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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고대불교-삼국통일과불교(42) (7) 동아시아 불교역사상의 원효불교(25)

최남선은 일본불교를 한국불교 영향 아래 배치해 식민사관 전복

일본은 인도 → 중국 → 일본 전래 주장하는 삼국불교사관 확립
최남선은 일본을 한국으로 대치, 조선의 결론적 불교 건립 주장
아시아불교 전체에서 한국불교사 추구하는 넓은 안목 선구적  

최남선은 인도 및 서역의 서론적 불교, 중국의 각론적 불교, 조선의 결론적  불교를 주장했다. 
최남선은 인도 및 서역의 서론적 불교, 중국의 각론적 불교, 조선의 결론적  불교를 주장했다. 

최남선(崔南善)이 최초로 제창한 ‘통불교론(通佛敎論)’은 해방 이후 원효 연구자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미쳐서 오늘날까지 원효불교 이해의 기본적인 학술개념으로 받아들여졌고, 한국불교의 우수성을 주장하는 담론으로까지 발전하였다.

그 결과 원효불교가 통불교임을 전제로 원효의 불교사상에서 그러한 요소를 찾아내서 증명하려는 방향으로 연구가 집중되었다. 그리고 원효의 불교사상을 한국불교사 이해로 확대하여 한국불교의 역사적 성격으로 규정함으로써 한국불교의 우수성을 설명하려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학계 일각에서는 이런 통불교론에 대해 강력한 비판이 제기되었다. 서구권 학자들과 이에 영향 받은 국내 일부 학자들에 의한 통불교론 비판은 원효불교나 한국불교사를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하여 비판하는 것이 아니고, 그러한 담론의 기원과 과정에 대한 단편적인 이해만을 추구해 형식논리로 타당성 여부를 점검하는 데 그친 것이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그러나 통불교론을 비판하는 측은 말할 것도 없고, 동의하는 학자들도 통불교론을 처음 제창한 최남선의 의도나 그 담론이 제기되던 시기의 역사적 상황과 근대불교의 성격에 대한 구체적 검토를 전제로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은 같다. 그리고 다른 지역이나 민족의 불교를 구체적으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한국불교의 역사적 성격으로 정의한 통불교론은 관념적인 이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사실을 왜곡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최남선의 통불교론은 ‘조선불교(朝鮮佛敎)-그 동방문화사상(東方文化史上)에서의 지위(地位)’(佛敎 제74호,1930,8)에서 정립되었다. 원래 이 논문은 1930년 7월 21~26일 미국 하와이에서 개최된 범태평양불교청년회의에서 발표하기 위해 집필된 것이었는데, 최봉수(崔鳳秀)가 줄여서 영문(英文)으로 번역하고, 도진호(都鎭鎬)가 회의장에서 팸플릿 형태로 배포하였다. 이 글은 외국인을 대상으로 작성한 것임을 최남선은 논문 말미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었는데, 한국불교를 중국불교의 아류(亞流) 정도로 평가하던 일본의 식민지 관학자들을 질타하고 한국불교에 무지한 서양인들을 일깨워주기 위한 것이었다. 이 회의에 단독으로 참석한 도진호의 ‘범태평양회기(汎太平洋會記)’에 의하면, 각국 대표는 모두 177인데, 일본인과 일본계 미국인들이 대부분이었던 점에서 일본인이 주도한 회의였으며, 실제 최남선이 대상으로 한 것도 일본인들이었다. 따라서 이 논문의 작성 의도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일본의 식민지불교사관의 성격과 그 불교사관의 심층적인 뿌리가 된 삼국불교전통사관(三國佛敎傳通史觀)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삼국불교전통사관은 원래 가마쿠라시대 교넨(凝然, 1240~1321)이 창안한 것인데, 교넨은 화엄종 승려로서 가마쿠라시대의 신불교(新佛敎)에 대응하여 구불교를 집성한 ‘팔종강요(八宗綱要)’라는 명저(名著)를 남긴 것으로 유명하였다. 그는 말년에 ‘삼국불교전통연기(三國佛敎傳通緣起)’를 저술하였는데, 그 내용은 불교는 인도에서 발생하고, 중국을 거쳐서 일본에서 완성되었다는 일종의 불교기관설이었다. 일본적 특성을 강하게 띤 신불교가 성립되는 당시의 불교계 상황을 반영한 역사인식의 소산이었다. 그런데 교넨의 이 저술이 크게 주목되기 시작한 것은 메에지시대인데, 그 대표적인 주창자가 무라카미 센쇼(村上專精)와 아네자키 마사하루(姉崎正治)였다, 특히 무라카미 센쇼(1851~1929)는 정토진종 오타니파(大谷派)의 하라 탄잔(原坦山)의 뒤를 이어 도쿄대학 강사가 되었고, 뒤에 오타니(大谷)대학 학장에 취임하였다. 

