. 별해탈계의 경우 바라이죄를 범한 승려는 승단으로부터 추방되어 금생 중에는 다시 승단의 일원이 될 수 없다. 즉 그것은 한번 훼손되면 현생에서는 다시 회복될 수 없는 것이다. 반면 대승계에서는 비록 한 순간 중죄를 범했다고 해도, 그가 보리심을 완전히 끊지 않고 따라서 삿된 행위를 반복하지 않는 한, 다시 보살계를 회복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다음에는 이런 전제 하에서 보살에게 불선업이 어떻게 다시 해석될 수 있는지를 설명하겠다. 

안성두 서울대 철학과 교수 sdahn@snu.ac.kr

[1652호 / 2022년 10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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