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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도반들

기자명 성원 스님

30년 전의 일이다. 한 젊은 청년이 우연히 조계사를 들리게 됐다. 법당 입구에 서책이 있었다. ‘불교 기초교리’였다. 한 권을 집어 들자 곁에 있던 사람이“2000원입니다”라고 했다. “처음 오는데 책을 그냥 주지 않느냐?”고 하니 오히려 의아하다는 듯 바라봤다. 그냥 내려놓고 난생처음 부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절도 했다. 생각하니 교회는 처음 갔을 때 성경, 찬송가와 몇 종류의 책을 더 준 것이 기억났다. 오랜 세월의 숨은 인연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자꾸 법당 앞에서 당당하게 파는 책의 내용이 궁금해졌다. 도대체 무슨 내용이기에 그냥 주지 않을까? 생각해보니 공짜로 주는 것 치고 내게 더 유리한 것이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가는 길에 한 권을 구입해 버스 타고 귀가하는 사이에 읽고 스스로 불자가 됐다. 누가 알았으랴 그 엷은 복사지 책 한 권이 30년 삶의 지침을 돌려놓을 줄 말이다.

책에서 첫 전율은 지장보살이었다. ‘지옥이 비기 전에는 성불도 미루시고 지금도 지옥의 문 앞에서 육환장을 들고 연민의 눈물을 흘리는 보살님’ 그랬다. 한동안 타종교에 몸을 담았지만 믿음과 불신의 양단에서 보여주는 저주에 가까운 증오가 싫어 발길을 끊은 이후 새로운 사상의 지평을 만났던 것이다. 그 누가 어떠한 이유에서 지옥에 갔는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구제함을 사명으로 여기고 연민하는 사상을 가진 종교가 바로 자신이 찾는 종교관과 일치했었다. 조계사 청년회에서 무진장 스님께서 가르치신 ‘무상심심미묘법 백천만겁난조우-높고도 깊고 깊은 부처님 법 백천만겁 지나도록 만나기 어려워라’라는 구절을 듣고는 다시 만나기 어려운 이 자리 이 공부에 이번 생을 헌신하기로 결심하자 살아온 지난 세월이 더욱 부질없게만 느껴져 홀연히 출가의 길로 나섰다. 

30년의 세월이 흐르고 다시 조계사 대웅전 부처님 앞에 꿇어앉았다. 단아했던 본존불은 사람들의 욕심만큼 큰 부처님께 자리를 내어주고 한 켠에 물러나 계셨다. 함께 수계했던 300이 넘었던 도반들은 어디로 다 흩어지고 ‘종사 품수식’에 참여한 도반들은 30명도 채 안 되었다.

삼귀의를 하고 발원문을 읽을 때쯤 그날의 푸른 눈빛의 젊은이가 스쳐갔다. 그 탱천하던 신심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하늘이라도 뽑고 세상이라도 뒤집을 기운찬 그 젊은이는 어디로 사라지고 이제는 발원을 가다듬기에도 온 신경을 쏟아야 할 사문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잃어버린 것은 세월만이 아니었다. 십 분의 일도 안 되는 도반들의 부재는 더욱 가슴 아팠다. 며칠 전 이번 제18대 중앙종회 개원에 즈음하여 출가자의 감소와 불자의 감소를 막지 못한다면 시대적 소명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애정 어린 질타를 들었다. 먼 데 있다 보니 그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는데 되돌아와 앉은 그 법당 자리에서 너무나도 적나라한 현실과 마주한 것 같다. 그 당시 수많은 청년 회원들이 바로 이 자리에 있었는데 지금은 손뼉 쳐줄 사람들조차 보이지 않는다. 불법승 삼보를 지탱하고 있는 출가수행자들이 사라져버린다면 불교는 이제 미래는 고사하고 현재에조차 남아있기가 힘들 것만 같았다.

재가 30년은 그랬다 치더라도 출가 30년, 도무지 어디서 무얼하며 지냈을까? 참으로 숨이 막히는 시간이었다. 커져버린 부처님을 앞에 두고 오히려 나의 신심은 발로하지 못하고 엄청난 책무 앞에 짓눌리고 있는 것만 같다. 사람들이 출가자 감소를 인구감소로 위로받으려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옛적 불교를 꽃피웠던 신라, 고려의 인구가 어찌 오늘에 비할 수 있을까? 그때의 젊은이들을 수행자로 이끌었던 그 매혹적인 불교의 교리와 사상, 그리고 수행의 풍토는 어디로 갔을까? 우리가 터트리지 못한 축포들을 찾아 다시 한번 큰 불꽃을 일으켜야 할 것이다. 매력 가득한 화엄 세상의 축제를 펼쳐 이 땅의 청년들이 우리 승가에 쏟아져 들오게 해야 할 것이다.  

다시는 사라지지 않는 도반들이 모여 펼칠 30년 뒤 축제를 꿈꾸어 본다.

성원 스님 약천사 신제주불교대학 보리왓 학장
sw0808@yahoo.com

[1656호 / 2022년 11월 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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