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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수행이론의 총망라(33)-실천 관련; 각론⑭

포교하고 전법하는 것이 회향

화엄경에서 보살의 서원이란
보현보살의 10대 행원을 지칭
보살 서원이 원인으로 작용해
일체중생의 구호 결과로 작동

금강당보살이 회향 관련 법문을 할 수 있도록 부처님들이 ‘힘 보태 주는[加持]’ 방식을 보았다. 그 방식에는 말로도 하고, 또 마음으로도 하고, 마지막에는 몸으로도 했다. 몸으로 하는 대표적 방식이 ‘정수리 만져줌’이다. 여러 곳에서 몰려오신 부처님들이 금강당보살의 정수리를 만져주자 삼매에서 일어난다. 이를 ③기분(起分)이라 한다. 이하부터는 ④본분(本分)이 시작된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의 부사의한 큰 서원이 법계에 충만하며 일체중생을 널리 구호하나니, 이른바 과거·미래·현재의 모든 부처님의 회향을 닦아 배우는 것이니라.” 인용문은 운허 스님의 번역문인데, 문장을 셋으로 쪼개서 보아야 한다. 첫째, 보살에게는 큰 서원이 있다. 둘째, 그 서원이 법계에 충만하여 중생을 모두 구호한다. 셋째, 3세 모든 부처님도 그렇게 하셨다. 

‘보살의 서원’이란 구체적으로 말하면 ‘화엄경’에 등장하는 보현보살의 서원이다. 넓혀서 말하면 대승 경전에 등장하는 일체 보살의 서원이고, 줄여서 말하면 ‘보현보살의 10대 행원’이다. 이런 보살의 수행과 서원이 법계에 충만한 것이 ‘원인’이 되어, 일체중생을 구호하는 작용이 ‘결과’로 작동한다. 서원이 원인이고 구호가 결과인 셈인데, ‘화엄경’ 구성작가는 대승 불교의 회향을 이런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보살이 중생을 구호하겠다는 원력으로 세워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회향이란다.

이상으로 회향에 대한 총체적 설명을 마친 ‘화엄경’ 구성작가는 구체적 항목을 열 가지로 제시한다. “①하나는 일체중생을 구호하면서도 중생이라는 상(相)을 여의는 회향이요, ②둘은 깨뜨릴 수 없는 회향이요, ③셋은 모든 부처님과 평등한 회향이요, ④넷은 온갖 곳에 이르는 회향이요, ⑤다섯은 다함이 없는 공덕장 회향이요, ⑥여섯은 일체 평등한 선근에 들어가는 회향이요, ⑦일곱은 일체중생을 평등하게 따라주는 회향이요, ⑧여덟은 진여의 모양인 회향이요, ⑨아홉은 속박도 없고 집착도 없는 해탈 회향이요, ⑩열은 법계에 들어가는 무량한 회향입니다.”

인용문은 역시 ‘한글대장경’ 운허 스님의 번역문인데, 각 회향의 자세한 설명은 다음 호부터 시작하기로 하고, 이번 호에서는 대체 ‘무엇을’ 회향한다는 것인지에 초점 맞추어 보자. 즉, 회향이란 돌려준다는 뜻인데, 대체 무엇을 준다는 말인가? ①에서는 돌려주는 내용이 중생 구호이다. 회향의 내용이 중생 구제이다. 이런 방식으로 독자들께서는 ‘대체 무엇을 준다는 말인가?’ 이런 의문을 가지고 ‘회향품’ 전체를 읽어주시기를 바란다. 

먼저 위에서 인용한 운허 스님의 문장을 그런 방식으로 대조하면서 읽어주시기를 바란다. 자, 그러면 “②둘은 깨뜨릴 수 없는 회향”이란 대체 무엇을 되돌려준다는 말인가? 그것은 3보를 굳게 믿은 결과로 얻은 공덕을 타인에게 돌려준다는 뜻이다. ③은 3세의 부처님께서 실천하신 내용을 내가 똑같이 배운다는 뜻이고, ④는 그렇게 배운 대로 온 중생에게 모든 곳에서 베풀어 되돌린다는 뜻이고, ⑤는 각종 보살행의 결과로 쌓아 얻은 공덕을 모두 되돌린다는 뜻이다. 이 대목에서는 다양한 보살행이 소개되는데 보현보살의 10대 행원과 유사한 덕목들이 등장한다. ⑥에서는 다양한 보시를 소개하는데, 그런 보시들이 사(事)와 리(理)에 걸림 없이 평등한데, 이로 인해 생기는 공덕을 회향한다. 특히 이 대목에서는 부처님의 출세를 찬탄하고 모든 것을 보시하는 동시에 남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하는 것이 회향이란다. 소위 포교하고, 전법하고, 전도하는 것이 바로 중생에게 되돌려주는, 즉 회향이라고 말하고 있다.

⑦은 말 그대로 사람 차별하지 않고 나아가 모든 생명 차별 없이 그들을 따라주는 것이다. 물론 그들이 번뇌를 여의어 불도를 성취하는 길로 가도록 따라주는 것이다. ⑧은 보살들이 수행하는 모든 선행은 끝내 진여(眞如)와 하나가 되어야 하는데, 이렇게 진여와 하나 된 수행을 남에게 되돌려주는 것이다. ⑨는 겉모양에 속박되지 않고 나아가 소견에 집착하지 않아 모든 작용에 자유자재한 그 자체가 회향이며, ⑩은 본마음에서 우러남을 타인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 ananda@yonsei.ac.kr

[1659호 / 2022년 11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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