그는 ‘불교통일론(佛敎統一論)’과 ‘대승비불설(大乘非佛說)’ 등을 저술, 대승비불설을 발표하여 당시 불교계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또한 종파불교의 분열상황을 그치고 통일적 합동조화를 이루자는 불교통일론을 주장하였는데, 그 의도는 대승불교의 우월성과 일본불교의 우수성을 주장하려는 것이었다. 그의 역사적 연구는 교단불교의 개별적 대립을 넘어서 불교의 공통함을 명확히 하고, 그것으로 불교부흥을 도모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었는데, 이때 일본불교의 우월성을 뒷받침하는 논리로 인용된 것이 교넨의 삼국불교전통사관이었다. 무라카미 센쇼에 의해 일본 불교종파의 통일은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일본불교를 궁극으로 보는 불교사관은 일본불교의 전통이 되었다, 그리고 일본의 대외침략과정에서 불교계가 참여하는 당위성을 제공하였는데, 특히 1930년대 이후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중에는 최종 궁극의 일본불교로 팔굉(八紘.세계)을 구원하자는 구호를 앞세워 전쟁에의 참여를 독려하였다. 태평양전쟁기에는 모든 불교종파가 전쟁에 휩쓸리는 분위기 가운데서 유일하게 아카데미즘을 고수하면서 문헌학적 연구나 그것을 기초로 한 교리사적 연구에 머물지 않고, 불교의 체계적인 이해를 시도하고 있던 우이 하쿠주(宇井伯壽)조차도 ‘불교범론(佛敎汎論)’에서 일본불교의 우월성과 불교 안에서의 일본 중심주의를 주장함으로써 무라카미 센쇼가 제창하였던 일본불교의 입장에서 불교의 통일적 이해라는 과제를 완수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그런데 앞서 무라카미 센쇼의 ‘불교통일론’은 출간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에도 전해져 일제강점기 초기에 최초로 간행된 불교잡지인 ‘조선불교월보(朝鮮佛敎月報)’(權相老·朴漢永편집겸발행, 1912~1913)에 권상로가 번역하여 연재하였다. 1917년에는 무라카미 센쇼가 한국에 와서 ‘일본불교사(日本佛敎史)의 특색(特色)’이라는 제목으로 강연하였는데, 그 강연 전문이 번역되어 ‘조선불교총보(朝鮮佛敎叢報)’ 5호(李能和 편집겸발행, 1917,7)에 게재되었다. 무라카미 센쇼의 강연에는 당시 불교계의 중견지식인이었던 권상로·박한영·이능화·한용운 등이 경청하였다는 것을 보아 당시 한국불교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당시 이능화의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를 교열(校閱)하고 자신이 설립한 신문관(新文館)에서 간행해 주었던 최남선도 무라카미 센쇼에게 특별한 호기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장황하게 일본불교의 삼국불교전통사관에 대해 설명하였는데, 그것은 1차적으로 최남선의 논문 작성 의도와 논문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성, 그리고 최남선의 통불교론의 역사적 성격과 의의를 제대로 이해하려는 목적에서다. 그리고 2차적으로는 우리 학계에서 최남선의 본래 의도와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형식 논리적으로 통불교론이라는 개념의 타당성 여부에 대한 논란만이 계속되는 문제점을 지적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최종적으로 최남선의 논문 작성 의도와 가치는 식민지불교사관의 심층적인 뿌리가 된 삼국불교전통사관에 입각한 당시 일본인들의 불교사 인식에 대한 비판에 있음을 이해하려는 것이다. 

