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쓸데없는 걱정과 필요한 걱정

기자명 성진 스님

어릴 적 누구나 한 번쯤 읽어 봤을 이야기 중에 소원을 들어주는 램프요정이 나오는 것이 있다. 바로 ‘알라딘과 요술 램프(Aladdin’s Wonderful Lamp)’로 아라비아 지역의 민화를 묶어 만든 ‘천일야화’의 한 편이다. 여기서 요술 램프를 닦으면 램프요정이 나와 주인의 소원을 들어준다.

하지만 현대 심리학에서 이 램프는 좋은 의미로 쓰이지 않는다. 램프 증후군(Lamp syndrome)으로 일명 ‘과잉 근심증후군’이다. 무슨 소원이든 들어주는 램프를 한 번만 닦을 수 없는 것처럼 걱정을 만들어 주는 램프를 계속해서 닦아 쓸데없는 걱정을 꼬리에 꼬리를 물고 피어나게 하는 것이다. 이 증후군은 집중력 저하와 불면증 그리고 심하면 공황장애와 같은 불안장애마저 일어날 수 있다. 

이런 현대인의 램프 증후군에 대해 미국의 심리학자 어니 젤린스키(Ernie J. Zelinski)는 ‘모르고 사는 즐거움(The Joy of Not Knowing It All)’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하는 걱정의 40%는 절대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 일에 대한 것이고, 30%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것이고, 22%는 사소한 일에 대한 것이며, 오로지 4%만이 우리 힘으로 바꿀 수 있는 일이다.” 다시 말해 지금 우리가 걱정하고 있는 것의 대부분이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순간 잠시 모든 것을 멈추고 생각해보자. 걱정이 있다면 나의 걱정은 과연 위의 분류 가운데 어디에 속한 것일까? 

그렇다면 모든 걱정이 쓸데없고 불필요한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4%의 행동할 수 있는 걱정은 발생할 수 있는 위험 요소를 감소시켜 오히려 안전을 통한 안심을 줄 수 있다.

의지와 행동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필요한 걱정’은 머피의 법칙(잘못될 수 있는 요소를 갖춘 것은 결국 잘못되게 마련이다)이나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라는 망양보뢰(亡羊補牢)와 같은 일을 막을 수 있다. 성격 유형을 분류하는 MBTI에서 ‘ISTJ’는 여러 사람과 여행을 갈 때 옆 사람이 가져오지 않을 물품까지 예비로 준비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누군가는 피곤한 성격이라고 할 수 있지만, 스스로 이런 준비가 편안하다고 한다면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 있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 개인의 성격에서 벗어나 사회나 국가의 책임을 진 자리에 있는 상황이라면 국운이 바뀔 수 있다. 

‘거안사위(居安思危) 편안하게 지낼 적에 위태로움을 생각하라. 사즉유비(思則有備) 생각하면 대비가 있게 되고, 유비무환(有備無患) 대비가 있으면 근심이 없다.’

이 글은 춘추시대 유학자 공자(孔子, B.C.551~B.C.479)가 편찬한 역사서인 ‘춘추’의 대표적 주석서인 ‘춘추좌씨전’에 나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임진왜란을 예견하고, ‘징비록(懲毖錄)’을 통해 전란을 상세히 기록하여 두 번 다시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글을 남긴 서애(西涯) 류성룡(柳成龍, 1542~1670)의 말로 익숙하다. 좋은 걱정은 사회나 국가가 겪을 엄청난 위험을 대비할 수 있는 초석이 된다. 특히 공직에 있거나 안전을 담당하는 직책에 있을 때는 행동하여 대비할 수 있는 4%의 ‘필요한 걱정’을 반드시 해야 한다.

위의 글과 연관된 중국 고사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노(魯)나라 군주 소공(昭公)이 제(齊)나라로 도망쳐 있으며, 지난날을 후회하고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바른 정치를 하겠다고 한다. 그러자 제나라 군주가 소공을 도와 노나라로 다시 보내주려고 하자 자신의 심복인 안자(晏子)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렇지 않습니다. 무릇 어리석은 자는 후회가 많고, 물에 빠진 자는 수로를 살피지 않았기 때문이며, 길을 잃은 자는 길을 묻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소공은 노나라로 돌아간다고 해도 현군은 되지 못할 것입니다.” 

일이 닥친 뒤 후회를 하는 것보다 ‘필요한 걱정’으로 사전에 방지하는 것은 비교조차 할 수 없음을 알기 바란다.

성진 스님 조계종 백년대계본부 미래세대위원
sjkr07@gmail.com

[1658호 / 2022년 11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