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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한 톨에 농부의 땀은 7근

기자명 혜달 스님
  • 세심청심
  • 입력 2022.10.17 15:41
  • 수정 2022.10.18 13:26
  • 호수 1653
  • 댓글 0

한 방울 물에 천지 은혜 스몄고
한 알 곡식에도 만인 노고 담겨
경작자의 수고로움 알고 살며
낭비 자제하고 이웃 함께해야

네모 안이 4등분 된 한문 밭 전(田)자는 8이 두 개 붙어있는 모양이다. ‘쌀 1톨이 나오기까지 농부가 88번 논에 나간다’는 의미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우리가 보통 가볍게 여기는 쌀 1톨에 농부의 손길이 무려 88번이나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송광사(순천) 공양간은 현대화되었지만, 1980년대 초기에는 오랜 시공(時空)이 깃든 목조건물이었고, 공양간 외부에는 사용한 물이 흘러내려가는 또랑도 있었다. 

구산 큰스님은 종종 대나무 꼬챙이를 들고 이 또랑 앞에 서 계셨는데, 밥알 한 톨이라도 흘러내려오면 대꼬챙이로 콕 찔러 바로 입에 넣고 삼키셨다. 이럴 때면 시자는 물론 공양간에서 일하던 분들이 죄송해서 몸 둘 바 몰라 했고, 밥 1톨도 흘러 내보내지 않기 위해 사용한 물은 소쿠리에 한 번 거른 후 흘러 내보낸다. 그러나 그 소쿠리는 거의 빈털터리다. 시주은혜를 매우 무섭고 소중히 하시는 구산 큰스님의 엄격함도, 가르침을 존중하고 실행하는 대중의 아름다운 마음도 우리는 배워 담아야 한다.

성철 큰스님도 음식 함부로 버리는 것을 그냥 넘기지 않으셨다. 해인사 백련암에 아비라 기도하러 온 신도가 수박을 제대로 다 먹지 않고 뻘건 수박 속살이 붙은 채로 버린 것을 보고, 기도하지 말고 싹 다 내려가든지 아니면 쓰레기통에 버린 수박껍질을 다시 꺼내 먹든지 둘 중 하나를 빨리 선택하라는 불호령을 내렸다. 신도들은 쓰레기통에 내버렸던 수박껍질을 다시 집어 들고 하얀 속살이 나오도록 먹었다고 한다.

나의 은사 법희 스님도 신도들이 먹고 버린 수박껍질에 빨간 살이 붙어 있으면 그 부분을 칼로 도려내어 씻지 않고 바로 드셨다. 행자시절 이런 광경을 처음 본 나는 기겁해 머릿속이 하얘져버렸다. 게다가 수박껍질에 벌건 살이 붙은 것을 보고도 모른 채 버리면 처리한 사람도 복이 감한다는 말씀에, 이때부터 나는 수박을 낼 때면 껍질에 벌건 살이 붙지 않게 도려낸 후 깍둑썰기 해 대접했다.

절집에 회자되는 말이 있다. 바로 ‘일미칠근(一米七斤)’이다. 직역하면 ‘쌀 1톨에 7근의 시주은혜가 담겨 있다’이다. 즉 농부가 7근의 품을 들여 1톨의 쌀이라는 작품을 만들었고, 시주는 7근의 땀 삯을 들여 1톨의 쌀을 구입해 보시한 것이니, 환산하면 쌀 1톨에는 약 4.2㎏라는 시주의 땀 삯이 서려있다. 

그렇다면 밥 한 수저에 담긴 시주무게는 얼마일 것이며, 더구나 실수로 버려진 쌀 1톨, 밥 1톨이 다 썩어 없어질 때까지 제석천왕이 눈물을 흘리면서 지켜보고 있다니, 참으로 무겁고 또 무섭다.

요즈음은 너무 많이 먹어서 병이 생긴다. 먹거리가 풍족한 현실에선 ‘제석천왕의 눈물’에 공감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경작자의 노고를 봐서라도 우리는 먹거리의 낭비를 자제해야 한다. 절집에서 식사 전에 읊는 ‘한 방울의 물에도 천지의 은혜가 스며있고, 한 알의 곡식에도 만인의 노고가 담겨 있다’는 게송을 마음에 담으면 도움이 될 것이다.

국제기아단체는 먹지 못해 피골이 상접한 어린이, 피부의 상처가 곪아가는 사람, 흙탕물을 떠 마시는 모습을 대중언론매체를 통해 우리에게 전달해 준다. 더군다나 피골이 상접하고 눈꺼풀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한 채 엄마 품에 안겨 있는 아기의 모습에는 마음이 아려온다. 빈곤으로 인해 목숨 잃는 사람들이 아직도 지구촌에서 발생하고 있고, 주의를 기울여보면 우리 이웃에도 적지는 않다.

내 앞에 놓인 음식을 먹기 전에, 경작자의 수고로움을 떠올려 보자는 권유를 하고 싶다. 내 돈 지불하고 사먹는 것이지만 먹거리의 수고로움과 소중함은 알고 살아가자는 것이다. 더불어 어려운 이웃을 거드는 자비의 씨앗도 심고 가꾼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복은 누릴 때 분수를 지켜 만족할 줄 알아야 하고, 다음 생의 먹거리도 만들어가며 살아가자.

먹거리는 모자란 듯 구입해 버리는 것이 없게 하고, 힘든 이웃도 거들면서 함께 살아가 보자. 나눔은 마음을 웃게 하는 명약이다.

혜달 스님 (사)봉려관불교문화연구원장
hd1234369@gmail.com

[1653호 / 2022년 10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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