최남선은 먼저 1장에서 동서교통로 위의 한쪽 종점인 한반도가 모든 문화의 정류지(停留地)가 되는 문화사상의 지위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그리고 2장에서는 인도에서 성립된 불교가 실크로드를 거쳐 동아시아에 전파되는 과정에서 유라시아의 초원길과 고비 사막을 거쳐 동북아시아로 통하는 문화루트를 상정하고 인도와 서역의 불교가 중국을 거치지 않고도 직접 전래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그의 불함문화론(不咸文化論)에서 주장한 불함 계통의 문명 루트와 유사한 것이다. 3장에서는 중국의 삼론종·섭론종·열반종·천태종·지론종·법상종·화엄종 등의 교리 발전과정을 설명하면서 삼론종에서의 승랑(僧朗), 법상종에서의 원측(圓測)·태현(太賢)·순경(順璟), 그리고 화엄종에서의 의상(義相) 등 한국 승려들의 업적을 열거하고, 화엄학의 마지막 단계로서의 원효의 해동종(海東宗)의 성립이 불교사의 측면에서 화엄종의 진정한 창립이요, 불교철학의 완성이라고 평가하고, 중국의 화엄종에 미친 영향을 지적하였다. 이 3장의 내용은 원효 불교를 높이 평가하는 문제만이 아니고, 동아시아 불교 최후의 완성은 화엄종에 있음을 밝힌 것으로서 당시로는 대단히 앞선 주장이었다. 

원효는 3장에서 보여준 불교사의 이해를 바탕으로 하여 4장에서 통불교의 건설자가 원효임을 지적하고 그 업적을 대서특필하였다. 원효는 불교 교학을 이론적으로 종합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론과 실천을 융화하고, 또한 대중적 불교로 전화시킴으로써 일승적(一乘的) 불교의 최후 완성자가 되었다고 평가하였다. 그리하여 원효 불교는 불교적 구제(救濟)의 실현인 일면에 다시 통불교(通佛敎)·전불교(全佛敎)·종합불교(綜合佛敎)·통일불교(統一佛敎)의 실현인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고 하였다. 최남선이 말하는 원효의 통불교는 사상적인 통합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이론과 실천을 융화하고, 그 위에 다시 중생 구제라는 대중교화까지 포함하는 것으로써 최남선 자신의 표현 그대로 전불교이고 종합불교인 것이다. 오늘날 원효 불교를 사상통합과 대중교화 등 두 측면에서 이해하는 것과 전연 다름이 없다. 최남선은 일본의 무라카미 센쇼에 의해서 일본불교의 우수성 주장의 논리적 근거가 된 삼국불교전통사관의 이해체계를 빌려와서 일본불교의 자리에 한국불교를 대치시킴으로써, 인도 및 서역의 서론적(緖論的) 불교, 중국의 각론적(各論的)에 대하여 조선은 최후의 결론적 불교를 건립했다고 주장하였다. 최남선은 일본 불교학의 역사인식과 방법론을 빌려와서 역으로 삼국불교전통사관이라는 일본 특유의 불교사 사관을 비판하고 극복하는 논리적 근거로 활용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최남선의 통불교론은 한국불교의 우수성 주장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5장에서는 석굴암을 비롯한 불교예술의 우수성, 6장에서는 고려대장경의 우수성과 의천의 업적을 서술하였다. 이어 7장·8장·9장에서는 한국이 일본의 불교와 문화에 끼친 영향을 강조함으로써 일본의 불교문화가 한국문화의 영향 아래 있음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조선이 조선만의 조선이 아니라 전체 동방의 조선, 아니 세계의 조선임을 불교사상으로도 인식함은 동방의 비밀을 깨뜨리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라고 결론지었다.

최남선이 말하는 불교세계는 실로 방대하다. 그는 인도에서 출발하여 서역을 거쳐 한줄기가 남하하여 중국불교가 되고, 또한 줄기가 계속 동쪽으로 진출하여 한국에 도달했다고 하여 중국에서 한국으로 전해왔다는 통설을 거부하고, 중국루트가 아닌 새로운 북방루트를 주장하였다. 이는 인도→중국→일본의 불교전래 루트를 설정한 일본불교의 삼국불교전통사관을 정면으로 부인하였다는 의미이다. 이뿐만 아니라 일본불교를 한국불교의 영향 아래 위치시킴으로써 일본의 불교사관을 완전히 뒤집는 결과를 낳았다. 결론적으로 최남선의 원효불교 이해와 통불교론의 의의는 종합적인 원효불교를 발견하였다는 점에 그치지 않고, 삼국불교전통사관에 입각한 일본의 식민지 불교사학의 역사인식에 대항하여 아시아 불교사에서의 한국불교의 위치를 새롭게 정립시키는 논리적 근거를 마련하였다는 점, 동서문화 교류라는 폭넓은 시각으로 아시아 불교사의 전체적인 맥락에서 한국불교사의 이해를 추구한 넓은 안목과 구체적인 접근방법을 제시하였다는 점이다.

최병헌 서울대 명예교수 shilrim9@snu.ac.kr

[1655호 / 2022년 11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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