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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틀린 자유와 그 처방

윤 대통령은 공식 석상에서 늘 자유를 말한다. 취임식에서는 35번,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는 13번, 8·15광복절 경축사에서는 33번, 유엔총회 연설에서도 21번의 자유를 말했다. ‘헌법’에도 대통령 못지않게 자유라는 말이 많이 등장한다. 전문에 나온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필두로, 각 조문에는 ‘정당 설립의 자유, 신체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 주거의 자유, 양심의 자유, 종교의 자유, 학문과 예술의 자유, 언론·출판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경제상의 자유’ 등을 보면, ‘자유를 위한 헌법’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왜 이렇게 자유를 개인과 개인의 연대에 기반한 조약인 ‘헌법’에 명기해 놓았을까.

대학에서 고전으로 읽히는, 존 스튜어트 밀이 1859년에 낸 ‘자유론’(서병훈 옮김)을 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그는 머리말에서 “집단의 생각이나 의사가 일정한 한계를 넘어 개인의 독립성에 함부로 관여하거나 간섭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국가나 사회에 대해 개개인의 자유가 어떻게 보장받을 수 있는가를 생각한 것이다. 집단 권력의 폐해가 어떻게 개인을 파괴하는가를 역사가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사회가 개인에 대해 강제나 통제를 가할 경우, 최대한 엄격하게 규정하는 것이 이 책을 쓴 목적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원리를 “사회에서 누구든-개인이든 집단이든-다른 사람의 행동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경우는 오직 한 가지, 자기 보호를 위해 필요할 때 뿐이다”라는 것으로 제시한다. 

‘헌법’이 개인의 자유를 이토록 다양하게 제시하고 있는 이유를 이처럼 밀의 생각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는 궁극적으로 국가의 가치는 이를 구성하는 개개인의 가치라고 본다. 그리고 우리와 반대되는 견해를 가지거나 이로 인해 좋지 않은 결과를 불러일으키더라도 간섭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이러한 생각은 사전류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자유의 정의(定意)로써 내려지고 있다. 그렇지만 현실은 이 자유의 가치가 훼손되고 있는 중이다. 현 정부는 검찰 카르텔을 전면에 내세워 정쟁(政爭)으로 치닫고, 표현의 자유를 훼손시키는가 하면, 자신 내부의 명백한 범죄에 대해서는 눈감고, 외부에 대해서는 날카로운 사법의 칼을 휘두르고 있다. 언제적 얘기인데 ‘주사파’나 ‘빨갱이’가 튀어나오고, ‘공산주의자’라는 말로 상대방을 공격한다. 밀의 시대나 지금이나 권력을 향한 욕망이 수그러들기는커녕 더욱 불타오르며 자신과 주위를 불태우고 있다. 적나라한 검권정치의 실체를 목격하는 중이다.

이 나라가 선진국 반열에 올라서고, 예술을 비롯한 문화가 세계인들의 흠모를 받게 된 것은 자유와 민주를 외친 수많은 시민들, 때로는 이를 위해 목숨을 바친 백성들의 피와 땀 덕분이 아닌가. 지금까지 쌓아온 ‘자유’의 가치를 더욱 확대시킬망정 퇴행적으로 가서야 되겠는가. 문제는 우리 안의 욕망이다. 권력의 지속성을 위해 탐욕이 치성하고, 따라서 남의 티끌은 보여도 내 눈의 대들보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 점에서 탄생 백주년을 맞이하는 이기영(李箕永, 1922~1996)이 1990년 ‘법륜’지에 쓴 글은 우리에게 경종을 울린다. “자유주의가 정치적으로 적용된 민주주의에 대해서 우리는 그 왜곡된 신화의 베일을 벗겨야 합니다. 자유가 무엇인지, 자유는 어떻게 누려야 하는지, 그것을 가장 잘 설명하고 있는 것이 대승불교의 열반·해탈사상입니다.” 그는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한계, 그리고 최근에 대두된 자유민주주의의 한계에 대한 비판마저 마다하지 않는다. 

불성은 청정무구하다. 진여적멸하여 어디 물들 것도 없다. 본각(本覺)을 체로 삼는 일상 수행이면 어떤 욕망도 나를 포획할 수 없다. 대승의 가르침인 무주처열반을 통해 번뇌와 경계로부터 자유롭고, 생사에도 걸리지 않으며, 대비심으로 이웃을 구제하는 일승(一乘)의 세계를 건설한다. 나아가 이러한 열반에 이르렀다는 마음의 흔적조차 없다. 재가출가를 가리지 않고 보살정신으로 이 나라의 위정자들을 일깨워야 한다. 우리가 아니면 누가 하겠는가.

원영상 원광대 원불교학과 교수 wonyosa@naver.com

[1654호 / 2022년 10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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