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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정자들에게 유마거사의 죽비를

기자명 원영상

부처님은 ‘법화경’에서 화택유(火宅喩)를 통해 이 세상이 불난 집이라고 설하신다. 한 장자의 집이 “모두 낡아서 벽과 담은 무너졌고, 기둥뿌리는 썩었으며, 대들보는 기울어져 위태롭게 생겼는데, 갑자기 사방에서 불이 나 한창 타고 있었느니라”라고 설하신다. 지금 이 사회와 세계는 불난 집과 다름이 없다. 각종 이념과 사상들은 서로 자신의 것이 옳다며 담장을 치고, 지성과 덕행에서 나오는 권위의 뿌리는 썩어가고 있으며, 정의와 평화의 대들보는 무너지기 직전이다. 욕망의 불길이 이들을 재료 삼아 활활 불타오르고 있다. 

불법의 위대한 점은 이러한 불길을 끄고, 평화인 열반과 자유인 해탈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하는 것에 있다. 특히 그 불난 집에 기름 붓듯이 가장 강력한 연료인 세상의 분열을 막는 데에 최고의 특효약은 불법이다. 동서양에 많은 종교들이 있지만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회광반조(廻光返照)의 힘과 이를 기반으로 보살도의 사회적 실천력을 가진 불교야말로 가장 실질적인 종교다. 철학자들과 교육가들은 이구동성으로 동양 종교들의 뛰어난 점은 수행론을 갖추고 있는 점이라고 말한다. 불교는 치밀한 수행론으로 누구보다도 인간을 잘 이해하며, 삶의 질곡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있다. 번뇌와 욕망으로 인한 내 안의 분열을 방지하고, 이 사회를 하나의 불국토로 만들어가는 그 길을 명확히 제시한다. 

나는 우리 불교도들이 사회 내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관찰하고 있다. 그것은 생활무대에서 사회적 분열을 통합하며 치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무심(無心)과 중도(中道)로 무장한 불교도들은 때로는 갈등과 증오의 불길을 가라앉히기도 하고, 중재역을 맡아 화합으로 이끌기도 한다. 드러나지 않지만 비록 힘든 환경일지라도 불교도들이 있는 곳에서는 그들을 구심점으로 삶을 극복해나간다. 아마도 불안과 고통을 느끼는 이웃들은 불교를 믿는 친한 사람들에게 상담과 조언을 구해 고단한 삶을 헤쳐나가는 지혜를 수혈받고 있을 것이다. 고준한 제불조사들의 말씀을 생생한 현실에서 소박하지만 힘있게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화택의 근본 원인을 제거하는 데에 일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회를 불국토화하는 수행론의 핵심이 되는 가르침은 자타불이일 것이다. ‘유마경’의 ‘입불이법문품’은 이에 대한 최고의 가르침이다. 나라연 보살은 “세간과 출세간을 둘이라 합니다. 세간의 성(性)이 공한 것이 출세간이요, 그중에 들어가지도 않고 그곳에서 나오지도 않고, 그곳에서 넘쳐흐르지도 않고 흩어지지도 않는 것을 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라고 한다. 세상은 공한 것이다. 우리는 세상이 연기로 이루어진 무자성공(無自性空)임을 익히 알고 있다. 하나의 세계는 집착할 것 없는 진공과 그 위에 현현한 묘유에 근거한다. 오늘날 공동체를 좌우하는 위정자들이 알아야 할 것은 공성(空性)에 바탕, 타자가 곧 나이며 내가 곧 타자라는 사실이다. 가슴 아픈 이태원 참사는 자타가 둘이 아닌 이 사실을 망각한 것에 근본 원인이 있다. 

국가를 이끄는 사람들은 유마거사의 침묵을 배워야 한다. 문수보살이 마침내 “당신의 입불이법문은 무엇입니까?”라고 한 질문에 유마거사는 “묵묵히 아무 말 없이 침묵을 지켰다”라고 경전은 기록한다. 침묵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미 둘이 아닌데 무엇을 더 말할 것인가. 말을 넘어 분별을 끊어버린다. 그리고 침묵으로 자타불이의 실상을 여실히 드러낸다. 거기에 어떤 이익과 당파와 내외가 있겠는가. 우주와 하나가 된 유마거사처럼 위정자들은 백성들을 단합하고 통합하며, 자식들을 돌보듯이 그들의 삶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 중생의 아픔을 내 것 삼은 것처럼 그들 모두의 생명을 내 몸처럼 아끼고 보살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불타는 집에서 수많은 우리 이웃들이 비명횡사하고 있다. 백성의 안위를 남의 일처럼 바라보는 위정자들은 자격이 없다. 그들을 일깨우는 죽비가 절실한 때다.

원영상 원광대 원불교학과 교수 wonyosa@naver.com

[1659호 / 2022년 11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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