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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왕 머문 옛 절터서 대형 온돌시설 발견됐다

  • 성보
  • 입력 2022.11.28 11:01
  • 수정 2022.12.02 19:25
  • 호수 1660
  • 댓글 0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 11월28일 발표
강화 묘지사, 왕이 초제 전 거처한 사찰
"온돌 변천 과정 이해할 중요 학술 근거"

고려 24대 임금 원종(1219~1274)이 몽골 침략에 맞서 수도를 강화도로 옮긴 뒤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전 몸을 녹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절터에서 대형 온돌방이 발견됐다.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는 11월28일 “고려시대 사찰 유적으로 추정되는 강화 묘지사지(妙智寺址)에서 전통 난방 방식인 온돌을 사용한 흔적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고려사'(高麗史)에 따르면 강화 묘지사는 고려 원종 5년(1264) 왕이 마니산 참성단에서 초제(醮祭)를 지내기 전에 거처했던 사찰로 알려져 있다. 초제는 무속신앙이나 도교에서 별을 향해 지내는 제사이며, 원종 5년은 고려가 몽골 침략에 맞서 강화도로 천도한 시기(1232∼1270)에 해당한다.

묘지사는 마니산 동쪽의 초피봉 남사면에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간 학계 조사를 통해 절터로 추정되는 장소는 얼추 찾아냈으나 정확한 위치나 연혁은 파악되지 않았다. 

묘지사 절터로 추정되는 장소에서 축대를 쌓아 만든 평탄한 건물터를 확인한 결과, 위쪽에서 동쪽 일부를 제외한 방 전체에 온돌이 깔린 흔적이 나왔다고 연구소는 설명했다. 

건물터는 동서 너비 16.5m, 남북 길이 6.3m에 이른다. 건물은 가로 5칸, 세로 2칸 크기로 추정되며 방 양쪽에 온돌이 분리된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소는 “온돌 아궁이는 건물터의 동쪽 칸과 서쪽 돌출부에 조성돼 있었다”며 “각각의 아궁이를 통해 유입된 열기가 ‘ㄷ' 형태로 회전하면서 방의 양쪽을 덥힌 뒤 연기 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온돌방에 설치된 고래둑(열기가 통과하는 통로)은 너비가 40∼60㎝에 이른다. 조선시대 건물터의 고래둑 규모인 20~30㎝보다 훨씬 크다. 그 위에 얹어진 구들장 길이도 70∼120㎝로, 지금껏 국내에서 확인된 다른 온돌 시설물에 비해 월등한 규모다. 

학계에서는 방 전체에 놓은 전면 온돌형 구조의 대형 주거시설은 고려 후기부터 등장해 정착한 것으로 추정해왔는데 이번에 발견된 유적은 13세기 것으로 건축사적으로도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연구소는 현재 상단과 중단 축대 조사까지 마쳤다. 앞으로 하단 축대 부분도 조사해 사찰의 성격과 구조를 규명할 예정이다.

정주연 기자 jeongjy@beopbo.com

[1660호 / 2022년 12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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