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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수행이론의 총망라(32)-실천 관련; 각론⑬

부처님은 존재 근원이며 법계 본질

초기불교서 보는 부처님은
훌륭한 선생님 혹은 수행자
대승에서는 생명·존재 근원
이런 믿음의 근거가 화엄경

현재 필자는 ‘십회향품 제25’의 10문(門) 중에서 두 번째의 ‘②가분’을 소개하고 있다. 다시 한번 환기하면 10문은 ①삼매분, ②가분, ③기분, ④본분, ⑤설분, ⑥서응분, ⑦결통분, ⑧증성분, ⑨계찬권수분, ⑩교량공덕분이다. 지난번 연재에서는 가지를 통해서 무엇을 완성하려 하는지 그리고 또 가지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본문을 소개했다. 이번에는 가지(加持) 하는 모습[相]을 살펴보기로 한다. 이 대목에서도 ‘화엄경’ 구성작가는 초기 불교의 신구의(身口意) 3업 개념을 빌리는데, 법을 설하는 것이니 작가는 순서를 구업(口業)부터 시작한다. 

첫째는 금강당보살에게 구업(口業)을 발휘하여 설법하도록 힘 보태주는 장면이다. 금강당보살의 변재(辯才; 말재주)를 증가시키기 위함이다. 우선 ‘한글대장경’에 실린 운허 스님의 번역문을 공유하기로 한다. “①불자여, 그대는 마땅히 부처님 위신의 힘을 받들어 이 법을 연설할 것이니, ②부처님의 호념을 얻은 연고며, ③부처의 가문에 편안히 머문 연고며, ④출세간하는 공덕을 더하는 연고며, ⑤다라니의 광명을 얻은 연고며, ⑥장애 없는 불법에 들어간 연고며, ⑦큰 광명으로 법계를 널리 비추는 연고며, ⑧허물 없는 깨끗한 법을 모은 연고며, ⑨광대한 지혜의 경계에 머문 연고며, ⑩장애 없는 법의 광명을 얻은 연고니라.”

10구절 중에서 ①은 총론인데 금강당보살이 회향 관련 법문을 할 수 있도록 어편(語便; 말솜씨)을 돌봐주신다. 그리고 ②에서 ⑩까지는 그것이 가능한 이유(연고)를 밝히는 각론이다. 

각론 부분은 좀 더 자세하게 분석해서 읽어야 할 것이다. 즉, 회향 관련 법문을 하기 위해서는 ‘파워[力]’가 있어야 가능한데, 그것이 무엇인가? 첫째는 남의 힘이고 둘째는 자신의 힘이다. 첫째 남의 힘이란 본문에 나오는 ‘②부처님 호념을 얻은 연고’이다. 화엄의 경학 용어로 이를 과력(果力) 또는 증상연력(增上緣力)이라고도 한다. ‘수행이 원인이 되어 깨침이라는 과보를 얻으신 그런 부처님의 힘 보태줌’. 이것이야말로 모든 존재의 근원이고 행위의 원동력이고, 가치의 원천이며, 법계의 본질이다. 대승의 특징이 물씬 드러나는 대목이다.

대승 불교는 초기 불교에 비교해 종교적 요소가 강한데, 바로 이런 부분 때문이다. 초기 불교에서의 부처님은 ‘훌륭한 선생님 또는 수행자’의 모습이 두드러진다. 반면 대승 불교에서의 부처님은 태양처럼 ‘생명과 존재를 역동하는 근원’으로 묘사된다. 대승 불교가 퍼진 각 지역에서는 ‘부처님의 호념’을 빌고 기원하는 신앙 형태를 볼 수 있다. 호념(護念)이란 ‘보호하고 염려하다’는 뜻이다.

대승에 따르면, 모든 중생은 부처님의 보호와 염려해주심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대승의 이런 믿음의 근거에는 바로 ‘화엄경’이 있다. 경전 구성작가는 태양에 견준 ‘비로자나 부처님’을 등장시켜 이런 신앙을 펼치고 있다. ‘화엄경’ 본문에는 이렇게 부처님의 힘을 근본 바탕으로 삼고, 그 위에 초기 불교에서부터 강조해 온 자신의 노력을 보탠다. ③에서부터 ⑩까지는 자신의 힘인데, 이것은 유위(有爲)로서 인연(因緣)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반면 ②는 무위(無爲)로서 본원(本源)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자신의 힘에 해당하는 ③에서부터 ⑩까지 중에서, ③④⑤는 ‘인위적 조작이 있는 청정한 법의 힘[有作淨法力]’이며, ⑥⑦은 ‘인위적 조작이 없는 청정한 법의 힘[無作淨法力]’이며, ⑧⑨⑩은 ‘몸 청정의 힘[身淨力]’을 나타낸다. 경학자들은 이렇게 본문 내용을 세 단락으로 쪼개서 해석해왔다. 독자들도 잘 들여다보면 그 결이 달라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③④⑤처럼 부처님 집안에 태어나 가업을 이어 무루공덕을 기르고 일체를 갖춘 지혜를 익혔다. 이렇게 스스로 수행한 힘 때문에 회향 법문이 가능하다. ⑥⑦처럼 수행해야 할 어떤 대상에도 걸림이 없고, 수행하는 주체인 지혜에도 걸림이 없는 그런 수행을 했다. 그런 힘으로 회향 법문을 하게 된다. ⑧⑨⑩에서 ⑧은 성문승들의 수행이고, ⑨는 보살승의 수행이고, ⑩은 부처의 수행이다. 이렇게 세 방면의 수행을 몸소 다 닦은 힘 때문에, 그 힘으로 회향 법문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 ananda@yonsei.ac.kr

[1658호 / 2022년 11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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