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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당하는 게 종교평화는 아니다

기자명 이병두

천진암‧주어사와 서울시 역사물길 사업, 서소문 역사공원, 경남 창원 세스페데스 공원에서 벌어진 심각한 문제만 아니었으면 불교와 천주교는 전통적으로 사이좋게 지내는 가까운 이웃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자꾸 문제를 일으키니까, 처음에는 ‘내 것을 지키겠다’는 방어본능이 작용하다가, ‘이러면 안 된다. 그들이 이렇게 하는 이유와 배경을 살펴봐야 한다’는 쪽으로 관심이 옮겨졌고, 이제는 ‘그들의 잘못된 행위가 더 이상 되풀이되지 않게 막아야 하고, 이미 저지른 잘못된 행위로 피해를 입은 것은 원상회복 시켜야 한다’는 의지를 다지게 된다.

그런데 천진암과 주어사, 서울 서소문의 조선시대 처형장‧광화문 광장과 충남 서산 해미읍성 등을 자신들만의 성지로 만들어가면서 이제까지 불교와 천도교 등 이웃종교인과 일반 국민들이 행동에 적극 나서지 않는 것을 보고 ‘무시해도 되는 바보들’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그러다가 더 이상 내버려 두면 온 나라가 그들의 ‘성지’가 되고 순례길이 될 상황까지 왔고, 그래서 우리가 문제를 제기하니까 ‘평화’를 내세운다. 그러나 이럴 때에 들고 나오는 ‘평화’는 다만 전술적 후퇴에 지나지 않는다. 영국의 저명한 아랍 역사 전문가인 스탠리 레인 풀(Stanley Lane Poole) 등의 연구에 따르면, 1000여년 전 그들이 벌인 일곱 차례 침략전쟁[십자군전쟁] 당시 ‘열세에 놓인 십자군 측의 제안으로 휴전이 이루어진 뒤 먼저 그것을 어기는 쪽은 거의 언제나 십자군 측이었다.’

그런데 이런 속임수가 이슬람권을 상대로 한 전쟁에서만 있었던 일이 아니다. 서양 역사에서 ‘콘스탄티누스의 기진장’으로 알려진 문서를 근거로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교왕 실베스테르 1세에게 로마 서부에 대한 통치권을 양도했다”면서 세속 지배권을 주장하고 황제‧왕들과 권력 다툼에 유리한 증거로 내세웠지만, 이것은 8세기 무렵 위기에 처한 교왕청이 만든 위조문서였던 것으로 1440년에 밝혀졌다. 그러나 교왕청에서는 이를 밝힌 로렌조 발라(Lorenzo Valla)를 파문하고 그의 저서 출판을 금했을 뿐 아니라 위조문서에 나온 대로 기증 장면을 묘사하는 대형 벽화를 그리게 하였다. ‘콘스탄티누스 기진장’과 또 다른 위조문서인 ‘가(假)-이시도루스 법령집’ 등 여러 가짜 문서를 내세워 긴 세월 동안 세속 권력을 억누르고 동방교회와 분열을 가져왔으며, 기독교 내부의 다른 견해와 개혁운동을 탄압하고 종교재판으로 숱한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일을 계속해왔다.

그러나 문서를 위조하고 심지어 교왕 무류설(無謬說)까지 주장하며 힘을 강화하려고 했지만 유럽 중세 교왕은 프랑크 왕과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손에서 벗어나기 힘들었고, 그들의 보호가 아니면 무참하게 살해되거나 폐위되기 일쑤였다. 혁명 이후의 프랑스, 19세기 중반 통일 이후의 이탈리아, 비스마르크의 독일 등지에서 교왕령뿐 아니라 교회 재산을 몰수하는 일이 벌어졌고 스페인 내전에서는 성난 민중들이 신부 수천 명을 살해하는 일까지 일어났다. 무류설을 강하게 밀고 나갔던 교왕 비오(Pius) 9세가 사망한 뒤 관이 교왕청을 벗어나자 성난 로마 시민들이 길을 막고 “관을 강에 던져버리겠다”고 해서 군대의 도움으로 간신히 장례를 치른 적도 있다. 유럽에서는 이렇게 힘을 잃었는데도 한국에서는 막강한 힘을 자랑하고 있으니 이것은 우리 국민들이 역사에 무지해서이거나 그들의 이미지 구축 전술이 뛰어나서일 것이다.
‘콘스탄티누스 기진장’을 위조하여 긴 세월 동안 세계 지배 전략을 구사했듯이, “주어사를 그대들에게 양도한다”는 조선시대 문서를 위조해서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올지도 모른다.

거짓은 외면과 무지 속에서 자라고 뿌리내린다. 그들이 종교 본연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이웃종교인 불교계도 목어처럼 깨어 항시 주시하고 성찰해야 한다. 그것이 참다운 종교평화의 시작이다.

beneditt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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