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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관중의 율정 원리와 관포지교

기자명 윤소희

음악 좋아하면 이미 수의 세계 즐기고 있는 것 

궁·상·각·치·우 재료된 12율 산출과정 ‘지음’서 처음 소개
번복 거듭하던 율정산식 명·청대 주재육에 정비돼 실용화
문화혁명 시기 서양 평균율 따라하면서 율정 현실성 잃어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관중기념관’, ‘‘관자’제1권’, 안후이성에 있는 ‘관포사(管鮑祠)’ 입구, ‘관중과 포숙’.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관중기념관’, ‘‘관자’제1권’, 안후이성에 있는 ‘관포사(管鮑祠)’ 입구, ‘관중과 포숙’.

인간이 아름답다고 여기는 실체에는 수의 원리가 있고, 그 대표적인 것이 음악이다. 서양음악 이론을 정립한 그리스의 피타고라스는 물론이요, 중국음악에도 관련한 여러 수학자들이 있다. 우선 중국의 신화적인 율정에 관한 얘기를 들어보면 “옛날 어느 황제가 음악을 담당하는 신하에게 명하여 율을 짓게 하여 그 신하가 대나무 중 구멍과 두께가 고른 것을 자르니 그 길이가 3치 9푼이었고, 불어보니 황종의 궁음이 되었다. … 중략 … 12개의 대통을 만들어 완유산 밑으로 가서 봉황새의 울음소리를 듣고 12율을 나누었는데, 수놈이 우는 소리 6률, 암놈이 우는 소리 6려로 하여 12율이 되었다”는 것이다.

훗날 수의 기준이 되는 황제의 척(皇帝之尺)은 백성들의 주식인 잘 익은 기장(黍) 가운데 중간 크기의 1알(粒)을 종(縱)으로 세운 길이를 1푼, 9알을 쌓아 1촌, 9알씩 9번 쌓은 81푼(9촌)을 1척으로 삼는 종서척(縱黍尺)이 형성되었다. 이러한 기준이 하(夏, BC2070~1600) 나라 우 임금에 이르러서는 10푼이 1촌, 10촌이 1척이 되는 10진법으로 바뀌었다. 즉 기장 10알이 1촌, 기장 100알인 100푼(10촌)이 1척이 되었으니 이것이 횡서척(橫黍尺)이다. 이에 대해 학자들은 “9진법에 입각한 수의 논리는 북방 샤머니즘의 세계관과 연결된 것으로 그 방식은 1-3-9이었으나 하나라 이후 변화된 10척은 상→주나라로 이어져 공자를 비롯한 유가 사상이 주척(周尺)의 기준이 되었다”고 설명한다.  

궁·상·각·치·우 5음의 재료가 되는 12율의 산출 과정은 ‘관자(管子)’의 ‘지음’에서 처음으로 발견된다. 이 시기는 그리스의 피타고라스(BC 569~475)와 공자의 예악 사상이 형성되기 전이었고, 이를 지은 사람이 제나라의 관중(管仲, ?~BC 645)이었다. BC 600년경에 만들어진 이 책은 관중과 그 예하 학자들의 언행록으로, 정치·경제·농업과 같은 국정 운영과 사상·천문·지리·의례와 같은 내용이 폭넓게 언급되고 있다. 본래 86편이던 것이 지금은 76편이 전해지고 있는 이 서책의 저자는 줄곧 ‘관자’로만 알려져 오다가 ‘관자’가 ‘관중’임을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관중은 부친이 일찍 세상을 떠나자 어린 나이에 장사를 하였는데, 그 시절 막역지우 포숙(鮑叔)을 만났다. 포숙은 제왕으로서의 잠재력을 지닌 환공을 일찍이 알아보았고, 친구 관중의 지략과 능력을 알았기에 두 사람을 연결해 주었다. 친구 권유로 환공의 책사가 된 관중은 환공이 춘추 5패 중 최초의 승리자로서 주도적 패권을 갖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환공이 제나라 왕이 되자 관중을 재상으로 임명하였고, 관중은 부국강병과 민생을 보살피는 뛰어난 정치력을 발휘하여 훗날 제갈량과 함께 중국 2대 재상으로 꼽히게 되었다. 

