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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해야 할 그 이름 ‘봉려관’

기자명 혜달 스님
  • 세심청심
  • 입력 2022.11.14 16:17
  • 수정 2022.11.14 22:55
  • 호수 1657
  • 댓글 1

약초에 해박해 환자 치료하며
200년 암흑기 제주불교 중흥
항일운동부터 구제사업 지원
봉려관 생애가 근대 제주불교

봉려관(1865~1938)스님은 근대제주불교를 일으켜 세운 승려이다. 1907년 9월 ‘고통에 처해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어 그들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겠다’는 결심과 함께 승려가 되고자 목포를 거쳐 해남 대흥사로 향한다.

해가 설플 때, 볼품없는 모양새를 한 봉려관이 대흥사에 도착했고, 대중은 거들떠보지 않는다. 스님이 되고자 왔다는 봉려관에게 2년의 행자기간을 거치지 않아 수계(授戒)할 수 없다는 답을 한다. 절일을 도우면서 며칠간 주변을 둘러볼 수 있게 해달라는 봉려관의 요청을 대흥사가 받아들이면서, 마침내 산내 암자를 둘러보게 된다.

주변 암자를 둘러보던 중, 온 몸의 살이 썩어 들어가던 젊은 비구를 본 봉려관이 환자를 고쳐보겠다고 했지만, 누구도 선뜻 믿지 않았다. 그런데 전날 “내일 환자를 고칠 사람이 올 것이다”는 꿈을 꾼 스님 한 분이 주지스님에게 “어차피 죽을 사람 한 번 맡겨나 보자”고 하였고, 주지스님은 이를 허락한다. 봉려관은 묵은 된장과 상처를 감쌀 천을 준비해 달라 해서, 환부에 묵은 된장을 붙이고 이를 천으로 감싼 후 환자에게 “오직 관세음보살만 지성으로 염불해야 살 수 있다”는 당부를 한다.

며칠 후, 환부를 감쌌던 천을 걷어내자 곪은 상처에 벌레가 우글우글했고, 된장과 벌레를 쓸어낸 봉려관은 사람들에게 “마당에 덕석을 깔고 그 위에 아궁이 재를 펴 놓으라”한다. 그리고는 아궁이재 위에 환자를 눕히고는 둥글려버렸다. 이때 환부에 남아 있던 벌레들이 아궁이 재 때문에 죽는 것을 대흥사 대중 몇 분이 보았고, 지금도 이 이야기는 회자되고 있다.

시간이 지나자, 환부에 딱쟁이가 앉기 시작했고, 대흥사 산중은 그야말로 이 이야기로 떠들썩한다. 마침내 봉려관은 1907년 성도재일에 비구니 유장을 은사로 비구 청봉을 계사로 승려가 된다. 근대제주불교 최초비구니가 탄생한 역사적 순간이다.

봉려관은 1908년 1월 불상을 모시고 제주도로 되돌아온다. 같은 해 근대제주불교역사 상 최초로 승려가 집전한 ‘부처님오신날’ 행사도 봉행한다. 약초에 해박했던 스님은 빈곤해서 의원조차 찾을 수 없었던 환자를 만나면 병에 맞는 약초를 알려주었고, 약초처방과 환자완쾌가 거듭되면서 기층민중의 지지기반도 넓어진다. 더불어 한라산 관음사는 상당한 토지를 확보하게 된다.

200여년간 종교로서의 불교가 없었던 제주에 1909년 수행중심사찰 한라산 관음사를 최초 창건하였고, 역사적 가치를 지닌 고관사(조천의 옛 관음사), 불탑사, 법화사를 중창했으며, 포교요충지에는 성내포교당, 백련사, 월성사, 소림사, 평대리 포교당, 일본 오사카 대각사 등을 창건해서 근대제주불교를 일으켜 세운다. 1911년에는 항일인사은신처로 법정사를 창건해서 1918년 ‘법정사 항일항쟁’을 견인시킨다.

1926년 ‘제주불교소녀단’과 ‘제주불교부인회’를 창립해서 신여성 양성, 1927년 성내포교당에서 ‘제주유치원’ 개원식 거행, 1930년 불교유치원 창설을 위한 협의체 구성, 1935년에는 ‘제주중학강습원’ 개교에 앞장선다.

봉려관 스님의 구제활동은 빈곤층 병자치료에서 비롯된다. 1925년 제주도는 기근이 심각했고 봉려관은 기독교, 천주교계 주요여성과 함께 기근구제조직에서 집행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적극적인 대사회 활동에 나선다.

봉려관스님은 31년을 기층민중과 함께 했다. 스님께서 관음신앙을 받아들인 시기는 제주도민이 불교에 호감도 불교신앙도 갖지 않던 시절이며, 불교가 종교로서의 역할조차 못하던 시기다. 스님께서 모시던 불상을 파손해 태우고, 쫓아내고, 돌팔매질 하고, 거처에 불을 놓아 죽이려는 등의 핍박 속에서 봉려관스님은 200여년 간 지속된 근대제주불교암흑기를 끝내고, 부처님의 자비를 제주에 심고 각인시킨다.

근대제주불교사가 곧 봉려관의 생애이고, 봉려관의 생애가 바로 근대제주불교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제 제주 불자는 물론 불교계는 봉려관스님에게 더는 빚을 져선 안 된다.

혜달 스님 (사)봉려관불교문화연구원장
hd1234369@gmail.com

[1657호 / 2022년 11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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