만인지상 일인지하의 권력자가 되어서도 관중은 어려운 시절 친구 포숙과 알콩달콩 우정을 나누며 이렇게 회상하였다. 

“내가 가난할 때 포숙과 함께 장사를 했는데, 이익을 나눌 때 나는 내 몫을 더 많이 챙겼다. 그러나 포숙은 나를 욕심쟁이라고 말하지 않았으니 나의 빈궁한 형편을 헤아렸기 때문이다. 내가 사업을 하다 실패하였을 때 포숙은 나를 어리석다 하지 않고 세상 흐름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며 위로하였다. 내가 세 번 벼슬길에서 쫓겨났을 때 포숙은 시대를 만나지 못했다고 할 뿐 나의 무능을 탓하지 않았다. 내가 싸움터에 나가 세 번이나 패하고 도망쳤을 때도 포숙은 나를 겁쟁이라고 하지 않았으니 나에게 봉양해야 할 노모가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를 낳은 이는 부모님(生我者父母)이지만 나를 알아준 이는 포숙(知我者鮑叔兒也)”이라, 오늘날까지도 이들의 우정은 관포지교(管鮑之交)로 회자되고 있다.

‘관자’에 기록된 율정산식의 내용을 보면, 첫 음인 궁의 81에서 삼분익일(三分益一)을 한 값(81×⅓)에 27을 더하여 108이라는 수를 생산하니 ‘궁’보다 낮은 ‘치’음이 되었고, 다음으로 삼분손일(三分損一)하여 차례로 음을 생산하니 치·우·궁·상·각의 음계가 형성되었다. 

이렇게 되면 ‘삼분손익법’이 아니라 ‘삼분익손법’이라, 지금까지도 학자들의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오늘날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궁·상·각·치·우 순으로 배열된 음계는 ‘사기’의 ‘율서’ 이후다. 이 셈법을 보면 숫자 81을 황종 궁으로 하여 1/3을 빼고(損一), 다시 1/3을 더하여(益一) 81촌(궁), 72촌(상) 64촌(각) 54촌(치), 48촌(우)으로 되어 궁·상·각·치·우 순이 된다. 

중국의 율정산식은 왕조가 바뀌면서 전조(前朝)의 원리를 파기하는 바람에 지속성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대표적인 사례가 송나라 휘종이 자신의 손가락 길이를 합산한 수를 황종 음으로 삼았던 일이다. 번복을 거듭해오던 율정산식은 명·청대의 주재육에 의해 정비되어 실용화되었으나, 문화혁명 시기에 서양의 평균율에 맞추어 조율하므로서 푼·촌·척에 의한 율정은 현실성을 잃었다. 그러나 기준음을 곡식이 자라는 땅을 상징하는 ‘황종(黃鍾)’으로 삼는 것은 변함이 없다. 그런가 하면 12율명 중 중려의 율명에 ‘중(仲)’자를 쓰고, 사전에는 이를 ‘율려 중’이라 하니, 관중의 이름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수학을 좋아하는 필자의 성향 때문인지 대학에서도 화성학, 음악분석 등 주로 수와 관련된 강의를 해왔다. 어느 때는 영재스쿨 중학생들에게 수와 음악시리즈를 강의하며 피보나치 수열과 음악, 악기의 시김새와 음의 양(量)을 설명하였더니 음대 학생들보다 더 잘 알아들었던 기억이 있다. 대부분의 음악 애호가들은 음악과 수의 원리를 설명하면 골치 아파한다. 그럴 때면 필자가 늘상 하는 말이 있다. 

“음악을 좋아하신다면 이미 수의 세계를 즐기고 계십니다.” 

음악은 그 자체가 수(數)의 조화인지라, 임산부가 좋은 음악을 많이 들으면 지능이 높은 아이를 낳고, 음악을 들으며 숙성된 빵은 맛이 더 좋아지는 등 여러 실험결과가 있다. 종교인구가 급격히 줄어드는 즈음 불교에서 음악을 활용한다면 21세기 불교홍법을 위한 신의 한 수가 될 수 있다. 

윤소희 음악인류학 박사·한국불교음악학회 학술위원장
ysh3586@hanmail.net

[1655호 / 2022년 11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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